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만난 선배 언니가 저를 보자마자 울먹였어요. 직감적으로 무슨 일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언니는 믿었던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고 못 받고 있고요. 믿었던 사람이 투자하라는 상가와 토지에 투자했다가 손해를 보고 있는 중이거든요.
그 내용을 다 알고 있는 저는 뭔가 또 큰일이 생겼구나 싶어서 철렁했습니다. 일단 돈 사고는 아니기를 진심으로 바랐습니다. 믿었던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었지만 차일피일 미루면서 돈을 갚아주지 않는 시간 동안 언니가 정신적으로 얼마나 힘들어했는지를 알거든요.
세상 물정 모르고 오로지 열심히 일해서 성실하게 사는 언니에게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저는 잔소리를 늘어놨습니다.
사람 사이에 '돈'이 거래되는 순간, 사실 그 관계는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는 생각을 늘 하기 때문입니다.
빌리는 사람 입장에서는 아쉽고 급해서 빌리겠지만요, 제때 기약을 지키지 않을 경우 돈을 빌려준 사람의 애타는 속은 그야말로 지옥이 되거든요. 그때부터는 주객이 전도되어 버립니다. 옛날부터 '돈은 앉아서 빌려주고 서서 받는다는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돈거래는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굳이 그 힘든 일을 하면서까지 관계를 어렵게 이끌고 가려는 사람들을 볼 때면 안타까워요. 저 역시 젊은 날에 믿었던 친구들에게 돈을 빌려주고받지 못해서 돈과 사람을 모두 다 잃어버리는 경험을 했던지라 선배 언니를 탓할 자격은 없었는데요. 이 언니는 저랑은 비교되지 않을 수준의 액수를 늘 잃고 다녀서 문제가 됩니다.
돈 사고는 아니라고 해서 다시 물어봤더니 믿었던 사람이 자신을 배신했다는 겁니다. 친하게 왕래하며 지내던 근처 건물의 주인이 자신의 건물에 선배 언니와 같은 업종의 가게를 입점시켜서 임대를 준 것이죠.
건물주였던 그 사람 입장에서는 들어오겠다는 임대인을 막을 도리가 없었겠지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업종도 아닌 선배 언니의 영업에 타격을 줄, 같은 업종 점포를 입점시켰다는 점에서 배신감이 클 수밖에 없었나 봅니다.
선배 언니는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했다는 사실에도 슬펐겠지만요. 아마도 믿었던 사람들한테 자꾸만 돈으로나 심리적으로나 배신을 당하는 자신에게 더 슬펐던 것 같아요.
사람을 무조건 믿고 관계에 최선을 다하려 했던 스스로에 대해 얼마나 속상한 마음이 많이 들었을까 싶으니 저도 덩달아 슬퍼지더군요.
이런 일이 번번이 일어나면, 사실 사람을 믿는다는 것 자체가 어려워집니다. 눈앞에 나타난 모든 사람들을 바라보는 자신의 마음이 이미 왜곡되어 버렸으니까요. 사람은 누구나 못 믿을 존재처럼 보이게 되는 거죠.
최근에 연근조림을 했는데요. 옆에 상한 부분을 조금 잘라내고 냄비에 담아 불 위에 올렸어요. 바글바글 끓고 있는 모습을 보다가.. 해골 같기도 하고, SF 영화에 나오는 외계인 같기도 한 모습을 봤습니다. (징그러워서 깜놀했어요)
마음에서 이미 딱 그렇게 정해 놓고 보니 진짜 해골, 외계인처럼 보이더군요. 불 위에서 끓기까지 하니 무슨 지옥불에 떨어진 해골들의 아비규환 모습 같기도 했습니다.
오전에는 연근조림에서 해골바가지를 보고요. 오후에는 지하 주차장에서 물 하트를 봤습니다. 일체유심조. 모든 것은 전부 마음이 지어내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장애인 주차 구역에 우연히 떨어진 물이 만들어낸 모양이 하트였어요. 휠체어 탄 모습 위에 생긴 하트 모양 물자국.
제가 하트처럼 보려고 하고 사진의 각도도 그렇게 잡다 보니 사람 머리 위에 생긴 물자국이 진짜 하트처럼 보였습니다.
어차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믿지 못할 사람에게 배신당한 경험을 바탕으로 믿을 만한 사람을 잘 선별하는 눈을 키웠다고... 그렇게라도 여기면서 자신을 다독였으면 좋겠습니다.
배신하는 파렴치한들을 만난 스스로를 탓하느라 행복할 수 있는 지금 이 순간마저 슬프게 보내서야 쓰겠습니까. 일체유심조, 모든 것은 비교적 마음에 달려 있다고 믿습니다. 마음먹으면, 세상 모든 일을 다 해낼 수는 없을지라도 많은 부분을 해결하면서 살 수는 있을 겁니다.
이왕이면 세상을 사랑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되,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은 구분할 줄 아는 마음의 눈도 키웠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내 마음이 조금 더 단단해져야 누군가 다가와서 거세게 흔들어 대도 꿋꿋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해골을 떠올리는 눈보다는 하트를 바라보는 눈이 지금 우리에게는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세상 많은 배신자들을 만났다고 해서 슬플 것도 없습니다. 그 많은 배신자들을 다 뚫고 이 자리에 섰으니 앞으로는 정말 좋은 사람을 만날 차례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