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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하LeeHa Mar 08. 2020

학인(學人),질 때 조차 배우는 사람.

김민식 피디님의 신나게 한방 먹이는 법.


김민식 피디님의 새 책이 나왔습니다. <나는 질 때마다 이기는 법을 배웠다>라는 제목이 예사롭지 않죠?!


이 책은 김민식 피디님의 파업 투쟁기입니다. 2012년부터 2017년 MBC 정상화 투쟁 때까지 고군분투하며 스스로를 지키고 MBC를 지켜낸 이야기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대한 생각을 계속하게 만드는 책이에요.



여기서 잠깐. 김민식 피디님을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소개를 잠시 해보자면요. 김민식 피디님은 현재 MBC 드라마 피디 겸 베스트셀러 작가이십니다. 날마다 티스토리 블로그에 글을 올려서 1900개 가까이 포스팅을 하신 분이시죠.


저도 김민식 피디님의 <매일 아침 써봤니?>를 읽고 티스토리에 글을 올리다가 네이버 블로그, 브런치를 하게 되었고 이제는 인스타그램까지 하는 중입니다. 그러니 제 인생 후반의 글쓰기에 큰 영향을 주신 분이 맞습니다. 저도 피디님처럼 꾸준히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책 내용이 무엇일지 살펴볼까요?




김민식 피디가 사랑한 회사, MBC


김민식 피디님은 짝사랑하던 동시통역 대학원의 후배에게 잘 보일 요량으로 선택한 MBC 공채 시험에 덜컥 합격을 합니다. 피디 시험 치러 온 사람이 MBC 방송은 하나도 안 보고 통역 공부 때문에 CNN만 본다고 말하는 데에서부터 이 분의 반전은 시작되지요.


오며 가며 들은 방송 프로그램 하나라도 슬쩍 말하면 됐을 텐데 '아는 척' 하고 싶지 않아 있는 그대로 솔직히 말합니다. 입사 면접 때부터 합격을 위한 잔재주 같은 것은 부리지 않는 모습에서 피디님의 삶의 자세가 드러나요.


비전공자로서 남들은 몇 년씩 준비하는 피디 시험에 합격하고 짝사랑하던 후배와 결혼까지 하게 되었으니 김민식 피디님께 MBC는 그냥 직장이 아니었던 거죠. 우주에서 가장 좋은 직장으로 생각하고 열심히 즐겁게 일을 했답니다.


당시 MBC는 피디들의 실수를 용인하고 기다려주고 기회를 주는 시스템이었기에 몇 년 후에는 보답하듯 시청률 대박을 터트리는 프로그램들이 많을 수 있었답니다. 실수를 실패로 규정하고 기회를 빼앗는 문화는 MBC에 없었던 시절. 피디님은 행복하게 일을 하셨다고 해요.



운명의 수레바퀴를 돌린 선택

그러다가 마흔에 늦둥이 둘째 따님을 낳고 수명 짧은 예능 피디에서 드라마국 피디로 자리를 옮깁니다. 사랑하는 직장 MBC에 오래오래 다니고 싶어서 한 결정이었지만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겁니다. 어디 가나 눈에 보이지 않는 텃세라는 것이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국에서 최선을 다해서 <내조의 여왕>으로 백상예술대상 공동 연출상도 받습니다. 어느 장소, 어느 역할이든지 주어진 것에는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넣는 자세로 2012년까지 피디 생활을 해 오신 거죠.


그런 그에게 운명의 수레바퀴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돌리게 하는 일생일대의 결정의 순간이 왔는데요. 바로 2012년 MBC 노조 부위원장을 맡게 된 것입니다.


딴따라로 자신을 규정하고 살던 그는 이전까지 파업에도 참여하지 않았다고 해요. 그런데 모든 드라마국 피디들이 노조 부위원장을 맡지 않으려고 하는 순간. 결심합니다.


'드라마국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희생타를 쳐야 할 시기이구나.'


이때의 결정으로 2012년 170일간의 파업이 시작되었고 그 후  5년간 김민식 피디님은 연출에서 배제가 되는 수모를 겪습니다.



