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화 ‘그냥, 여기 있어줘서 고마워요’

부제: 존재만으로 위로가 되는 시간.

by YEON WOO

“내가 지금, 누구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당신이 여기에 있어서 참 좋아요.”

그 말을 들은 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르신은 창밖을 바라보며 천천히 숨을 고르셨고

나는 그 옆에 앉아 가만히 손을 잡고 있었다.


누군가를 안다는 건

이름을 기억하는 것도, 얼굴을 떠올리는 것도 아니었다.

함께 있는 시간의 감촉.

그것이 어르신에게는 지금‘기억’그 자체였다.

치매는 많은 것을 잊게 하지만,

가장 중요한 감정은 어쩌면 더 깊이 남는다.

따뜻함, 안정감, 신뢰, 편안함. 이런 감정은

언어보다 오래 기억된다.

“여기 있어줘서 고마워요.”

그 한마디는 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인사였다.

말을 건네는 것도, 손을 잡아주는 것도, 그저 곁에 있는 것도,

돌봄의 언어였다.


돌봄은 꼭 무언가를 해줘야만 하는 일이 아니었다.

때로는 아무 말 없이 옆에 앉아 있는 것,

그저 함께 시간을 견디는 것,

그 순간을 함께 살아내는 것이

가장 깊은 돌봄이 되기도 했다.

나는 그걸 현장에서 배웠다.

말을 잃은 사람 앞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조용히 앉아 있었던 날,

그 침묵이 오히려

가장 큰 위로가 되었던 순간을 기억한다.


손을 잡아주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말로는 닿지 않는 마음이

손끝의 온기로 전해질 때,

그 따뜻함은

언어보다 더 깊은 울림을 남겼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저 곁에 있는 것.

그 단순한 행위가

누군가에게는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라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가 되었다.

돌봄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눈빛 하나,

숨결 하나,

함께 있는 시간 하나하나가

모두 돌봄의 언어였다.

그 언어는

배워서 익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열고

사람을 바라보는 순간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이다.

나는 그 언어를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진심이 담겨 있다면,

그 언어는 반드시 누군가의 마음에 닿는다.


그리고 그 돌봄의 언어는

나를 더 따뜻한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세상을 조금 더 살 만한 곳으로 바꿔준다.

말을 건네는 것도,

손을 잡아주는 것도,

그저 곁에 있는 것도,

나는 앞으로도

그 언어로 누군가를 돌볼 것이다.

그것이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고,

내가 믿는 사랑의 형태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크고 화려한 말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작고 조용한 실천 속에서

조금씩 피어나는 것이라 믿는다.

누군가의 곁에 머무는 일,

지친 하루에 따뜻한 눈빛을 건네는 일,

말없이 손을 잡아주는 일.

그 모든 것이

내가 믿는 사랑의 모습이다.

사랑은

상대방을 바꾸려는 힘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을

조용히 안아주는 용기다.

그 용기는

돌봄의 자리에서 자주 필요하다.

나는 그 사랑을

공부 속에서,

현장 속에서,

그리고 내 안의 아이를 돌보는 과정 속에서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그 사랑은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때로는 흔들리고,

때로는 지치고,

때로는 말없이 멈춰 서기도 한다.

하지만 그 모든 순간에도

사랑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 존재는

누군가의 삶을 지탱해 주고,

나의 삶도 더 깊고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내가 믿는 사랑은

결국‘함께 있음’이다.

그 곁에 머무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를 지지하며,

서로를 살아가게 된다.

그래서 나는 돌봄을 사랑이라 부른다.

그 사랑은 내가 살아가는 이유이고,

내가 세상과 연결되는 방식이다.

그리고 그 사랑을 오늘도 조용히 실천하며,

나는 나의 길을 걷는다.

흔들려도 괜찮은 길, 조용하지만 따뜻한 길,

그 길 위에서 나는 사랑을 배우고,

사랑을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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