비겁한 타인 파괴 vs 세상에 짓밟힌 순수함
이 둘은 모두 씹프피입니다. 정말 씹프피도 이런 씹프피가 없습니다. 그런데 전자와 후자를 같은 씹프피로 묶기에는 후자가 너무 억울해 보입니다.
1. 박하사탕
영화는 김영호가 겪은 시대적 트라우마를 보여주며 면죄부를 주려 하지만, 그가 이후에 자발적으로 선택한 악행들(잔인한 고문 형사 생활, 상습적 아내 폭행 등)의 수위가 너무 높아 시대 탓으로 돌리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주인공이 괴로워 할 때 그 주변에서 진짜로 주인공에게 맞고, 무시당하고, 인생이 짓밟힌 피해자들의 고통은 제대로 조명되지 않습니다. 관객은 자연스럽게 "저 사람이 왜 이렇게 징징대지? 정작 맞은 사람은 따로 있는데?"라는 반발심을 갖게 됩니다.
그가 딱히 진심으로 반성한 적이 없기 때문에 결국 영화의 테마인 '나 다시 돌아갈래'라는 절규는 순수하거나 불쌍하게 보이지 않게 됩니다. 후회와 반성은 다릅니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후회만 할 뿐, 자신이 억울하게 상처입힌 사람들에 대한 반성은 하지 않습니다. 영호라는 캐릭터가 자기연민에 빠져 주변을 파괴하는 소시오패스적 가해자로 보이게 되는 것이죠.
2. 커트코베인
커트 코베인이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연민과 사랑을 받는 이유는, 그의 고통이 타인을 향한 공격이 아니라 철저히 자신을 향한 무너짐이었기 때문입니다. 코베인은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 만성적인 신체적 통증, 갑작스러운 명성에 대한 압박 등 본인이 통제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신음했습니다. 그는 그 고통을 핑계로 누군가를 때리거나 억압하며 권력을 휘두르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도 약물 남용이라는 비도덕적이고 불법적인 행위를 저질렀지만 자해적 선택을 했을 뿐 타인을 파괴하는 방식의 불법을 저지르진 않았죠. 그는 자신의 우울과 불안을 음악으로 승화해서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나 아프니까 너도 아파봐라"가 아니라 "내가 아파봤기에 남의 아픔을 절대 외면하지 않겠다"
결국 내가 아프다고 해서 남을 괴롭힐 권리는 없다는 인간성을 지켰느냐가 핵심입니다. 코베인은 그 고통을 오롯이 자기 혼자 짊어졌기에 그 비극이 숭고함으로 남는 것이고, 김영호는 그 고통을 주변에 배설했기에 역대급 징징거림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