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이라는 동화 (2)

벤타블랙: 어둠

by 여날

내담자: 김민혁


[SESSION 02. 코카콜라]

삽화10.jpeg

대학 시절 학생 운동을 얕게 나마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선천적으로 ‘반골’기질을 타고난 탓에 초년에 세상을 곱게 볼 줄 몰랐습니다. 까칠한 싹이 자라 ‘중2병’으로 발현 되었고 20대에 이르러서는 ‘감상적인 염세주의’로 변질되었습니다. 당시 저에게 모든 것은 ‘개선’하거나 ‘바로잡아’ 주어야 하고, 기어코 갈아 치우고 엎어 버려야 하는 구시대의 유물로 보였습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오만방자하기 짝이 없는 ‘선민의식’일 뿐이었지만 말입니다.


부패하고 낡은 정치를 개혁해 세상을 바꾸자는 기조를 외칠 때면 ‘온 세상을 구해내는 도덕 천재’라도 된 것 마냥 카타르시스가 느껴졌습니다. 경박한 패기를 풀어내는 배출구가 필요했던 셈이니, 대의에 진심으로 몸 바쳤던 분들께 어떻게 그 사죄를 다 전하겠습니까.


입학하던 즈음, 우리 학교의 학생 운동은 특히 활발했고 제가 속했던 ‘정치외교학과’는 학과 특성 상 그 분위기가 더 강했습니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2학년 선배들은 ‘꼭 들어야 하는 수업’을 일일이 짚어주었지요. 그 수업만 신청한다고 해도 벌써 1학기 시간표가 꽉 차고 마는 것이었습니다. 채워진 수업은 대부분 ‘마르크스주의’를 필두로 한 사회주의 관련 수업이었고, 민족운동사나 현대정치사 등도 더러 섞여 있었습니다. 새내기들의 시간표는 대동소이 했고 같은 수업 같은 강의실에서 만나 곳곳이 화기애애 했지요. 공강 시간에는 대여섯 명으로 이뤄진 무리들이 모여 친목을 다지다가 또 다른 무리를 타고 양 떼처럼 흩어졌습니다.


1학년 모두는 ‘인생 최초’ 의 순간들과 마주해야 했습니다. 수강 신청은 언제 어디서 해야 하는지, 사물함 신청은 또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해결해야 할 일들은 많은데 열이면 열 모두가 생소한 것이었습니다. ‘생초짜’들에게 열외는 곧 죽음과 맞먹는 공포로 다가왔고, 유경험자가 정해준 길을 따라 일제히 함께 갈 때 비로소 안전의 욕구를 채울 수 있었습니다. 그 시절 광활한 캠퍼스가 왜 그리 무서웠는지, 스스로 일과를 꾸리는 ‘자유’ 와 그에 따르는 ‘책임’ 은 왜 또 그리 부담스러웠는지 한 점 의지할 곳이 절실했습니다.


어린 양을 맞아 들인 선배들의 열의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한껏 ‘염세주의’에 취한 저는 논외로 두더라도, 1학년 대부분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학생 운동에 발을 들이게 되었습니다. 저는 정치 사상 도서를 논평 하는 ‘독서회’ 멤버가 되었으며, 1주일에 한 번씩 열리는 학회에서 ‘조중동’과 ‘미제국주의’를 비판했습니다. 한편 대규모 강의실에 모여 광주 민주화 운동이나 노동 운동 현장 등을 담은 다큐멘터리물을 시청하기도 했습니다. 폭력 장면 위주의 자극적인 장면들 속에서 일방은 맞기만 하고 다른 일방은 때리기만 것이 못내 안타까웠습니다. 새내기들도 예외 없이 집회에 동원되었는데 그 와중에 어떤 동기들은 경찰에 입건 되거나 수배 되기도 하였습니다. 한편, 소비 가능한 범위도 소폭 축소 되었는데 ‘콜라’ 는 ‘미제의 똥물’이라서 못 마셨고, ‘말보로’는 입에조차 못 담을 ‘볼드모트’가 되었지요.


