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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하LeeHa Apr 26. 2020

김밥 꽁다리가 먹기 싫다는 너에게

살다 보면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이 있단다

딸, 너에게.


며칠 전에 엄마가 김밥을 쌌잖아.

너도 잘 알 거야.

엄마의 주특기가 김밥이란 걸 말이야.

 

엄마는 한때 김밥이 굉장히 싫었거든.

속에 들어가는 재료가 쓸데없이 너무 많아서

준비하는데 지치더라고.

근데 일단 준비해 놓으면

그 재료가 동날 때까지

다른 반찬 걱정 없이

김밥만 싸면 되니까 편한 점도 있더라. 


세월이 흐르면서

김밥 재료를 마음 내키는 대로 정한 다음

김밥을 싸도 전혀 문제없다는 걸 알게 됐어.

집에 없는 재료는 빼고, 

있는 재료들로만

김밥을 말아도 충분히 맛이 난다는 것.

그게 바로 김밥의 매력 아니겠니?!

상황에 따라서 변화해야 하는 건

인생이나 김밥이나 매한가지 같다.


너, 기억나니?

엄마가 김밥을 썰어서

꽁다리만 모아놓았던 것 말이야.

예쁘게 썰어 놓은 것은 아빠랑 셋이서

저녁으로 먹으려고 따로 접시에 담아놨었잖아.

김밥 싸는 틈틈이

오며 가며 한 개씩 집어먹는 너에게

꽁다리 가득한 접시를 내밀었지.

그때 몇 개 집어먹던 네가 말하더구나.

"엄마, 난 꽁다리 먹으면 목이 콱 막혀요.

안 먹을래."

너는 예쁘게 썰어 놓은 김밥만 가져다 먹더라.


너는 어릴 때부터 그랬어.

네가 하기 싫은 건 엄마가 부탁해도

절대 마음을 바꾸는 법이 없었지.

난 아직도 기억이 난다.

‘엄마를 안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거 하기가 싫은 거야.’

라고 말하던 고집불통 너의 모습 말이야.

처음에는 '뭐, 이런 애가 다 있나?'

'얘는 도대체 어디서 나타난 걸까?'

생각했단다.


 

어릴 적에도 너는 싫은 건 싫다고 꼭 말했지...


 

왜냐하면 엄마는 안 그랬거든.

엄마는 어릴 때부터

외할머니가 싫어하는 일은

안 하려고 애썼고

외할머니에게 칭찬받은 일은

계속하려고 노력했어.


김밥 꽁다리는 외할머니가 시키지 않아도

언제나 내가 먹었지.

내가 먹지 않은 꽁다리가

외할머니 몫이 된다는 걸

그냥 눈치로 알았으니까.

엄마는 일찍 철이 들어서

할머니를 잘 이해했던 것 같은데

어떻게 내가 낳은 내 딸은

나를 이렇게 이해해 주지 않나

속상하기도 했어.


그런데 바꿔 생각해 보니

너는 너대로 꽤 괜찮은 아이더라.

너는 어릴 때부터 네 생각과 네 주장을

분명히 표현했어.

어렸기에 방식이 세련되지 못하고 투박했을 뿐이지,

너는 너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낸 거야.

누구 눈치도 보지 않았고

하기 싫은 일은 하지 못하겠다고 정확히 말했지.


그걸 어른의 눈으로 보고 재단하려 든

엄마가 문제였던 것 같아.

세상의 시선에만 신경 쓰면서

우리 딸이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사람으로 자랐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거든.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서 

'어머, 딸 잘 키우셨어요.'

하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나 봐.

그게 다 나의 욕심이었던 거지.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사람이 되려면

정작 너 스스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살 수도 있다는 걸

나중에야 깨달았어.

엄마는 늙어서 알게 된 이런 사실을

어린 너는 어려서부터 알고

행동으로 옮기는 게 나와 다른 점이라고 생각했지.

그래서 있는 그대로의 너를,

생긴 그대로의 너를 인정하기로 했단다.


"김밥 꽁다리가 목에 콱 걸려서 못 먹겠어요."

라고 말하는 너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지.

"그래 먹지 마. 엄마가 대신 먹을게."

"엄마도 목에 콱 걸릴 텐데. 그냥 먹지 마요."

"아냐. 엄마는 목구멍이 겁나게 커서 꿀꺽꿀꺽 잘 삼켜."

나는 네가 먹지 않고 남긴 김밥 꽁다리를

18년 가까이 대신 먹어왔어.


사실 지금 와서 고백하는 건데.

내 목구멍도 그다지 크지는 않아.

아니, 원래 컸었는데 나이 들면서 쪼그라들었나 봐.

나도 '두툼하면서도 너덜거리는 김밥 꽁다리'보다는

얄팍하고 매끈하고 예쁜 가운데 김밥들이 더 좋아.


그렇다고 너와 네 아빠에게

내 몫의 김밥 꽁다리를

부탁할 생각은 없어.

그냥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김밥 꽁다리 정도는

스스로가 먹자는 거지.

김밥 꽁다리에 불과한 사소한 불편함도

스스로 처리하지 못하게끔

엄마가 다 해결해 주는 건 아닌 것 같아.

또 어린 시절의 나처럼 외할머니께 칭찬받고자

늘 김밥 꽁다리만을 도맡아 먹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아.


살다 보면.

김밥 꽁다리가 목구멍에 콱 걸리는 것처럼

답답하고 속 막히는 일들이

부지기수로 생길 수 있어.

그때마다 목구멍도 늙어가는 이 엄마가

돌격대로 나서서

네 삶의 김밥 꽁다리들을

죄다 먹어 치워 줄 수는 없어.


네 삶의 주인 노릇도 네가 해야 하고

네 삶의 종노릇도 네가 해야 한다고 생각해.

삶의 주인 행세에만 빠져서

'하기 싫거나 하기 힘든 일'을 주변에게,

타인에게 전가하며 살 수만은 없잖아.


오로지, 너의 삶이다.

네 삶의 주인이 될 때도 씩씩하게,

네 삶의 종이 되어야 할 때도 주저함 없이.

그렇게 온전히 네 삶을 조절하면서 살기 바란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앞으로 네 몫의 김밥 꽁다리를

내가 대신 먹어주는 일은

없을 거라는 거야.


우리 각자 인생에서 쏟아져 내리는

'김밥 꽁다리'같은 일은 혼자서 해결해 보자꾸나.

김밥 속 재료에 변화를 주듯이 

우리 인생의 변화도

담담히 받아들여 보자.

우리 모두 이제부터 시작이야.


그러다 어느 순간. 정 힘들면 말하렴.

그때는 엄마가 바로 출동해서

'김밥 꽁다리'같은 일들을 해치워줄게.

따끈따끈한 된장국물과 함께라면

목구멍이 늙어가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거야.


그러니 걱정 말고.

오늘 밤, 네 몫의 김밥을 즐겨.

꽁다리 네 개와 함께.

 


한 개는 제일 아래 오른쪽 끄트머리에 숨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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