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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하LeeHa Oct 08. 2020

딸이 물었다. 매일 거절당하는 그 일을 왜 하는 거냐고

그 물음에 대한 나의 대답을 너에게 보낼게

딸 너에게


네가 일곱 살 때던가.

조그만 손으로 편지를 써서 준 적이 있었어.


당시 너는 편지 쓰기가 취미였지.

또 수많은 편지지를 망치는 것도 취미였어.

편지지 한 장에 주먹만 한 글자 몇 개를 써놓고는

낄낄대던 너를 보며

속으로 '글자 좀 작게 쓰면 좋을 텐데...' 했단다.

나는 편지지를 아까워하던 엄마였어.


그러던 어느 날 네가 준 편지에 이런 내용이 있었지.

'엄마도 엄마가 좋아하는 일을 했으면 좋겠어.'라는.

그 글을 보며 약간 충격을 받기도 했던 것 같아.


'엄마는 집에서 너랑 노는 게 좋은데..

네가 말 안 들으면 싫기도 하지만

아이 키우는 엄마의 삶이란 것이 다 이렇지 뭐.'

그렇게 생각하며 살던 내가,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지.

네가 써 준 한 통의 편지 때문이었어.


10여 년 전. 이때 네가 써준 편지가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구나


그 편지를 한참 들여다보다가

엄마는 구부러진 몸을 가까스로 펴보았어.

마흔을 목전에 둔 엄마도 스스로의 인생이

마음에 들지 않아 답답하기도 했으니까.

미련한 불안감을 곰인형 품에 안듯

끌어안고 살 때였거든.

무섭고 두려웠지만

밖으로 나갈 결심을 하게 됐어.


그 후 이런저런 공부모임에 부지런히 참석하며

동화를 쓰는 사람이 되었지.

그런데 생각만큼 동화가 술술 써지지도 않았고

꿈꾸던 만큼 책이 빨리빨리 출간되지도 않았어.


동화 작가로 등단한 지 1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엄마는 글 쓰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은 적은 없었던 것 같아.

열심히 쓰지 않았을 때도 있었는데

뭔가를 계속 생각하며 써보려는 시도는 항상 했어.

기대만큼 안돼서 그렇지, 노력을 안 했던 건 아니야.


한동안은 원고를 써서 출판사에 투고를 해도

매번 거절당하기만 하던 때도 있었어.

문학상을 받고 등단을 했다고는 해도

내 이름을 건 문학 작품을 출간하는 일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였어.


하도 거절을 당하니까

엄마도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그때 조금 더 커서 사춘기가 된 너는 이렇게 말했지.

"뭐 하려고 자꾸만 보내요?

매일 거절당하는 그 일을 왜 해요?

그냥 기분 나쁘니까 보내지 마. 엄마.

작가 같은 거 안 해도 엄마는 괜찮은 사람이야."


너는, 사랑하는 엄마가

수많은 출판사에 거절당하고

공모전에 낙방하는 모습이 보기 싫었을 거야.

그 마음 나도 알지.

사랑하는 사람이 상처 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말이야.


그런데 나는 줄기차게 거절당하고

끊임없이 외면당하면서도

그 일을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어.

여전히 거절과 외면의 순간을 맞닥뜨리며 살고 있지.

처음에는 자존심도 상했지만

이젠 그런 마음은 많이 사라졌어.


좋은 글을 써서

제대로 된 동화책을 남기고 싶다는 마음이 크니까.

그래서 엄마는 오늘도 거절당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어.


사실 내가 '거절당하는 삶'을 선택해서

이렇게 사는 이유 중의 하나는

너 때문이기도 해.

꽤 커다란 부분을 네가 차지하고 있지.


그 옛날의 너는, 내편을 무척 잘 들어줬지. 물론 지금도.



세상엔 우리 뜻대로, 나의 뜻대로만

되는 일은 없거든.

반대의 경우가 훨씬 많단다.

그 사실을 네가 꼭 기억해줬으면 해.

그럴 때마다 지레 포기해 버리고

뒤로 나가떨어져 버릴 수는 없는 거잖아.


누가 나를 거절하면....

거절하지 못할 정도로 나의 수준을 끌어올리든지.

거절을 견뎌낼 수 있는 단단한 마음을 키워내든지

둘 중 하나는 해야 하지 않을까?


시간을 가지고 기다리며

실력이나 마음을 보살펴서

여물어지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엄마는 한때 거절당하는 게 너무 두려웠어.

무시당하는 것도 괴로웠고

실패하는 것도 힘들었지.

출판사로부터 되돌아오는 거절 메일의 무게는

하염없이 무겁단다.

우울하고 슬프지.

그런데 그걸 뻔히 알면서

그 과정을 지금도 감당하는 중이야.


너, 기억나니?

예전에 오목 둘 때마다

흰돌만 가지겠다고 네가 고집 피웠던 거.

검은 돌은 밉다고 손에 쥐지도 않았지.

검은 돌은 늘 엄마 차지였단다.


엄마가 좋아하는 장영희 교수님께서 제자에게

흰돌과 검은 돌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고 해.

인생에는 정해진 만큼의

불운을 나타내는 검은 돌과

행운을 나타내는 흰 돌이 있다고 말이야.

우리가 살아가는 일이란

곧 이 돌들을 하나씩 꺼내는 과정이라는 거지.


똑같은 수의 검은 돌과 흰돌이 있다니까

검은 돌을 빨리빨리 뽑고 나면

흰 돌들이 우르르 몰려나오는 시간들도 있지 않을까?


엄마는 이제 인생의 검은 돌들을 만나면

무서워하거나 주눅 들기보다는

얼른 쓱싹쓱싹 해결하고

그 다음번 돌을 기다리는 자세로 살아가려고 해.


다음번 돌들이 빛나는 '흰색 돌'이려면

그전에 힘들고 고통스러운 '검은 돌'들을

의연하게 맞이하는 마음의 자세가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거든.


그래서 엄마는 늘 거절당할 준비.

외면당할 준비를 하며 살아.

부지런히 살다 보면

엄마 인생에서 거절당하는 순간들이

더 빠르게 다가왔다가

더 날쌔게 지나가버리겠지.


엄마는 오늘도 검은 돌을 뽑고 있어.

언젠가 나올 흰 돌을 기쁘게 맞이하는 법을

겸허하게 배우고 있는 중이야.




이게 바로

거절당하는 그 일을 매일같이 하면서도

상처 받지 않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네 인생의 힘들고 슬픈 검은 돌도

의연하게 받아들이고

용기 있게 나아가기 바란다.


누구에게나

정해진 개수만큼의 흰 돌은 있는 법이니까.

나는 네가 현명했으면 좋겠고,

고통과 슬픔 역시

너의 현명함을 채워나가는 데에 재료가 된다는 사실로

받아들였으면 좋겠어.


검은 돌을 뽑아도 괜찮아.

우리는 그 녀석들을

이제 거의 다 뽑아가는 중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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