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병의 그림자보다 사람의 빛을 먼저 보기.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
나는 어르신의‘진단명’을 먼저 들었다.
“이 분은 중등도 치매예요.”
“이 분은 알츠하이머 3기예요.”
그리고 그 말만으로 어르신을 어렴풋이 짐작했다.
기억을 잃고, 상황을 이해 못 하고,
반복되는 말과 행동을 보일 거라고.
하지만 어느 날 그 모든 예측을 깨뜨리는 순간이 왔다.
점심시간이 끝난 뒤 한 어르신이 내 손을 잡았다.
“고생 많지?
그래도 당신 덕분에 난 덜 외로워.”
나는 말문이 막혔다.
정작 내가 위로받은 순간이었다.
그분은 분명 치매 진단을 받은 분이었다.
자신의 방도 헷갈려했고, 식사 후 했던 이야기를
5분 뒤에 다시 꺼내곤 했다.
하지만 그 따뜻한 말 한마디에 나는 확실히 깨달았다.
병의 이름은 사람의 전부가 아니다.
기억은 희미해져도 감정은 여전히 선명했고,
사람을 향한 마음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치매라는 이름이 그분의 전부를 설명하진 못한다.
잊어버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여전히 그 안에‘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
나는 그날 이후 진단명보다 먼저,
그 사람의 눈빛과 말투와 손길을 보게 되었다.
“이 분은 누구세요?”가 아니라
“이 분은 어떤 삶을 살아오셨을까요?”
그 질문을 품는 것이 진짜 돌봄의 시작이라고 믿게 되었다.
이름이나 나이, 병력보다 먼저
그분의 지난날을 상상해 본다.
어떤 꿈을 꾸었고,
어떤 사랑을 했으며,
어떤 상실을 견뎌냈을까.
그분의 손에 남은 굳은살은
평생을 일구어온 흔적이고,
그분의 눈가에 맺힌 주름은
수많은 웃음과 눈물의 기록이다.
그 삶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나는 오늘도 다가간다.
단순한 돌봄이 아니라
그분의 이야기를 듣고,
그분의 존재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일.
진짜 돌봄은
몸을 챙기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분의 시간과 기억,
그분의 고요한 자존을
조심스럽게 껴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묻는다.
“오늘은 어떤 기억이 떠오르셨나요?”
그 질문 하나로
그분의 하루가, 그리고 나의 하루가
조금 더 따뜻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