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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하LeeHa Oct 09. 2019

영흥도, 목동이 된 슬픈 왕족 이야기

이 가을, 섬 여행 어떠신가요?


추석 연휴 때 바람 쐬러 살짝 다녀온 영흥도에는 가볼 만한 곳들이 여러 군데 있었습니다.  


영흥도(靈興島)는 '영혼이 흥하는 섬'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요. 낭만적인 섬으로 알려져 있지만 유래를 살펴보니 저는 조금 슬퍼지더군요.


고려 말의 왕족이었던 익령군 왕기가 고려의 기운이 쇠퇴해짐을 느끼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사람 하나 없는 곳으로 도망갈 생각을 합니다.


성과 이름을 모두 바꾸고 가족들을 데리고 배를 탔는데요. 왕족이 배를 몰아 봤을 리 없었겠죠. 파도에 쓸리고 뱃길을 잃어버리고 죽을 고생 끝에 다다른 섬이 바로 이 영흥도였다는 겁니다.  




이 영흥도는 당시 왜구의 노략질이 심했던 곳으로 사람이 살지 못하는 곳이었는데요. 왕기 입장에서는 그런 것을 가릴 처지가 아니어서 무인도나 다름없는 이곳에 정착하고 고생길을 자처합니다.


왕족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 버려진 땅을 일궈내고 짐승을 기르고 고기를 낚는 생활을 하면서 섬에 정착을 하는데요. 그 후 3년 만에 고려가 망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죠.


대부분의 왕족들이 고려 멸망 시 거제도에 수장되며 몰살을 당했지만 도망친 왕기의 일가만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고 영흥도에서 목동 일을 하며 살아갔다고 합니다.


그래서 영흥도(靈興島)의 이름도 익령군(翼靈君)의 령靈에서 유래가 되었다고 해요.


왕족에서 하루아침에 목동으로도 전락되어 버릴 수도 있는 것이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안타깝기도 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족이었던 왕기가 현실을 직시하고 안분지족 하는 삶을 살아낸 장소라서 영흥도가 각별하게 느껴졌습니다.



먼저 십리포 해수욕장입니다.  



십리포라는 이름은 영흥도 선착장에서 10리 떨어져 있다는 이유로 붙여졌습니다. 예전 어른들은 이름 짓는데 큰 고민 안 하셨던 것 같아요. 단순하고 담백합니다. 저는 마음에 들어요.


넓고 탁 트인 바닷가는 보기만 해도 시원했는데요. 어제오늘은 기온이 갑자기 떨어져 쌀쌀해졌지만요. 이때만 해도 갯벌에 조개를 캐러 들어갈 정도였거든요.  아이를 데리고 온 가족들이 갯벌 체험을 신나게 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십리포 해수욕장에는 해안데크가 설치되어 있어서 산책로로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산책로길 오른쪽에는 바다를 두고요. 왼쪽에는 기암괴석의 절벽이 있습니다.


절벽 위에 오래된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어요. 햇빛은 따가워도 바닷바람 맞으며 산책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습니다.  한 번쯤 걸어 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십리포 해수욕장은 소사나무 군락지로도 유명합니다.  150년 가까이 된 소사나무  350그루가 있어요. 소사나무는 소금기에 강하고 줄기가 잘려도 금세 새싹이 나온다고 합니다. 그 정도로 척박한 환경에서 잘 자라는 나무로 알려져 있지요.





이 소사나무 군락지의 유래를 보면요. 150년 전쯤 농사를 지으려고 해도 해풍이 심해서 여의치가 않았다고 해요. 그래서 해풍을 막을 나무들을 심어서 방풍림 역할을 하게 하려고 했는데 온갖 나무를 다 심어 보아도 모두 말라죽어버렸던 거죠.  


그래서 마지막으로 소사나무를  심어 보았는데 예상 밖으로 너무 잘 자랐던 겁니다.


