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하LeeHa Oct 31. 2019

'숨마쿰라우데' 존재감으로 산다

천사가 되어 나를 지키기


'숨마 쿰 라우데'라는 말을 25년 전쯤 처음으로 들었던 것 같습니다. 유명 배우의 아들이 하버드에서 '숨마 쿰 라우데'라는 성적을 받았다고 해서 방송에 나온 적이 있었거든요.


최우등 성적을 '숨마 쿰 라우데'라고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참 희한한 발음도 다 있다 생각했어요. 그것이 라틴어였다는 사실에는 별로 관심도 없었습니다. 그 후 라틴어가 존중과 배려의 정신이 내재된 '지적이며 아름다운 언어'라는 이야기는 흘려듣듯 들었습니다.


<라틴어 수업>의 저자 한동일 교수님은 복잡한 체계성 때문에 라틴어를 배우기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유럽의 인문계 고등학교 학생들에게도 라틴어 익히기는 어려운 모양인데요, 라틴어를 익히기 위한 노력과 끈기라면 어지간한 다른 공부들은 거뜬히 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선다고 해요. 그 정도로 라틴어를 배우는 과정이 녹록지 않다는 것이겠죠.  


예전 우리나라 성적표에는 수우미양가가 있었습니다. 대학에는 ABC 학점이 있지요. 그러나 유럽 대학의 평가 방식은 대부분 절대평가로써 라틴어로 성적을 나타내는 표현들을 보면 우리와 참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숨마 쿰 라우데, 마그나 쿰 라우데, 쿰 라우데, 베네. 이렇게 네 개로 구분되는 성적의 뜻은 최우등, 우수, 우등, 잘했음 이랍니다. 아무리 찾아봐도 보통이나 못함 또는 노력 요함 따위가 없어요.



가장 낮은 성적에도 '좋음. 잘했음'이라는 평가를 내려주는 환경. 그 속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의 표정은 어떨지 잠시 상상해 봅니다. 항상 '좋아, 잘했어'라는 진심 어린 격려를 받아 본 학생들이 공부를 싫어하고 학교 가기를 싫어할 수 있을까요?


'긍정의 스펙트럼' 속에 있는 학생들은 남들과 자신을 비교해서 우월감이나 열등감을 느낄 이유가 없고요. '남보다' 잘하는 것보다 '전보다'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타인의 객관적인 평가가 나를 '숨마 쿰 라우데'라고 하지 않아도 우리는 '숨마 쿰 라우데'라는 존재감으로 공부해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가 스스로 낮추지 않아도 세상은 여러모로 우리를 위축되게 하고 보잘것없게 만드니까요.  그런 가운데 우리 자신마저 스스로를 보잘것없는 존재로 대한다면 어느 누가 나를 존중해주겠습니까?


우리는 이미 스스로에, 또 무언가에 '숨마 쿰 라우데'입니다.


<라틴어 수업> 74쪽



저자는 라파엘로가 그린 <시스티나 성모>의 천사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림 하단에 있는 두 아기 천사로 인해 라파엘로 이후의 천사들의 모습은 이렇게 정형화되었다고 합니다. 우리에게도 굉장히 친숙한 천사이지요. 시중에 판매되는 아이들의 분유통에 그려지기도 했으니까요.


이 그림은 근엄한 표정의 아기 예수와 성모가 중앙에서 중심을 잡고 있고요. 왕관마저 벗은 채 경외심으로 예수와 성모를 알현하는 교황의 모습이 왼쪽에 있습니다. 오른쪽의 성녀는 아래쪽 천사를 내려다보며 완벽한 구도를 잡고 있지요.


자칫 무거워 보일 수도 있는 그림의 마지막에 있는 두 아기 천사. 호기심 가득하고 장난스러운 그들의 표정으로 인해 그림의 균형이 잘 유지되는 것 같지 않나요?


이 천사들은 성화에서는 '케루빔'으로 불린다고 하는데요, 한동일 교수님은 우리 스스로가 아기 천사 '케루빔'이 되어 자신을 위로해 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모두가 잘나고 똑똑해 보이는데 나만 못나 보일 때, 나만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낄 때, 너무 초라해서 고개도 들지 못할 것 같을 때... 그런 때 없으셨나요? 저는 살아오는 중간중간 그런 느낌 들 때가 꽤 있었습니다. 그럴 때는 한없이 가라앉다 숨어 버리기도 했고요, 최선을 다하다가도 손을 탁 놔버리고 도망쳐 버리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귀여운 천사가 '나'일 수도 있다는 생각, 내가 '천사'가 되어서 힘든 나를 끌어올려줘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살았어요. 세상 모두가 외면해도 나만큼은 나를 지켜주고 든든한 '나의 편'이 되어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이 그림을 보면서 새롭게 하게 됩니다.


한동일 교수님이 말씀하시네요. 스스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일을 멈추지 않은 사람이 결국 일어서는 법이라고요, 그런 사람이 초라해 본 적 없는 사람보다 훨씬 더 타인에게 공감하고 위로해 줄 수 있는 천사가 될 수 있다고 말입니다.


내가 천사가 되어 나를 지키면, 나를 지켜낸 그 힘으로 남도 지켜낼 수 있다는 이야기로 이해됩니다. 나를 온전히 사랑하는 천사일 때 남의 장점도 잘 알아봐 주는 천사가 될 수 있겠죠.


오늘 이후, 우리 모두 스스로를 한결같이 칭찬하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천사'로 등극해 보면 어떨까요?  우리의 아이들도 그렇게 키우면 어떨까요?


무엇을 하든지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최우등,

'숨마 쿰 라우데'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사용법, 나는 어떤 엄마일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