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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하LeeHa Dec 02. 2019

당신의 상처를 덮어주겠습니다. 담쟁이처럼

도종환의 담쟁이. 동화작가 신연호


저는 담쟁이를 좋아합니다. 모든 식물들이 땅에 뿌리를 두고 자신이 선 그 자리에서 위로 뻗어 올라갈 때 담쟁이는 자신의 근처 벽이나 건물을 타고 올라가요. 그러고는 타고 올라간 그 대상을 자신들의 잎으로 다 뒤덮어 버려요.


저는 어릴 때 담쟁이를 보면서 '건물이 초록 이불 덮었네' 라고 생각했어요. 어른이 되어 다시 보니 담쟁이가 건물이나 벽을 자신의 초록으로 물들이며 위로해 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건물 외벽의 더러움이나 낙서나 균열도 담쟁이 이불 하나 있으면 싹 가려지거든요. 상처를 덮어주고 치료해 준다는 연고처럼 담쟁이가 그런 역할을 해내고 있나 보다 그렇게 여겨지기도 하죠.


길가다가 우연히 만나는 담쟁이는 저에게 반가움입니다. '너, 상처 난 곳 있니? 이리 와 봐. 내가 덮어줄게.' 손짓하며 저를 부르는 것 같기도 해요.



많은 분들이 시詩는 어렵다고 말씀하시는데요. 은유적이거나 비유적 표현이 많이 들어있는 시는 계속 그 의미를 생각해야 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정확한 의미 파악이 되지 않으면 이해를 못한 거다'라고 여기고 '그렇기 때문에 어려운 거 아닐까?' 생각하게 되죠.


고등학교 때 '시어' 하나하나에 밑줄 긋고 깨알처럼 필기했던 추억 때문에 더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는 것 같아요.

의미를 반드시, 기필코 다 알아내고 저자의 의도에도 별표를 쳐야 할 것 같은 중압감에 시달리는 건 우리가 지난날 '시'를 공부로써만 접해서 일 거예요.


시는 그냥 느껴지는 대로 가슴으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 아닐까요? 詩에서 위로를 받던, 지금보다 훨씬 젊었을 때가 있었는데요. 시집 한 권을 놓고 이 페이지 저 페이지를 들추다가 문득 멈춰지는 곳이 있거든요. 마음속에 들어오는 단어 하나만 봐도 눈물 흘리던 그런 시절이 제게도 있었답니다.


그때 만났던 시가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예요.



<담쟁이>


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여름 무렵의 담쟁이 모습


여름에 길을 가다가 발견한 담쟁이 모습인데요.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 시처럼 담쟁이 잎 하나가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벽을 넘으려는 그 순간을 봤죠.


살다 보면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고통의 순간이 오기도 해요. 그저 힘겨운 시간이 흘러가 주기만을 바라며 맥 놓고 있는 게 전부인 순간들이죠. 제게도 그런 순간들이, 인생 구석구석 점점이 박혀 있거든요.


그럴 때마다 시집 한 권 들고 마음에 왈칵 들어오는 시 한 편 만날 때까지 페이지를 넘깁니다. 산문이나 소설의 긴 이야기에서 주는 위로와는 성격이 다른 농도 짙은 시어들이 힘들고 지치고 얼어버린 가슴을 매만져 주면... 그 힘으로 또 용기 내어 살아갈 수 있는 것 같아요.


가끔씩 저도 위로가 필요할 때가 있지만, 제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어주고 용기를 내도록 도와주어야 할 때도 있어요. 그럴 때는 늘 벽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를 떠올려요. 손 맞잡고 같이 가는 위대한 힘을 믿고요. 그 힘이 절망도 희망으로 바꾸고 슬픔도 극복하게 만든다는 걸 아니까요.


몇 달 전에 저와 친한 작가님의 어머님이 돌아가셨어요. 저는 그저 문상만 갔을 뿐인데... 겨우 삼우제나 지났을까요?! 슬픔을 삼킬 틈도 없으셨을 텐데 그 작가님한테 카톡이 와있더라고요.


저는 이런 카톡을 처음 받아봤는데요. 자신이 손편지를 써서 사진으로 찍어 보낸 거예요. 휴대폰 자판으로 친 문자가 아닌 손글씨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딸아이 의사를 존중해서 이름은 가렸어요~


이렇게 사람을 어루만지는 심성은 어디로부터 오는 걸까....


이런 심성을 만나면요. '그 사람이 나 때문에 서운하지는 않을까? 그 사람이 내 마음을 몰라주면 어떡하지? 내가 그 사람을 실망시킨 걸까? 저 사람은 나한테 왜 그러지? 등등....'의 걱정들로 에너지를 소모할 필요가 없어져요. 드러내 놓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이 진짜라는 걸 느끼니까요


좋은 사람을 만나면 그들과 함께 할 세상을 꿈꾸게 되어서인지 두려움이 희미해지는 것 같아요. 때론 용기도 나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기죠. 절망이나 상처도 우리들의 푸른 담쟁이 덩굴로 덮어버리며 끝내 기어 올라가면 되니까요.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마음에서 세상 사는 법을 배우는 중입니다.


이렇게 멋진 작가님께서 엄마 마음으로 정성껏 쓰신 동화라면 자녀와 함께 믿고 읽어 볼만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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