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화 ‘그날의 밥상, 말보다 따뜻한 기억’

부제 : 어르신의 하루를 채우는 건 한 끼의 마음.

by YEON WOO

치매 어르신을 위한 돌봄의 현장에서

나는 “밥은 드셨어요?”라는 말이

그저 안부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날도 어르신은 나를 못 알아보셨다.

내가 몇 번을 말씀드려도 “처음 보는 사람이야”라고 하셨다.

그런데 밥을 먹고 난 뒤,

식판을 내려놓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밥, 참 맛있었어요. 고마워요.”

“이렇게 먹은 게 얼마 만인지 몰라요.”

그 말에 마음이 뭉클해졌다.

내가 해드린 밥은 아니었지만,

그 한 끼는 분명히 어르신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치매 어르신에게는 하루하루가 낯설고 불안한 시간이다.

그러나 밥상 앞에서만큼은 익숙하고 편안한 기억이

잠시나마 마음을 붙들어준다.

음식의 냄새, 따뜻한 국물, 고소한 반찬...

그 모든 것이 어르신의 과거와 이어진다.

입맛을 잃었던 분이 어느 날 감자조림을 보고

“이거, 엄마가 해줬던 거랑 비슷하네”하고

웃으시던 모습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렇다. 밥상은 기억을 끌어올리는 조용한 다리다.

그리고 그 위를 건너는 것은 정서다.

말은 잊혀도 한 끼의 따뜻함은 오래 남는다.

돌봄 속에서 매일 차려지는 밥상은

말보다 깊은 돌봄의 언어다.

반찬 하나하나에 담긴 마음은

“괜찮니?”라는 물음보다

더 조용히, 더 깊게

마음을 어루만진다.

뜨끈한 국물 한 숟갈에

오늘 하루의 피로가 녹아내리고,

정성스레 썰어 넣은 채소 속엔

그 사람의 하루를 생각한

작은 기도가 숨어 있다.


밥상은

함께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서로를 돌보는 공간이 된다.

말없이 건네는 수저,

조금 더 챙겨주는 반찬,

그 모든 것이

“너를 아끼고 있어”라는

조용한 고백이다.

돌봄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평범한 순간 속에 있다.

그리고 그 밥상 위에서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조금씩 알아가고,

조금씩 채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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