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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하LeeHa Nov 03. 2019

아버지가 밤마다 귤을 까신 이유

귀한 딸들과 귤에 관한 이야기


요즘 마트에 가면 어김없이 귤을 사 옵니다. 세일을 할 때는 5킬로그램 한 박스에 12000원 정도 하는 것 같아요. 저는 과일을 별로 안 먹는데 딸아이는 과일 두 종류를 잘 먹습니다. 봄에는 딸기, 가을 겨울에는 귤이지요. 딸기에 비해 저렴한 귤은 먹기도 만만하고 보관도 편해서 좋아요. 자주 사줍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귤이 지금처럼 흔하거나 저렴하지는 않았어요. 그런데도 과일 좋아하는 큰언니 때문에 아버지는 겨울만 되면 귤을 박스째 사 오시곤 했거든요. 다른 건 몰라도 귤만큼은 사주셨던 것 같아요.


귤을 열심히 먹던 큰언니한테 시간이 흐르면서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데요. 손바닥과 발바닥이 노랗게 변해 버렸습니다. 앉은자리에서 귤을 열 개도 넘게 먹다 보니 그렇게 되더군요. 엄마가 그만 먹으라고 혼을 냈지만 큰언니는 귤이 한 알도 남아 있지 않을 때까지 먹었어요. 자제력이 별로 없었던 어린 시절이긴 했지만 그 정도로 귤은 맛있는 과일이었던 모양입니다.


귤에 있는 카로틴 성분은 당근에도 있지만요. 귤은 단시간 많은 양을 먹을 수 있기 때문에 그만큼 체내에 흡수되는 카로틴의 양이 늘어나는 거죠. 카로틴은 주로 피하지방에 축적이 되기 때문에 손바닥과 발바닥을 노랗게 보이게 만든다고 해요. 귤 먹기를 멈추면 얼마 지나지 않아 원래의 피부색으로 돌아오니 크게 걱정할 문제는 아니라더군요.





한 10년 전쯤 TV에서 ‘성균관 스캔들’이라는 드라마를 방영한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푹 빠져서 봤던 드라마였는데요, 조선 정조 때 성균관 유생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 드라마에서 귤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임금님이 하사한 ‘귤’을 놓고 유생들이 ‘황감제’를 치릅니다. 성균관 유생들을 대상으로 한 특별 과거 시험이었던 셈이에요. 유생들이 ‘귤 바구니’를 바라보며 황홀한 표정으로 침 흘렸던 장면이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그 후 조선 시대 때 ‘귤’이 얼마나 소중하게 다뤄졌는지 알게 되었어요. 제주에서만 나는 귤은 관리하는 사람이 귤나무 숫자를 일일이 세어서 왕에게 보고를 해야만 했답니다. 할 일 많았던 왕이 ‘귤나무’ 숫자 보고까지 받을 정도였으니 얼마나 귀한 과일이었을지 짐작이 가지요.


제주에서 왕에게로 진상되는 귤은 곧바로 종묘의 선왕들께 먼저 올렸대요. 이때 귤이 상해 있으면 관리한 사람이 처벌을 받았다고 하네요. 귤마다 꼬리표를 달아 일일이 관리를 하고 임금님께 올릴 진상품의 숫자를 맞춰야 했다는데요, 귤나무는 키우기가 쉽지 않아서 관리자들이 애를 많이 먹었습니다.


진상품의 개수가 모자라면 관리자들은 일반 백성들이 키우던 귤나무의 귤까지 다 거둬들여갔고요. 그 과정에서 귤이 몇 개씩 비면 백성에게 절도의 죄를 묻는 바람에 고통을 겪는 이들이 아예 귤나무를 말려 죽이기도 했다는군요. 백성들의 고단한 삶을 살필 수 있는 대목이죠.


귀한 귤이 백성보다 더 대접을 받았던 까닭에 어쩌다가 임금님이 귤을 하사하면 신하들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전하, 제가 뭐라고 이 귀한 귤을 주시나이까.”

그러고 나서 임금님이 하사한 귤을 조상에게 먼저 바친 후, 온 가족이 조금씩 나눠 먹으며 절을 하고 눈물을 흘렸다고 해요. 정말 귤이 상전이었던 시절이지요.


그 당시 사람들이 오늘날 일반 가정에서 박스째 귤을 놓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막 가져다가 까먹는 모습을 보면 어떨까요? 기겁하는 건 물론이고요. 아마 우리 모두를 끌고 가서 경을 쳤을 겁니다.


저희 큰언니의 귤 사랑은 고등학교 시절에도 계속되었는데요, 언니가 자율학습을 하고 독서실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늦은 밤이면 아버지의 귤 작업이 시작되었어요. 일단 귤껍질을 일일이 벗겨서 한 알 한 알 다 떼어놓습니다. 귤 한알마다 붙어있던 하얀 실 같은 것들을 모두 제거해요. 그럼 빛깔 고운 주황색의 온전한 귤만 남죠. 그렇게 쟁반 가득 산처럼 쌓아 놓으셨어요.


그러다가 어느 때부터인가 아버지는 그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으셨나 봐요. 아예 속껍질까지 일일이 칼로 다 제거해 놓기 시작하셨습니다. 귤 통조림 안에 들어있던 귤처럼. 속껍질도 전무한 그야말로 완전히 벌거벗은 귤을 만들어 접시 한가득 쌓아 올려놓으셨죠.


빈틈없이 정성껏 쌓아 올린 귤들은 하나의 작품처럼 보였습니다. 아버지가 손재주가 유난히 좋으셨어요. 새벽까지 공부하는 딸의 입속에 꺼끌거리는 껍질 하나 없는 새콤달콤한 귤을 넣어주고 싶으셨던 아버지의 마음이었지요.





그래서 저는 귤을 볼 때면 돌아가신 아버지의 수작업이 생각납니다. 그 귤을 일일이 까실 때마다 자식 생각을 얼마나 많이 하셨을지 그 마음이 헤아려져요. 


임금님께만 바쳐졌던 귤, 신하들은 울면서 절하면서 조심스레 먹었던 귤, 딸을 생각하며 속껍질까지 일일이 제거했던 아버지의 귤. 세월이 흘러 흔하디 흔한 과일이 되었지만 귤에 담긴 소중하고 귀한 마음은 그대로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 딸아이가 잘 먹는 귤. 속껍질까지 벗겨 주지는 못해도 제때 깨끗이 씻어서 준비해 주려고 합니다. 귤 잘 먹는 딸을 귀하게 대접해 주는 시간들로 이 가을을 채워나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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