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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하LeeHa Nov 01. 2020

엄마, 가장자리 끝으로 와요.

두려워도 한 발자국씩 다가가 끝에 서보자.

딸, 너에게.


있잖아.

엄마가 고백할 게 있어.

네가 어렸을 때 너랑 더 잘 놀아줬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어.

그래서 그게 항상 마음에 걸렸어.


세 식구. 단출한 살림을 하면서

또 아기라고는 딱 하나 있는 너를

잘 키우기만 하면 됐었는데

나는 그게 참 힘들었어.


밤을 새우며 회사 일을 할 수는 있을지언정

살림이나 육아를 하려고만 하면 그렇게 졸리더라.

집안 살림에 수면제를 뿌려놓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지.


너랑 놀아주다가도 스르륵 누워서 잠든 적이 많아.

어린 너는 혼자 두리번대다가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어.

그러다 도저히 못 참겠으면

잠자고 있는 엄마 몸 위로 기어오르며

때려 깨우기도 했단다.

엄마는 잠은 많고 철은 없는, 그런 사람이었어.


다른 집 엄마들이 아기들을 위해

각종 문화센터와 놀이교육, 교구들에 열을 올릴 때도

또 알뜰살뜰 장난감을 만들어 주며 같이 놀아줄 때도

엄마는 집에서 책만 조금 읽어주다가

또 쓰러져서 잠을 잤어.

(전생의 나는 잠을 못 자는 바람에 죽었던 게 분명해.)


그래서였을까?

너는 밖에 나가면 유독 겁이 많았지.

유치원에 가서도 아이들에게 이리저리 휘둘리기도 했고

어느 날은 집에 와서 너무 무서운 여자애에 대해

이야기하며 울기도 했어.


그 모든 게 내가 너를 어릴 때부터

집안에 그냥 끼고 앉아서 책만 읽어 주고

잘 논다며 내버려 두고

나 혼자 스르륵 잠들었기 때문 아닐까.

고민도 해봤어.


너는 꽤 커서까지도 겁이 많았어.

여자아이들이 철봉에 날다람쥐 마냥 매달려

뱅글거리며 돌 때도

너는 따라 하기는커녕 바라보기조차 무서워했지.




나는 차츰 네가 걱정이 되었어.

길거리 지나가는 강아지도 길고양이도

다 무서워하는 네가

또래 아이들의 야유나 비난도

두려워하고 아파하던 네가

여린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굵은 눈물방울을 줄줄 흘리던 네가

다 걱정이었지.


그런 너를 바라보는 내 마음은 참 아팠다.

'내가 잠을 많이 자서 네가 겁이 많은 건가?'

생각해 보기도 했어.

연관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라도

내게서 구실을 찾고 싶었는지도 몰라.


사춘기 지나서는 겁이 많으면서도

동시에 퉁명스럽고 까칠하게 굴더라.

그런 행동으로 나를 겁나게 하기도 했지.

나는 '겁'에 관한 한

조금 더 자유롭고 싶었어.


'겁'이 많으면 행동에 제약이 따르잖아.

두려움은 잦은 물러섬을 만들고

결국 존재의 기운을 빼버려.

'내가 이깟 것도 못하는 인간이었다니.'

그런 생각이 스스로에게 드는 날은

기분이 아주 별로가 되어 버리니까.  


그래서 나는 네가 '겁'에 집어삼켜지지 않을 만큼의

용기가 생기길 바랐어.

언제가 우리들에게도

반가운 용기가 찾아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


얼마 전 네가 나를 불렀어.

그리곤 '엄마, 이것 좀 들어봐.'라고 하더니

아래 글을 읽어 주더라.



그가 말했다.

"가장자리 끝으로 오라.!"


그들이 대답했다.

"우린 두려워요."


그가 다시 말했다.

"가장자리 끝으로 오라."


그들이 왔다.


그는 그들을 밀어 버렸다.


그리하여 그들은 날았다.


- 기욤 아폴리네르





"이걸 나한테 왜 읽어주는 거야?"

내가 물었어.

"응, 앞으로 무슨 일이든지 하게 될 때

두려움이 생겨 포기하고 싶은 순간 이걸 떠올리려고."

네가 대답했지.

"가장자리 끝은 무섭지 않겠니?"

내가 물었어.

"무서워도 어떡해? 날아오르려면 하는 수 없지."

네가 이렇게 답하더라.

.

.

.

아, 그렇구나.

그 옛날 겁 많던 '겁보'였던 네가

이제 조금씩 바뀌고 있구나.


날아오르기 위해서는 가장자리 끝에서

밀쳐진 채

떨어져 봐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구나.


떨어지면서 비로소 날아오를 수 있고

마지막 빈손일 때 무언가를 쥘 수 있다는 사실을.

네가 알아가고 있구나.

그럼 됐다.

엄마도 여전히

겁이 날 때가 많아.


인생에는 구비구비 거칠고 매서운 일들이 도사리고 있지.

하지만

돌아서고 싶은 순간에도

다시 한번 가보는 것.

울면서 포기하려다가도

마지막 최선을 다해 보는 것.

편안한 자리에 눕고 싶다가도

가장자리 끝에 제대로 서보는 것.

 

이게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일, 아닐까?



© MichaelKoll, 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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