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하LeeHa Oct 02. 2019

김영하와 베르나르 뷔페를 통해서 본 삶의 자세.

노바디와 섬바디. 자만과 겸손


얼마 전 예술의 전당에서 <베르나르 뷔페> 전시회가 열렸었죠. 베르나르 뷔페는 프랑스의 천재 화가로 피카소의 대항마로 일컬어지던 사람입니다.  베르나르 뷔페의 평생에 이어진 그림에 대한 사랑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귀한 기회였습니다. 저는 그 전시회에서 굉장히 깊은 감명을 받았어요.


전시회에서 그의 작품을 보던 중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 속 한 구절이 겹쳐 보이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썼던 글이에요.   






베르나르 뷔페와 부인 애나벨



베르나르 뷔페는 문학도 사랑했을까요?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 속 '노바디의 여행'은 저에게  베르나르 뷔페의 작품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 이유는 소설가와 화가의 전혀 다른 작품이 둘 다 '오디세우스'에 관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이에요.


먼저 베르나르 뷔페에 대해 조금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베르나르 뷔페는 평소에 문학에 관심이 많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내인 애너벨이 작가였기 때문에 영향도 받았을 테지만요.


'프랑스의 가장 뛰어난 젊은 재능 5인'에 이브 생 로랑, 프랑수아즈 사강과 더불어 이름을 올렸던 베르나르 뷔페는 그들과 우정을 나누는 사이였다고 해요. 프랑수아즈 사강의 저서에 그림도 그렸고 반대로 자신의 그림 속에 여러 문학 작품을 녹여내기도 했답니다.


 베르나르 뷔페


쥘 베른의 <해저 2만 리>를 읽고 영감을 받아서 그린 작품도 전시가 되어 있었는데요. 작품 제목이 <해저 2만 리- 노틸러스호의 거대한 현창>입니다. 배 안의 현창을 통해서 바닷속 생물들의 모습이 보이죠. 베르나르 뷔페는 동물에 굉장히 관심이 많았다고 해요. 


동물들을 하도 열심히 그려서 그의 미술적 재능을 자연과학 선생님이 일찌감치 알아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작품 속에 고릴라와 까마귀, 해양생물들이 많이 등장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아요.   


해저 2만 리 -노틸러스호의 거대한 현창 by 베르나르 뷔페



여기서 잠깐.  
오디세우스 이야기 조금만 하고 갈게요.



베르나르 뷔페와 애나벨


베르나르 뷔페의 문학 사랑은 오디세우스와 관련된 또 다른 작품을 탄생시켰습니다. 


이 그림은 오디세우스가 고향인 이타케로 돌아가는 동안 겪은 숱한 모험 중 하나를 다루고 있습니다. 세이렌들(얼굴은 사람, 몸은 새)과 밧줄로 몸을 묶은 오디세우스의 모습이에요.


오디세우스와 세이렌 by 베르나르 뷔페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오디세우스가 유명해진 데에는요. 그가 겪은 모험이 한몫 단단히 합니다. 특히나 노랫소리로 사람을 유혹하여 배를 난파시키고 죽게 만드는 세이렌들이 악명 높죠. 바다를 지나면서 세이렌들의 노랫소리를 피하기 위해 선원들의 귀는 밀랍으로 막고요. 노랫소리가 궁금했던 오디세우스는 죽음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배의 기둥에 묶습니다. 


노랫소리에도 어느 사람 하나 반응이 없자 수치심을 느낀 세이렌들은 바다에 빠지며 스스로 파멸의 길을 선택했다고 하지요. 그 유명한 장면을 베르나르 뷔페가 작품으로 남겼어요. 다른 화가들도 이 장면들을 그림으로 남겼다고 하는데요. 화가에 따라 표현 방식과 세이렌의 묘사 기법이 다 다릅니다. (몸통이 새라는데... 베르나르 뷔페는 사람 몸으로 그렸더군요^^)




김영하 작가 노바디의 여행.
자만과 겸손 사이에서 나를 찾기.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 그 속의 한 부분인 '노바디의 여행'에서는 여행자의 자세를 오디세우스 신화를 빌어 재미나게 들려주고 있어요. 오디세우스의 교만한 행동이 빚어낸 고난을 통해 바람직한 여행자가 되기 위한 방법을 배울 수 있답니다.


오디세우스는 그 이름이 '신들에게 미움받는 자' 또는 '노여워하는 자'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의 외할아버지가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았다는데요. 그래서인지 자신의 손자 이름을 오디세우스로 지어주었답니다. 우리 상식으로 이해가 잘 되지 않는데 저런 이름을 가져서일까요? 오디세우스는 평탄하지 않은 삶을 삽니다.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불세출의 영웅이며 이타케의 왕이면서도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미움을 받아요.  오랫동안 바다를 떠돌고 온갖 고초를 겪으며 오랫동안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바로 포세이돈의 아들이자 외눈박이 괴물 키클롭스(정확하게는 키클로페스 족의 폴리페모스)의 눈을 찔러 장님으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눈이 하나인데 그 눈을 찔러버린 오디세우스. 당연히 키클롭스에게 미움을 받겠죠.



키클롭스족의 폴리페


그렇다면 오디세우스는 왜 키클롭스의 눈을 찔러 장님으로 만들고 포세이돈의 원망을 사서 고행길로 접어들게 된 것일까요? 심심해서 그랬을 리는 없으니까요. 


