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화 ‘나는 당신을 기억합니다’

부제: 당신이 나를 잊어도, 나는 당신을 기억할게요.

by YEON WOO

“너 누구니?”

어르신이 내게 묻는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내 이름을 부르며 웃어주시던 분인데

오늘은 처음 보는 사람 대하듯 어색해하신다.

처음엔 마음이 아팠다.

‘내가 이만큼 돌봤는데, 나를 기억 못 하시다니…’

그런 마음이 올라왔다. 하지만 그건 내 마음일 뿐.

어르신에게 지금은 내가 낯선 존재일 수도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나를 다시 받아들이는 데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조용히 다가가 어르신의 손을 잡고,

늘 하던 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오늘은 손이 많이 차시네요. 따뜻한 차 드릴까요?”

어르신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나직하게 웃으셨다.

“그래… 따뜻한 게 좋지…”기억은 사라졌을지 몰라도

감정은, 익숙함은 남아 있었다. 그 순간 나는 확신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어르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걸 억지로 상기시키는 게 아니라,

어르신을 대신해 기억해 주는 것이라는 걸.

그분이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어떤 노래에 눈가가 촉촉해지는지,

언제 마음이 무너지는지를 내가 기억하고 있다는 것.

그것이 돌봄이다.

치매는 기억을 지워가는 병일지 몰라도,

사랑까지 지워가지는 못한다.

내가 기억하고, 내가 마음에 담아두면,

그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당신이 나를 잊어도 괜찮아요. 나는 당신을 기억합니다.”

그 말이 누군가에겐

하루를 버티는 가장 따뜻한 언어일지 모른다.

기억이 흐려지고,

시간이 모서리를 닳게 해도

그 사람의 존재는 여전히 소중하다.

이름을 잊어도, 얼굴을 헷갈려도

그 마음의 온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돌봄은 그런 것이다.


기억을 되돌리려 애쓰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껴안는 일.

그분이 나를 알아보지 못해도

나는 그분을 알아본다.

그분의 웃음, 그분의 습관,

그분의 조용한 눈빛 속에

살아온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으니까.

그리고 그 기억을

내가 대신 품는 것이다.

그분이 잊어버린 계절,

그분이 놓친 이름들,

그분이 잃어버린 자신을

내 마음에 조용히 새기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누군가의 기억이 되어 살아간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진실한 사랑이고, 가장 깊은 존중이다.

그 기억은 말없이 스며든다.

식사 시간의 작은 웃음,

손을 잡을 때 느껴지는 온기,

창밖을 바라보며 나누는 짧은 대화 속에

나는 그분의 하루가 된다.

돌봄은 시간을 나누는 일이다.

그분의 느린 걸음에 맞춰

내 마음도 천천히 걸어가고,

그분의 침묵 속에서

나는 더 많은 이야기를 듣는다.

그분이 잊어도 괜찮다.

나는 기억하니까.

그분의 이름,

그분이 좋아하던 노래,

그분이 자주 하던 말투까지

내 마음에 고이 간직하니까.

그렇게 나는

그분의 삶을 이어받아 살아간다.

그분의 존재가

내 안에서 계속 숨 쉬도록,

그분이 걸어온 길이

내 발걸음에도 닿도록.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가 나를 기억해 준다면

그 사랑은 또 다른 생이 되어

조용히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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