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 아니라 공존의 언어에 대한 생각

그 자체로도 충분하다.

by YEON WOO

생각해 보면,

우리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위로’일까.

어쩌면 위로는 상처 위에 잠시 붙이는 얇은 파스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잠깐은 덜 아플지 몰라도,

근본적인 고통을 완전히 덜어주지는 못한다.

그래서 때때로 위로의 말은 공명을 남기기보다,

조용한 공허를 남기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다른 언어를 생각하게 된다.

상처를 덮으려는 말이 아니라,

함께 상처 옆에 오래 앉아 있을 수 있는 말.

그것은 위로의 언어라기보다

공존의 언어에 가깝다.

공존의 언어는 ‘괜찮아질 거야’라는 예측도,

‘너는 잘할 수 있어’라는 기대도 담고 있지 않다.

대신 아주 단순한 사실 하나를 품고 있다.

“네가 거기 있고, 내가 여기 있다.”

그리고 그 사실만으로도 조금은 덜 외로운 순간들이 있다는 것을.

공존의 언어는 상대의 감정을 바로 잡으려 하지 않는다.

온도를 바꾸려 하지도 않는다.

그저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을 그 자리 그대로 인정하며,

그 감정 속에 있는 사람을 놓치지 않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이 언어는 말보다 더 느리고,

말보다 더 오래 머물고,

말보다 더 깊이 닿는다.

위로는 종종 바쁘게 움직이지만,

공존은 조용히 머문다.

그 침착한 머무름이 지친 마음을 서서히 눕힌다.

그래서 나는 어느 순간부터 위로를 찾기보다,

누군가와 함께 존재할 수 있는 언어를 더 믿게 되었다.

그 언어는 미완성이어도 괜찮고, 흔들려도 괜찮다.

단단할 필요도 없다.

그저 사라지지 않고 옆에 머무는 것,

그 자체로 충분한 힘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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