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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부부가 평화를 유지하는 간격

은퇴 부부의 동거일기

by 연글연글





각각 다른 남녀가 만나 가정을 이루고
가족이 되어 살아가지만
지금까지도 나는 이 남자가 어떻게 나랑 함께 있는지 의아할 때가 있다.

​우리는 참 많이 다르다.
장점도 다르고, 취미도 다르고, 취향도 다르다.

우리는 사이가 나쁜 부부는 아니다.
그렇다고 막 애정이 남다른 부부도 아니다.
그냥 자기감정에 충실한 평범한 부부다.

​남편의 정년 후에는 같은 공간에서 온종일 붙어있다 보니 더더욱 다름이 차고 넘쳤다.

불편한 소리들이 자꾸 부딪혔다.
자주 눈에 띄는 서로의 얼굴이 부담스러웠다.

함께 살기 위해 '떨어지는 시간'을 만들어야 했다.


​같이 산책할 때는,
보폭의 차이부터 걷는 속도의 차이로 맘이 상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산책은 포기하고 장 보러만 함께 간다.
(장바구니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니까)

​식사를 할 때는,
그날 각자의 뱃속 컨디션과 메뉴 선정까지 조율이 까다로웠다.
그래서 하루에 한 끼만 마주 앉아 먹기로 했다.
(아침은 빵과 커피, 저녁은 오트밀이나 떡으로 오예!!!)

​남편은 등산이나 운동을 같이 다니자는데,
체력장 무급의 운동신경 꽝인 나는 "No"
그래서 운동은 남편 혼자 다닌다.
(나는 일상의 노동으로 운동을 퉁친다)

​전직 PD출신의 남편은 다큐멘터리와 영화를 즐기는 반면,
심각한 거 짱 싫어하는 나는 예능을 좋아한다.
리모컨을 먼저 잡는 사람이 임자다.
(결국 밀고 다니는 작은 티브이를 한대 더 구입했다)

​손녀를 돌봄에 있어서도 식사와 케어는 내 담당,
몸으로 놀아주기는 할아버지 담당이다.
(전지적 손녀시점으로 정확하게 나뉘어 있다)

​나는 밤새 같은 자세로 얌전히 잠을 자는 반면,
남편은 잠자리가 허용하는 범위대로 휘저으며 잠을 잔다.
그러다 보니 이불도 이리저리 휙휙,
위아래가 뒤집히기 일쑤다.


발과 얼굴 닿는 부분이 뒤바뀌는 걸 참을 수 없는 나는, 결국 이불 윗부분에 핀으로 표시를 했다.


남편의 뒤척임으로 이불이 움직일 때마다 손으로 더듬어 확인하고,

윗부분의 표시가 만져지지 않으면 벌떡 일어나 이불의 위아래를 맞추고는 다시 잤다.


그동안은 멀쩡한 침대를 버릴 수 없었기에 퇴직하고 나서야 침대를 트윈으로 바꿀 수 있었다.
(꽤나 오랜 시간 동안, 뒤집힌 이불과의 전쟁이었던 나의 밤이 평화를 찾았다)


​지금까지는 이 정도의 간격으로, 5년째 평화를 유지하고 있다.

앞으로의 간격은 어찌 될는지...
소소한 수정들이 더해지겠지

​하지만 그 간격 어딘가에서,
또다시 우리만의 평화를 찾아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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