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하LeeHa Nov 04. 2019

무릎 꿇은 나무는 천상의 소리를 낸다.

장영희 교수가 남긴 말


스트라디바리우스는 18세기 이탈리아의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와 그의 일가가 만든 세계 최고의 바이올린을 말합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600-700개 정도가 남아 있는데 수십억 원에서 수백억 원대에 이를 정도로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고 하더군요.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가 바이올린 제작자가 된 데에는 나름의 필연적 이유가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꿈이 합창단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던 안토니오는 아쉽게도 목소리가 좋지 않았다고 해요. 몇 번의 시도 끝에 꿈을 포기합니다. 곧장 바이올린을 연주하기로 하는데요. 이것도 여의치가 않았습니다. 안토니오가 연주하기만 하면 주변에서 그만하라고 말릴 정도였다니까 스스로도 많이 실망을 했을 겁니다.





노래와 바이올린 연주를 다 포기해야 했던 안토니오는 대신 그 열정을 바이올린 제작에 쏟아붓습니다. 인 정신으로 온갖 정성을 기울여 그가 평생에 거쳐서 만든 바이올린은 300년이나 지난 지금도 전 세계적으로 가치를 인정받는 명품이 되었죠.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만의 디자인과 독특한 목제 처리 방식 등의 제작 기술은 복제가 불가능하다고 하네요. 특히 그는 좋은 목재를 실수 없이 선택하는 것으로도 유명했답니다.


당시 유럽은 소빙하기라고 일컬어질 정도 추웠는데요, 살인적인 추위로 인해 목재의 밀도가 자연스럽게 높아졌고 그런 나무들 중에서도 엄선하여 바이올린을 만들었기 때문에 명품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거지요. 맹추위를 견뎌낸 나무가 세계적인 명품 바이올린의 재료로 쓰인다는 이야기가 두고두고 마음에 남았었습니다.





올해 5월 장영희 교수님 10주기 기념으로 <그러나 내겐 당신이 있습니다> 책이 나왔어요. 그간의 글들 중 특히나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은 내용들을 엄선한 책입니다.


영문학자이면서 수필가로도 유명했던 장영희 교수님은 본인이 겪으신 삶 자체가 희망이고 도전이었던 분이셨습니다. 태어나 1년 남짓 되었을 무렵에 앓았던 소아마비로 인해 평생 동안 불편한 다리로 고통을 겪으셨고 세 차례의 암으로 투병 생활을 반복하셨습니다.


교수님이 돌아가신 지 10년이 지났지만 주옥같은 글들은 무엇보다 쉽게 읽히면서도 독자들의 가슴속에 긴 여운을 남겨주고 있지요.


대학교 2학년 당시, <미국인>이라는 책에서 '나쁜 운명을 깨울까 봐 무서워 살금살금 걷는' 주인공에 대한 소개 글을 보게 된 장영희 교수님은 결심을 합니다.



나쁜 운명을 깨울까 봐 살금살금 걷는다면 좋은 운명도 깨우지 못할 것 아닌가.


나쁜 운명, 좋은 운명 모조리 다 깨워 가며 저벅저벅 당당하게. 큰 걸음으로 살 것이다,라고


<그러나 내겐 당신이 있습니다> 176쪽


낡은 목발에 쇠로 된 다리 보조기를 평생 착용하고 다니셨던 교수님은 본인의 발자국 소리는 아무리 조용히 하려고 해도 조용히 할 수가 없다고. 그래서 그 요란한 발자국 소리가 자신의 좋은 운명과 나쁜 운명을 모조리 다 깨워 뒤섞어 버린 혼동의 연속이었다고 말씀하시죠.


하지만 신은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인간을 넘어뜨린다고 믿었던 교수님은 언제나 다시 일어서서 용감하고 의연하게 살아왔다고 이야기하십니다.



넘어질 때마다 나는 번번이 죽을힘을 다해 일어났고,


넘어지는 순간에도 다시 일어설 힘을 모으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많이 넘어져 봤기에 내가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었다고 난 확신한다.


<그러나 내겐 당신이 있습니다> 173쪽



<그러나 내겐 당신이 있습니다> 속에는 교수님이 제자인 민숙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들려준 이야기가 있는데요, '무릎 꿇은 나무'에 관한 것입니다.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이 혹한을 견딘 나무들로만 엄선해서 만든다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로키산맥 해발 3천 미터 높이에는 수목한계선 지대가 있다고 해요. 이 지대의 나무들은 너무나도 매서운 바람과 추위로 인해 곧게 자랄 수가 없습니다. 그랬다가는 다 부러져 버렸을 테니까요.


그러니 바람과 눈보라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무는 자연에 순응하는 법을 배웁니다. 그 모습이 꼭 꿇어앉은 듯하여 '무릎 꿇은 나무'로 불린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무릎 꿇은 나무'들로 세계적인 음색의 바이올린들을 만든다고 하지요.





살아오면서 장영희 교수님 같은 스승님을  한 번도 만나지 못해서 변변한 위로의 말을 들어본 적 없다, 하셔도 실망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교수님이 제자 민숙에게 주신 말씀이 바로 우리에게도 똑같이 주시는 말씀이니까요.


불편한 다리와 암투병으로 고통의 시간 속에서도 희망과 용기를 당당히 부여잡으시며 쩌렁쩌렁 발걸음 소리를 내셨던 장영희 교수님처럼 살고 싶습니다. 무릎 꿇은 나무가 천상의 소리를 낸다는 교수님의 말씀을 되새기면서 힘든 순간을 지혜롭게 이겨나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숨마쿰라우데' 존재감으로 산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