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화 ‘노인의 말은 느리지만 깊다’

부제: 느린 말에는 깊은 시간이 담겨 있다.

by YEON WOO

“있잖아요… 그러니까… 그게…”

치매 어르신은 말을 꺼내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어떤 날은 시작한 문장을

끝까지 말하는 데 10분도 넘게 걸리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내 마음은 자꾸 앞서간다.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걸까?’

‘내가 대신 말해드릴까?’

하지만 어느 날, 그 느린 말속에서

나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말이 더디다는 건 기억을 더듬는 시간이고,

감정을 정리하는 시간이며,

지나온 삶을 꺼내는 여정이라는 걸.

그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면

어김없이 귀한 이야기가 따라온다.

“나는 말이야... 젊을 땐 참 고집이 셌어.

근데... 나이 들어보니까

사람한테 제일 중요한 건…

그냥 따뜻한 말 한마디더라고.”

그 한마디에 나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돌봄의 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마치 인생 수업을 듣는 학생 같았다.

노인의 말은 느리지만 그 속엔 시간과 기억과 감정이

천천히 내려앉아 있다.

빠르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 느림은

잊고 지낸 ‘본질’을 되돌아보게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어르신의 말이 끝날 때까지

고개를 끄덕이며 기다린다.

비록 말은 느려도 그분의 눈빛은 말보다 더 정확히

그 마음을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은 느려도, 마음은 명료하다.

삶이란 그렇게 전해지는 것 아닐까.

빠른 말보다 깊은 눈빛,

화려한 표현보다 조용한 손길이

더 많은 것을 말해주는 순간이 있다.

어르신의 한숨 속에는

말로 다 하지 못한 세월이 담겨 있고,

그분의 미소에는

고단한 삶을 견뎌낸 따뜻한 용기가 숨어 있다.

나는 그 조용한 언어를 배우며

삶을 읽는 법을 익혀간다.

소란한 세상 속에서도

고요한 마음으로 사람을 바라보는 법을.

삶은 결국,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의 연속이고,

그 이해는 느리지만 진실한 마음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 느린 걸음에 맞춰 걷는다.

말없이 전해지는 사랑을 믿으며,

그 속에서 나도 조금씩

사람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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