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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긋난 조합?

완벽을 꿈꿨지만, 현실은 울퉁불퉁 - 가족은 나의 힘

by 연글연글




요즘은 mbti가 꽤나 설득력 있게 성격을 설명해 주는데, 나는 정말 T가 맞나 보다.

​20대의 파릇파릇하던 시절에도
'백마 탄 왕자'나 '첫눈에 뿅!' 하는
연애 로망은 없었던 듯하다.
그야말로 감성 꽝이었다.

​대학 시절 내내 미팅이라곤 손에 꼽을 정도였고, 그마저도 당시 유행하던 '핑클 펌'을 한 남학생이 파트너가 되기라도 하면
묵언수행을 하듯 말없이 있다가 돌아왔던 기억이다.

​모든 게 FM이었던 당시의 나는
(지금은 많이 삐딱해진 할머니지만)


​' 남자가 펌이라니...'
뭐 이런 생각으로
별로 친해지고 싶지 않은 게 이유라면 이유였다.

​이렇듯 이유도 많고 탈도 많아서,
남자 친구조차 쉽게 못 사귀고 지내던 중
호감을 보이는 선배 한 명에게 관심이 생겼다.

​또래보다는 성실해 보이고 스마트했으나
외모는 전혀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다 좋을 순 없는 것인가!
(눈물을 훔치며)

​하지만 20대의 T는,

과감히 외모를 버리고
스마트한 머리와 지구력을 선택했다.

​속 깊은 이유는 이렇다.

​나는 뭔가를 처음 배울 때면,

습득이 빠른 편이라 늘 선생님의 칭찬을 한 몸에 받으며 기분 좋게 시작하곤 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이다.
지구력이 부족한 탓에 시간이 지날수록 페이스가 떨어지고,
결국엔 처음엔 뒤처졌던 사람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다.
그게 늘 아쉽고 속상했다.

​그래서 생각했다.

​'내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다면,
이런 나의 단점은 싹 빼고 초강점만 쏙쏙 모은 '울트라 짱 주니어'를 만들고 싶다'고.

​남편의 명석한 두뇌와 지구력에다
나의 간헐적 영재성(?)을 적절히 섞고,
아쉬운 남편의 기럭지는
아시아의 표준형이라 우기는 내가
어찌어찌 막아보리라...

​뭐 이런 치밀한 계획이었다.

​두구두구두구...

​짜잔
과연, 어찌 되었을까?

.

.

.
​현실은 바라던 조합의 실패로...

​부족한 지구력을 골라 받은 아이는
10분이 멀다 하고 물 마시고 화장실 가고...
물 마시고 화장실 가고...
(의자에 엉덩이 붙이기 최대 10분)

​"나는 세상에서 공부 말고
재미있는 일을 찾을 거예요"를 입에 달고 다니는,
'재미'가 세상의 기준인 주니어가 되었다.





그렇다면 기럭지라도 성공했을까?

​기럭지 또한 뜻대로 되지 않아
호빗족과 친구가 되었다는 슬픈 이야기다.





너무 골고루 섞이다 보니
모든 게, 혈액형까지 제 각각인 우리 가족은
울퉁불퉁이어서 더 재미지다.
말끔한 가지런함보다 훨씬 더 귀엽다.
(내 기준으로는 말이지!)

​​인생이란 게 원래
뜻대로, 계획대로 가기 어렵다지만
좌절하지 않고 씩씩하게 살아가다 보면,
이런 슬픈(?) 이야기를 품고도
많이 웃을 수 있고

행복 찾기 게임에서 승자가 될 수 있다.


​그게 바로,
인생이 계획대로 호락호락하지 않더라도
열심히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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