바로 오디세우스의 허영과 자만심, 사려 깊지 못함과 성급함 때문입니다.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 후 오디세우스는 고향인 이타케로 귀환하는 도중 폭력적이고도 야만적인 키클롭스들이 사는 곳을 직접 가보겠다고 합니다. 선원들을 데리고 키클롭스들이 사는 섬으로 간 이유는 단지 '키클롭스들이 자신에게 선물을 주는지 보고 싶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키클롭스들이 일하러 가고 없는 사이 그들의 터전에서 불을 피우고 제물을 바치고 치즈를 먹습니다. 나중에 나타난 키클롭스들이 오디세우스 일행을 약탈자로 간주하자 발끈한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존재를 떠벌리게 되는데요. 


자만에 빠진 오디세우스는 자신을 트로이 전쟁의 승리자이자 제우스가 사랑하는 사람으로 소개합니다. 키클롭스들이 알아서 자신을 대접해 주기를 바랐으나 어림없는 얘기였죠. 키클롭스들은 오디세우스의 부하 둘을 잡아먹어버립니다.


동굴에 갇혀서 키클롭스에게 먹힐 날만을 기다려야 했던 오디세우스와 선원들. 모든 불행의 씨앗, 재앙의 근원은 바로 오디세우스의 교만과 허영심이었던 것입니다. 낯선 땅에서조차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으려고 하는 인정 욕구. 트로이 전쟁의 영웅, 이타케의 왕으로서의 자신의 존재를 만천하에 알리고 싶었던 욕망이 그를 죽음의 위기로까지 내몰게 된 것입니다.


오디세우스


꾀 많은 오디세우스는 포도주로 키클롭스를 유인한 후 외눈박이 눈을 말뚝으로 찔러 가까스로 죽음의 동굴에서 빠져나오게 되는데요. 그때 자신의 이름을 키클롭스에게 '노바디'라고 가르쳐 줍니다. '아무도안' 즉 '아무것도 아닌 자'라는 뜻으로 특정함으로써 자신의 존재 자체를 바닥까지 낮춥니다.


그렇게 하여 그 섬을 탈출하지만 또다시 교만이 끓어오른 오디세우스는 키클롭스들을 조롱하게 됩니다. 결국 키클롭스는 아버지이자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 소원을 빌죠. '오디세우스가 집에 돌아가지 못하게 해 주세요. 돌아가게 되더라도 비참하게 돌아가게 하고 집에 가서도 고통받도록 해주세요'라고 말입니다.


포세이돈은 장님이 된 아들의 소원을 들어주어 오디세우스에게 끝없는 고난을 주게 됩니다. 오디세우스가 조금만 덜 교만했다면 바다를 떠돌며 모진 고통의 세월을 감내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영화 트로이의 오디세우스



김영하 작가는 말한다.  
우리는 가끔씩 노바디 또는 섬바디가 된다고.



김영하 작가는 귀환하는 오디세우스를 보며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섬바디로 여행을 시작했지만 허영과 자만으로 화를 자초한 이후부터는 노바디로 스스로를 낮추었고 그 덕분에 고난의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184쪽


10년간 호된 고난을 겪은 오디세우스는 그 후로 신중해집니다. 고향인 이타케로 돌아가서도 자신의 신분을 철저히 숨기지요. 자신이 없는 틈을 타서 아내인 페넬로페에게 구혼하던 수많은 무뢰한들을 축출하고 그들을 도운 시녀들을 일시에 제거합니다. 


명궁 에우리토스의 활로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아내 페넬로페를 괴롭히던 구혼자들을 물리칩니다. 바로 그 장면이 베르나르 뷔페의 작품으로 새롭게 탄생되어 전시가 되어 있었습니다.



오디세우스의 활 by 베르나르 뷔페



김영하 작가는 <여행의 이유>에서 우리는 여행지에서 다양하게 자신의 모습을 바꾼다고 이야기하는데요.


호의적인 사람들 사이에서는 나의 정체를 드러내어 섬바디(누군가)가 되고요. 비호의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나를 감추어 노바디(아무것도 아닌)가 되기도 한다고 말합니다. 때로는 '노바디'로 때로는 '섬바디'로 '나의 존재'를 규정해가면서. '나'이기도 했다가 '나 아닌 나'가 되기도 하면서 여행을 지속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 현명한 여행자의 태도는 키클롭스 이후의 오디세우스처럼 스스로를 낮추고 노바디로 움직이는 것이다.


여행의 신은 대접받기 원하는 자, 고향에서와 같은 지위를 누리고자 하는 자, 남의 것을 함부로 하는 자를 징벌하고, 스스로 낮추는 자, 환대에 감사하는 자를 돌본다.


2800여 년 전에 호메로스는 여행자가 지녀야 할 바람직한 태도를 오디세우스의 변화를 통해 암시했다.


그것은 허영과 자만에 대한 경계, 타자에 대한 존중의 마음일 것이다. 185쪽



호메로스가 오디세우스의 행동을 통해 말했던 여행자의 겸손한 자세를 베르나르 뷔페가 그림으로 그렸으며 김영하 작가가 <여행의 이유>로 풀어냈습니다. 


삶의 여행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자'처럼 우리 스스로를 낮출 줄도 알아야겠고요.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나'로서 정체성도 구축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어떤 날은 노바디로, 또 다른 날은 섬바디로 우리를 다듬어 나가는 일에 매진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여행을 통한다면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나 그 '무엇'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베르나르 뷔페와 애나벨



















    


매거진의 이전글 무릎 꿇은 나무는 천상의 소리를 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