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적 연대의식 대신 개인적 경쟁심리
진정한 강함은
약함을 공격하지 않습니다.
약함을 인정하고 돌볼 수 있을 때
비로소 강해지는 것이죠.
겉으로는 여성의 권리와 연대를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사회가 강자에게 부여한 권력 구조를 내면화해 약자를 비난하는 형태입니다.
이때 일부는 내면화하여,
스스로 또는 다른 여성을 경멸하게 됩니다.
“나는 다른 여자들과 달라. 나는 강하고, 똑똑하고, 독립적이야.”
이런 생각이 강화되면 약한 여성을 보며 우월감을 느끼고,
심지어 비웃거나 공격하는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일부는 여성주의를 연대의 가치보다 자기계발이나 성취 도구로 오해합니다.
즉,
“나는 남성과 대등하거나 더 잘났어”
라는 식의 비교 우위 중심 사고로 소비합니다.
이 경우 ‘성공하지 못한 여성’, ‘의존적인 여성’을 보면
‘여성의 진보를 방해하는 존재’로 인식하기 쉽습니다.
이런 인식은 연대의식 대신 경쟁심리를 낳습니다.
“약한 여성을 비판하는 순간, 기존의 억압 구조를 그대로 재생산하고 있다”
는 점을 자각하세요.
권력 동일시
오랫동안 억압받은 집단은,
역설적으로 억압자의 시선을 자기 안에 내면화합니다.
즉, 약한 존재를 경멸하는 시선은 남성 중심 사회의 시선이며,
이를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인 여성은 강자의 자리에 선 듯한 착각 속에서 약한 여성을 공격합니다.
자기방어적 공격심
스스로 약해질까 봐 두려운 마음에서,
약한 여성을 공격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건 불안을 숨기기 위한 자기 방어기제입니다.
“나는 저런 여자가 아니야.”
“나는 절대 저렇게 약하게 살지 않을 거야.”
이런 자기확신 뒤에는,
사실 자신도 약해질 수 있다는 공포가 숨어 있습니다.
자신의 취약함을 인정하는 용기는
약함이 아니라 자기 인식의 강함입니다.
약한 여성을 때리는 대신 약한 나를 돌보는 연습을 하는 것이 훨씬 건강한 자기 강화입니다
“못돼먹은 행동을 하는 이유가 있지만,
그 이유가 그 행동을 정당화해주진 않는다.”
그들은 타인의 고통에 정서적으로 연결되지 못합니다.
대신 타인의 약점을 보면 나보다 아래로 느끼며 안도하거나 쾌감을 느끼죠.
“쟤는 왜 저렇게 약해 빠졌대?”
“나는 저런 애들하고 달라.”
이건 사실상 공감의 실패예요.
자기 확신으로 보이지만,
그 밑에는 약한 존재를 이해할 여유가 없는 내적 빈곤이 있습니다.
못돼먹음도 학습된 방어기제
결국 이런 못돼먹은 행동은 선천적인 악의라기보다,
권력 사회에서 생존을 위해 학습된 냉혹함이에요.
하지만 그렇다고 면죄부가 되지는 않습니다.
설명은 이해를 돕지만, 정당화는 아닙니다.
“못돼먹은 건 맞습니다.
다만, 그렇게 된 이유도 존재합니다.
중요한 건 그걸 인식하고
바꿀 의지가 있느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