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타블랙: 어둠
내담자: 김민혁
[SESSION 01. 크리스마스]
0.1초의 찰나, 1평의 공간. 일상 속의 대단할 것 없는 시공간에서 그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날은 크리스마스라, 새벽녘부터 부지런히 서둘렀던 것 같습니다. 전날 퇴근 후 졸린 눈을 비벼가며 아내와 함께 선물 꾸러미를 포장해 두었습니다. 다음날 새벽녘 아이들이 깨기 전 살금살금, 크리스마스 트리에 선물을 쌓아 두었지요. 마침내 만반의 준비를 해두고 나니 오전 6시 20분 경이었습니다. 5살, 6살의 두 연년생 아들 놈들이 기뻐해줄까 설레는 마음 반, 또 과제를 해치웠다는 후련한 마음 반으로 담배나 한 대 피러 1층으로 내려왔지요. 후, 하며 마지막 한 모금을 길게 내뿜으며 엘리베이터를 향해 돌아섰습니다. 때마침 1층에 멈추어 있는 엘리베이터를 놓칠 새라 뛸까,하며 3초쯤 망설이다가 말았습니다.
- 귀찮네, 다음 것 타지 뭐.
기왕 마음 먹은 것 여유롭게 걸음을 옮겼지요. 역시나, 엘리베이터는 금세 올라가기 시작하더군요. 하릴없이 기다리며 느릿느릿 시선을 바깥으로 던졌는데.
‘퍽’, 아니면 ‘쿵’, 아니면.
일생 듣지 못한 무겁고 둔탁한 소리.
30m 상공에서 위에서 떨어진 인간이, 땅에서 무참히 짓이겨지는 그 소리를 어떻게 묘사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몸과 영혼이 찢어지는 그 소리는 한낱 언어나 문자 따위로 표현할 수 있는 감각, 그 너머의 것이었으니까요. 1세제곱 미터에 불과한 공간의 위아래가 뒤집힌 듯, 내가 지금 위로 끌려 올라가는 것인지, 그 사람이 땅으로 곤두박질치는 것인지. 마구잡이로 작용하는 인력 사이에서 둘 중 하나, 아니면 모두가 박살 나고 있는 것이 확실했습니다.
0.1초 찰나의 순간 초로의 그녀와 나의 눈은 서로 팽팽하게 연결되었습니다. 그 연결을 축 삼아 세상이 어지럽게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며칠 전 엘리베이터에서, 다소 그늘이 있었지만 예의바르게 웃고 있던 눈이었습니다. 요 몇 년 전에는 더 화사하게 빛을 품고 있던 눈이었습니다. 그 해 봄날, 걸음마를 막 뗀 아이들이 현관문을 열고 아장거리며 도망친 때. 혼비백산 하여 아이들을 부르던 중 옆집에서 아이들을 발견한 때. 양 볼 가득 사탕을 문 아이들의 손에 또 오곡 과자를 쥐어 주던 눈. 좀 뒤늦게 저와 마주쳤던 그 눈이 찡긋,하며 반달 모양으로 일그러지던 것이 기억났습니다.
텅, 비어버린 양 눈빛의 축이 일순 다시 흩어졌습니다. ‘툭’, 하며 끊어진 시각 다음으로 이어진 것은 ‘쿵’, 하는 굉음. 다음으로 확실하게 다가온 것은 후각이었습니다.
한 사람의 몸에서 나온 피는 2미터 사방의 공기 중을 비릿하게 채우고도 남는 것임을 아시는지요. 그렇게 잠시, 그녀와 저는 비좁은 시공간 속에 함께 갇혀 있었습니다. 영겁을 깨고 저는,
악다구니를 쓰며 경비원에게 소리를 질렀고, 119에 전화를 했고, 구급대원의 목소리를 들었고, 그 목소리는.
- 선생님, 침착하세요. 제말을 잘 들어 주셔야 해요. 떨어진 분 옆으로 다가가실 수 있겠어요.