피디의 연출 능력은 40대가 전성기라고 합니다. 30대의 조연출과 연출 시기를 거쳐 40대부터는 그동안 갈고닦은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터뜨릴 수 있는 판이 깔리는 거죠.


그 시기에 노조 부위원장 역할을 맡아 파업에 동참하는 바람에. 소위 말하는 MBC 윗선에 밉보여 피디 같지 않은 피디의 아픈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현장에서 연출을 해야 할 피디가 주조정실에서 보기 싫은 뉴스를 시청해야 하는 자리로 쫓겨 갑니다. 이때의 울분을 다스리기 위해 끊임없이 읽고 썼고 그렇게 해서 나온 책이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입니다.


이 책은 대박을 터트리면서 김민식 피디님 연봉의 절반에 해당되는 인세를 출간 3개월 만에 받게 되었다고 하죠. 그리고 이런 이력은 김민식 피디님을 징계하려는 징계위원회 위원들 앞에서 자신을 소명하는 55쪽짜리 보고서 안에 그대로 녹아들어갑니다.


MBC 사장 이하 호위 무사들이 김민식 피디님을 찍어 누르려 할 때마다 끝끝내 찍히지 않고 자신의 존재를 분명히 알립니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 아래에서 MBC는 공정성을 잃어버렸고 그로 인해 노조가 반발하며 파업을 했지만 바뀌지 않는 긴긴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 사이 믿고 사랑했던 동료들은 회사에서 쫓겨나고 고발 당하고 심지어 병까지 얻게 되지요.  


김민식 피디님은 '나는 조직을 위해 싸웠는데 나를 지켜주는 조직은 없었다'라고 말합니다. 일벌레 예능 피디로 시트콤 700편을 만들고 드라마 피디로 3년간 4편의 작품을 만든 그에게 정권의 눈치만 보느라 변질되어버린 MBC는 더 이상 연출할 권한을 주지 않죠.


김민식 피디님의 수족을 다 묶어버렸는데도 드라마국의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해요. 좌절과 고통과 분노의 시간이었을 겁니다.



싸워야 할 때는 절대 피하지 않는다.
MBC 프리덤. 퇴진요정



그는 그 힘든 시간들을 주눅 들어 있기보다 즐겁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내어 파업을 주도합니다. <MBC 프리덤>의 연출로 징계를 받게 되지만 많은 국민들에게 MBC의 실상을 알리는 역할을 하게 되지요.


30만 뷰 가까이 조회 수를 올린 <MBC 프리덤> 잠깐 보고 가실까요? 현직 사장에게 회사를 떠나라고 춤추며 노래하는 퍼포먼스를 연출할 수 있는 강단과 배짱을 가진 사람, 김민식 피디님의 생애 최대 연출작이라는 작품을 보실 수 있습니다.





그런 과정들 속에 사랑하는 동지이자 친구를 떠나보내야 하는 아픔도 겪고요. 15년을 즐겁게 일했다는 그는 7년의 시간을 고통스럽게 보냅니다.


그러면서도 MBC를 떠나지 않아요. 결국 이 길고 길었던 싸움은 끝이 나서 MBC가 정상화된 후 김민식 피디님은 드라마국에 복귀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연출도 맡게 되지만 마음속 깊은 곳의 상처가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을 듯합니다.

 


변방에서 산 7년 동안 연출 감각도 시장 감각도 다 잃었다. 최근, 재미난 대본을 보고 연출 의사를 밝혔지만 작가가 난색을 표하는 바람에 기회를 놓쳤다. 정치색이 너무 짙어 부담스럽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연출이 힘들다면 조직 관리라도 해야 하는데, 보직자도 쉽지 않다. 2012년 파업 당시 조합원의 집회 참여를 독려하며 살았다. 6개월간 싸우며, 파업에 열성적이었던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하나하나 다 기억하고 있다.


리더의 역할은 구성원의 다양한 정체성을 존중하고, 화합을 일구어 내는 것이다. 나는 그걸 잘 해낼 자신이 없다. 나는 퇴물이다. 퇴물은 그나마 괜찮다. 높은 자리를 탐내다가 괴물이 될까 두렵다. 상처가 많은 사람이 부장이 되었다가 조직을 망가뜨린 일이 남일 같지 않다. 이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279-280쪽



바오바브나무처럼 잘 살고 계십니다



김민식 피디님의 <내 모든 습관은 여행에서 만들어졌다>를 보면 탄자니아 잔지바르의 바오바브나무 이야기가 나옵니다.


