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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와 당근 사이

인생은 아름다워

by 연글연글




이번처럼 아무도 없고 조용한 추석에는,
긴 연휴가 꼭 반갑지만은 않은 나이의 중노인 둘이다.
오늘은 또 뭘 하며 하루를 보낼까 궁리하다가
가을맞이 집안 정리를 하기로 했다.

​물론 나의 계획이고 나만의 수고가 되겠지만.

​딸네가 넘겨주고 간 비스포크 공기청정기는 예뻐서 욕심이 났다.
하지만 줄자를 들고 여기저기 재어 봐도 영 자리가 마땅치 않아 결국 정리하기로 했다.

​사진을 찍고 사이즈를 재서 당근에 설명과 함께 올렸다.
워낙 예쁜 소품을 좋아하던 나는 집안의 소품들도 함께 정리하기로 했다.

​며칠 동안 몇 건의 거래가 오가고,
남은 공기청정기에도 연락이 왔다.
이것저것 묻더니 가격을 깎아 달란다.

잠시 망설였지만 이미 꽤 저렴하게 올렸기에
정중히 거절했다.
그랬더니 “그냥 구입하겠습니다”란 답이 왔다.

​약속 시간에 맞춰 남편과 함께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잠시 후, 우리 앞에 선 차 한 대. 포르쉐였다.

젊은 남성이 내려 공기청정기를 받아 들며
“잘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밝게 인사했다.
​그가 물건을 대하는 태도는 차가 무엇이든
위축되지도, 거만하지도 않았다.

가격을 깎아 달라고 했을 때의 내 미세한 갈등,
포르쉐를 보고 느낀 묘한 안도감,
그 모든 것이 내 안의 편견이 만들어낸 작은 소동이었는지도 모른다.

​물건의 가치와 사람의 품격을 연결 짓는
익숙하고도 낡은 사고방식.

공기청정기를 판 건 나였지만,
오히려 내 안의 군더더기를 정리하고 돌아온 기분이었다.

​거래가 끝나고
‘포르쉐 타는 사람이 새거 안 사고 당근에서 물건을 사네?’
라며 신기해하는 남편 마음과,

‘아, 잠시 갈등했지만 안 깎아 주길 잘했다’
안도하는 나의 마음.

이렇게 다른 두 마음이 섞여 만들어진 또 하나의 마음은
‘포르쉐 타면 승차감 좋겠지?’였다.

남편과 나는 엘리베이터에 오르며 동시에 쿡 웃었다.

포르쉐를 탄 젊은이 덕분에,
우리는 물건의 가치와 사람의 품격을 연결 짓던
익숙하고 낡은 사고방식을 보기 좋게 정리했다.

중고 공기청정기가 준 뜻밖의 가르침이었다.

사람의 가치는 가진 물건보다 태도에 있고,
인생의 재미는 흥정보다 여유로운 마음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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