아직 온기가 남아있을 그 몸에 다가가 숨을 쉬고 있는지 확인해 달라고 했고, 혹시 살아 있다면 심폐 소생을 할 수 있겠냐고 물었고, 저는 그 모든 물음에 아니오, 아니오, 아니오,라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스스로가 비겁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때의 전,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날 오후는 크리스마스답게 유독 들떠 있었습니다. 아내가 억지로 권한 ‘꼬꼬뱅’ 몇 점을 우겨 넣다 모두 게워 낸 참이었습니다. 복도에 나가 아래를 내려다보니, 새빨간 피가 흥건하게 번져 나가던 자리는 어느새, 잿빛 블록을 드러낸 채 말끔히 치워져 있었습니다. 까르르 웃는 한 무 리의 아이들이 그 위를 총총 밟고 따스한 입김을 채우며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어지러워 잠시 난간에 손을 얹었을 때, 옆집 난간 위 선명한 사람의 발자국이 눈에 띄었습니다. 저는 흠칫 손을 뗐습니다. 콘크리트 난간이 순간 물컹 눌리는 듯한 착각이 들었습니다. 눌린 것은 내 살이었구나. 진정 못해 펄떡대는 심장이 피를 밀어내 따뜻해진 살점이었구나. 흙먼지가 묻은 그 발자국을 다시 매만지니 모골이 송연할 만큼 손이 아린 것이었습니다. 손과 난간 사이 공간은 조금 일그러진 듯 했습니다. 제 오감도 예전 같지는 않을 것 같았습니다. 맨손으로 오랫동안, 그 발자국을 천천히 지워냈습니다. 예상 했듯, 사인은 자살이었습니다.
국화 꽃다발을 하나 샀습니다. 그녀가 숨진 자리에서 조금 비켜 난 곳에 꽃다발을 놓았습니다. 아파트 카페에는 조의를 표하는 척 호들갑스러운 글 하나가 올라왔습니다. 그 사건이 한낱 가십 거리로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견딜 수 없었습니다. 카페 게시글에 댓글을 달았습니다.
- 최초 목격자입니다. 간단한 재미 거리로 다루어 질 만한 사안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부디 글을 내려 주시기 바랍니다.
웬걸, 가볍게 소비될 것이라는 제 걱정은 기우였습니다. 집 값 걱정에 쉬쉬,하는 가운데 반나절도 채 지나지 않아 글은 삭제되었습니다. 제가 두었던 꽃다발도 곧 치워졌습니다.
이후로는 자주, 그리고 문득, 후회와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내가 왜 그날 그 시간,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일까. 엘리베이터에 좀 더 일찍 올라 탔더라면, 뛰어내리는 그 여자를 붙잡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랬더라면, 혹은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자연스럽게 우울증이 수반되었습니다. ‘죽음’이라는 것의 눈과 마주친 이후 인생 참, 덧 없어지더군요. 크리스마스는 모두에게 무해한 날인 양 노래를 부르며 들떠있는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깨닫기라도 바랐던 것일까요. 그 날도 사실, 여느 날 중 하루에 지나지 않을 뿐인 것을요. 1년 동계의 하루를 온갖 기쁨과 환희와 꿈들로 꾸역꾸역 채우듯, 그저 인생의 하루에 불과한 ‘죽음'에 온갖 칠흑과 공포와 금기를 부여해 왔던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모든 사회가, 미디어가, 종교가, 죽음을 너무 과소평가 또는 과대평가, 또는 회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죽음은 그저 죽음일 뿐, 우리 모두의 인생에 공평한 어느 하루로 찾아오겠지요. 제가 목도한 죽음은 천사도 악마도 아닌, 지극히 인간적인, 평범한 어느 인간의 눈을 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아등바등하는 마음이 사라진 것 이상의 기분입니다. 철석같이 믿고 있던 인생의 지도도 나침반도 시계도 모두 잃었습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하물며 어디로 간다는 것은 의미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언제나 의미 부여가, 비극을 초래하는 법입니다만.
그녀의 발인 날, 새벽부터 그 집 개가 짖어 대는 통에 온 가족이 잠을 설쳤습니다. 잠에서 깬 아이가 물었습니다.
- 아빠, 저 개는 왜 저렇게 짖어?
- 멍멍이가 무서워서 그래. 지켜주던 사람이, 믿고 있던 것들이, 눈 떠보니 한꺼번에 없어져서, 무서워서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