소사나무는 나뭇가지가 어느 하나 곧은 것이 없어요. 오히려 그것이 특징이라고 할 정도로 울퉁불퉁합니다. 게다가 목질도 좋지 못해서 땔감으로 밖에는 쓰이지 못한다고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변의 거센 바닷바람을 맞으면서도 끝끝내 생명을 놓쳐버리지 않고 150년을 버텨와서 군락을 이루었습니다.


목숨 부지를 위해 영흥도에 정착하여 거친 노동으로 삶을 버텨낸 왕기의 이야기와 기기묘묘한 생김새로 150년 넘도록 해풍 속에서 살아가는 소사나무 이야기가 참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넓게 퍼져있는 가지로부터 피어난 잎들로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고요. 잎이 떨어져 버린 겨울에는 방풍막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고 하네요.


휘고 비틀어진 생김새로 인해 그 자체만으로도 조형물 역할을 톡톡히 하는 것 같아요.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사라진 바닷가는 쓸쓸해 보이기도 하는데요. 한적하게 거닐면서 이야기 나누고 생각할 시간을 갖기에는 가을 바닷가만큼 좋은 곳도 없는 듯합니다.



영흥도에 얽혀 있는 왕기의 이야기를 알게 되고 나서 내친김에 그가 날마다 올라갔다는 국사봉이라는 곳을 가기로 했습니다.


고려의 국운이 기울어져서 비록 본인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무인도로 도망을 쳤지만 왕기는 이 거친 섬에서 매일 산꼭대기까지 올라가 개경을 바라보았다고 합니다.


그가 올라갔을 길을 따라, 그의 심정이 되어 국사봉을 향해 길을 나섰습니다.


가는 중간중간 익지 않은 밤송이가 있었는데요. 밤송이가 어찌나 뾰족뾰족하던지 손끝만 닿아도 아프더군요.



돌멩이 두 개로 밤송이 하나를 까 보았어요. 밤송이는 버티면서, 저는 굳이 알맹이를 꺼내보면서... 서로의 존재를 증명하고 확인하는 숲길 한가운데입니다.  


제가 하다가 못해서 남편 시켰습니다.  간신히 꺼낸 알밤도 아직 익지 않은 초록색이더군요.



통일사를 지나 통일 염원 길을 따라 계속 올라가다 보니 국사봉이 나옵니다.


국사봉은 영흥도에서 제일 높은 곳으로 해발 123미터의 봉우리예요. 날마다 오르기에는 만만치 않은 높이인데 왕기는 한결 같이 그 일을 합니다.  


신분을 숨기며 영흥도에 살면서도 국사봉에 매일 올라 고려의 수도 개경이 있는 송악산을 바라보며 고려의 안녕을 기원했다고 해요.


그러나 왕기의 정성에도 불구하고 고려는 망했고, 그는 영흥도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삶을 마감하게 되지요. 국사봉(國師峯)이라는 이름도 왕기가 '나라를 생각했던 봉우리'라는 의미로 지은 것이라고 합니다.


한 많은 그가 매일 올라왔다는 국사봉. 이곳에서 품었을 그의 심정을 느껴보고 싶었습니다.


국사봉에서 바라본 전경. 사진으로라도 한번 보실래요?  날씨가 맑아서 구름이 바로 눈앞에 보입니다.



맑은 날은 맑은 날대로. 흐리고 비 오는 날은 또 흐린 대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는 삶이 고려 왕족 왕기의 삶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망국의 운명을 감지하고 자신의 인생을 지키고자 망망대해에 배를 띄우는 용기. 평생 한 번도 해보지 않았을 거친 목동 일을 손수 하면서도 꿋꿋이 연명해 나간 자기애,  고려의 평안을 염원하며 자기가 가닿을 수 있는 가장 높은 곳까지 매일같이 올라가 기원하던 충성심....


여러 가지 생각이 많아져서 한참을 머물다가 내려온 국사봉입니다.



국사봉 정상 주변 군락을 이루고 있는 소사나무들이 왕기의 삶을 기억해 주는 것처럼 보입니다.  


영흥도에 다녀온 저 역시 그의 삶과 정성을 기억해 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깊어가는 가을. 왕족의 가슴 아픈 사연이 있는 섬으로의 여행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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