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화 ‘이름은 잊었지만, 느낌은 기억해요’

부제 : 감정은 기억보다 오래 남는다.

by YEON WOO

“이름이… 뭐였더라?

그냥, 그… 좋은 사람이었는데…”

어르신은 나를 바라보며 한참 동안 머뭇거리셨다.

내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걸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표정엔 당황이나 미안함이 없었다.

오히려 따뜻한 미소가 있었다.

“뭐, 이름은 모르겠는데 느낌은 기억나요.

당신 오면 마음이 편해져요.”

나는 웃으며 손을 잡았다. 그리고 속으로 되뇌었다.


‘느낌은 기억나요.’

이 말은 돌봄의 현장에서 자주 듣는 말이다.

이름도, 관계도, 날짜도 점점 희미해지는 치매의 시간 속에서

‘느낌’은 끝까지 남는다.

함께 있던 온기, 미소의 온도, 불안할 때 눈을 맞춰준 기억,

말없이 손을 잡아준 시간.

모두 다 뇌가 아니라 마음으로 기억하는 것들이다.

그날 나는 확신했다.

내가 건넨 수많은 인사와 미소들이 어르신 마음 어딘가에

조용히, 그러나 단단히 남아 있었다는 걸.

나는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그분은 늘 말이 적었고,

표정도 쉽게 드러내지 않으셨다.

나는 그저 매일 같은 시간에 찾아가

“안녕하세요, 오늘도 뵙게 되어 반가워요”라고

작은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그 인사에

작은 미소를 얹어드렸다.

그 순간들은

그저 지나가는 일상 같았지만,

어느 날 그분이

내 이름을 부르며

조용히 말씀하셨다.

“당신이 올 때마다,

내 마음이 조금 따뜻해졌어요.”

그 말에

나는 숨이 멎는 듯했다.

내가 건넨 인사와 미소들이

그분의 마음 어딘가에

조용히 스며들어 있었던 것이다.


돌봄은

즉각적인 반응을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때로는 아무런 변화도 없는 것처럼 보이고,

내 마음이 닿지 않는 것 같아

허탈해질 때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순간들이

조용히, 그러나 단단히

누군가의 마음에 남아 있다는 걸

나는 그날 알게 되었다.

그 인사 하나,

그 미소 하나가

그분의 하루를 견디게 했고,

그분의 마음을 조금씩 열게 했고,

그분의 삶에

작은 빛이 되어주었다.

그리고 그 사실은

내 삶에도 깊은 울림을 남겼다.

내가 건넨 진심이

누군가에게 닿았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나는 이 길을 계속 걸을 이유가 충분했다.


돌봄은

조용한 흔적을 남기는 일이다.

그 흔적은

말없이 마음에 새겨지고,

시간이 지나

가장 단단한 기억이 된다.

나는 앞으로도

그 조용한 흔적을 남기며

누군가의 마음 어딘가에

작은 온기를 심을 것이다.

그 온기가

언젠가 단단한 위로가 되어

그분을 지켜줄 수 있기를 바라며.

나는 오늘도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선다.

그분은 여전히 말이 없고,

표정은 무심한 듯 보이지만

나는 안다.

그 고요함 속에

작은 기대와 기다림이 숨어 있다는 것을.


돌봄은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흐름을

조심스럽게 따라가는 일이다.

그 흐름은 느리고,

때로는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작은 변화들이 자라고 있다.

내가 건넨 인사,

그분이 흘린 짧은 눈빛,

함께 마신 따뜻한 차 한 잔.

그 모든 순간들이

그분의 마음 어딘가에

조용히 쌓여가고 있다.

나는 그 온기가

그분이 외로운 밤을 지날 때

작은 불빛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기 어려운 날에도

“그래도 누군가 나를 기억하고 있구나”라는

생각 하나가

그분을 지켜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

그분이 내게 조용히 말해주신다면—

“당신이 와줘서 참 좋았어요.”

그 말 한마디면

나는 수많은 날의 흔들림과 지침을

기꺼이 견딜 수 있을 것이다.


돌봄은

결국 그런 순간을 기다리는 일이다.

조용히,

진심으로,

누군가의 마음에 닿기를 바라며

오늘도 나는

작은 온기를 품고

그분의 곁에 머문다.

그 온기는

내가 아침에 눈을 뜨며 떠올린 다짐이고,

현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에 실린 마음이며,

그분을 향한 조용한 애정이다.


돌봄은

거창한 행동이 아니라

작은 온기를 지켜내는 일이다.

그 온기가

누군가의 마음에 닿을 수 있도록

조심스럽게,

그러나 꾸준하게

내어주는 일이다.

나는 그분의 곁에 앉아

말없이 창밖을 함께 바라보기도 하고,

가끔은

그분이 좋아하는 노래를 조용히 틀어드리기도 한다.

그분은 말이 없지만,

그 침묵 속에서

나는 많은 것을 느낀다.

그분의 하루가

조금 덜 외롭기를,

그분의 마음이

조금 더 편안해지기를,

나는 바라며 그 자리에 머문다.

그리고 그 시간이

나에게도 위로가 된다.

누군가의 곁에 있다는 것,

그 존재만으로도

사람은 서로를 지탱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배워간다.

작은 온기는

내가 건넨 인사 속에도,

따뜻한 차 한 잔에도,

그저 함께 있는 시간 속에도

조용히 스며든다.

그 온기가

그분의 마음 어딘가에 남아

언젠가 단단한 위로가 되기를 바라며,

나는 내일도

그 온기를 품고

다시 그분의 곁에 머물 것이다.

그것이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고,

내가 믿는 사랑의 형태이기 때문이다.

그 사랑은

말보다 마음이 먼저 닿는 것이고,

행동보다 존재가 먼저 위로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조용히 곁에 머무는 일을

가장 깊은 사랑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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