660년 된 바오바브나무가 태풍에 쓰러져 뿌리가 뽑힌 채 밑동이 다 드러납니다. 그런데도 땅에 드러누운 상태로 여전히 살아서 가지를 뻗고 잎을 피워낸다고 해요.


만신창이가 되어서도 꿋꿋이 살아남아 새 생명을 키워내는 바오바브나무처럼 상처 많은 우리들도 이 상처 그대로를 감싸 안은 채 우리 안의 꽃을 피워내보면 좋겠습니다. 김민식 피디님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바로 그것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잘 달리는 게 실력이 아니라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나는 것이 실력이랍니다. 내가 누구인지 깨닫고 내가 무엇을 할지 깨달았다면 고민을 끝내고 선택한 그 일을 반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시는 피디님은 그래서 오늘도 읽고 쓰는 삶을 삽니다.



먼저 떠난 친구에게 띄우는 편지 같은 책



<나는 질 때마다 이기는 법을 배웠다>의 프롤로그에는 김민식 피디님과 이용마 기자님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용마 기자님은 파업 도중 병을 얻어 끝내 세상을 떠나셨어요. 두 분의 우정과 먼저 간 친구에 대한 절절한 마음이 그대로 전해집니다.


아픈 후배를 자신의 집에 데려다가 병간호를 해주고 박나림 아나운서를 만나볼 수 있도록 주선해 주는 장면에서도 눈물이 납니다.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는 법을 아는 사람, 휴머니스트 김민식 피디님의 모습이 책 속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옵니다.


저는 이 책이 김민식 피디님의 7년에 걸친 MBC 정상화를 위한 투쟁의 기록이자, 친구에 대한 편지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친구가 남긴 어린 아들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작가 김민식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읽고 쓰며 세상을 변화시켜 나갈 거예요. 그 약속의 징표가 이 책 <나는 질 때마다 이기는 법을 배웠다> 아닐까 싶어요.


정직하게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타인과 조화를 이뤄나가고 싶으신 분들이라면 일독을 권합니다. 가슴 뜨거워지는 경험을 하게 되실 거예요.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 <매일 아침 써봤니?> <내 모든 습관은 여행에서 만들어졌다> <나는 질 때마다 이기는 법을 배웠다>까지 한 작가의 책 네 권을 다 가지고 있네요.


첫 책을 읽을 때부터 저에게는 김민식 피디님의 진심이 완벽하게 전해졌어요. 그래서 출간하실 때마다 계속 찾아서 보게 되었습니다. 저에게는 믿보작. 믿고 보게 되는 작가님이십니다.


피디님이 쓴 책들에는 아픈 시기를 살아낸 사람 특유의 흔들리고 여린 감성이 있고요. 힘든 순간을 딛고 일어선 강인함, 그 속의 인간적 갈등과 고뇌의 흔적들이 있습니다.


아팠던 걸 아프지 않았던 것처럼 돌려 말하지 않고요. 서운했던 감정을 괜찮았다고 포장해서 말하지 않습니다. 순간순간 솔직하고 순간순간 최선을 다합니다.


저 멀리 있는 원대한 목표를 바라보며 골머리 썩고 시간 보내는 일 하지 않아요. 지금 바로 앞에 있는 자신이 해야 할 가장 작은 일부터 가장 재미나고 즐거운 방법으로 해나갑니다.


그래서 믿음직합니다. 각자의 삶의 방식 있는 그대로에서 시작할 것을 권하기 때문이죠. '나를 따르라'라고 말하는 세상 꼰대들에게 한방 먹이는 괜찮은 어른을 만나고 싶다면 저는 주저 없이 김민식 피디님의 책을 추천하겠습니다.


세상을 보는 관점을 근사한 쪽으로 고쳐나가고 싶게 만드는 책. 그 책을 쓴 저자. 김민식 피디님, 참 매력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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