그 와중에 선배들은 ‘NL (National Liberation, 민족 해방)’이니 ‘PD (People’s Democratic, 민중 민주)’이니 나눠가며 사사건건 분열과 대립을 일삼았습니다. 주로 친하게 지내던 선배들이 신입 전원을 모아 ‘북한 친구들에게 편지쓰기’ 행사를 진행했는데, 다른 파벌의 선배들이 들어오나 싶더니 갑자기 고성을 지르고 집기를 내던지기 시작했습니다. 사각사각 다정한 말들을 써내려 가던 우리 1학년들은 ‘이게 대체 웬 깽판이냐’ 싶어 손을 허공에 멈춘 채 두 눈만 멍하니 껌뻑거릴 뿐이었습니다.


선배님들의 지도 덕에 머리도 제법 굵어졌나봅니다. 이쯤 되면 ‘교조주의’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고개를 처들었습니다. ‘이것은 옳다. 왜냐하면 옳기 때문이다’라는 주장이 되어갔으니까요. 제자리에 앉나 싶던 ‘반골기질’에 다시 시동이 걸렸고 안에서는 점차 생리적인 거부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집단적이고 맹목적인 신념은 ‘합리적 대의’가 아닌 ‘광기’로 보였습니다. ‘반항을 위한 반항’이라니 이게 대체 무슨 짓이란 말입니까. 더 이상 참고 볼 수 없었습니다.


- 선배! 선배들은 목 터져라 파시즘 타도를 외치는데, 저는 왜 선배들이 하고 있는 일들이 파시즘과 다를 게 없는 것처럼 느껴지죠?

- 선배! 선배들은 왜 계속, 한쪽 면만 보여주시는 거죠? 광주 민주화 운동이나 노동자들의 항거를 깎아내리는 마음은 단 한 점도 없어요. 단지 스스로 판단할 기회를 원천 봉쇄하는 사상 교육이 싫다는 말이에요!

- 선배! 저는 신파적인 감성에 호소하는 비장하고 슬픈 노래가 싫어요! 일차원적인 감성만 신나게 자극하는 율동도 싫어요!

- 선배! 왜 단 한마디의 비판에도, 쓴 소리에도, 다른 의견에도 화를 내시나요. 선배들에게는 저조차도 교화 되어야 할 반동분자인가요.


… 라고 끝내 입밖에 내지 못한 저는 깨갱, 꼬리를 말고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비슷한 이유로 비판했던 동기는 따돌림을 당하던 끝에 캠퍼스에서 사라졌습니다. 또 다른 몇몇은 다른 파벌의 선배들과 친해졌고, 두 그룹으로 갈린 동기들은 선배 눈치를 보느라 말을 섞지 못했으며, 서로 소원해지다 못해 인사도 나누지 않게 되었고, 끝내는 눈 마주치는 것조차 껄끄러워 하게 되었지요. 그 틈바구니에 낀 채 속으로 끙끙 앓다, 비가 몹시 내리던 날을 끝으로 저는 학교를 떠났습니다.


반년을 재수하여 이듬해 다른 학교에 입학했습니다. 혹시 같은 일이 벌어질까 두려워 신입생 관련 어떤 모임도 거부하는 아웃사이더가 되었지요. 비겁하게 도망친 꼴의 제가 작년 즈음에는 뭇 사람을 구원해 보겠다며 의기양양하게 외치고 있었다니요. 세상 가장 무서운 것이 ‘책 한 권만 읽은 사람’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우렁우렁 호령 하던 그 멋진 선배들 역시 돌이켜보니 기껏 스무 살 초반에 불과했을 텐데말입니다. 물론 개중에서는 진지하게 임했던 이도 있었을 것이나, 타인에게 자신 있게 주입할 만한 사상을 그 나이에 완성한 사람이 있었을지는 의문입니다. 시대의 파도를 거부한 신념들이 고인 물로 남았고, 흐리고 탁한 그 물은 깊고 얕음을 가늠할 수 없었습니다. 속속 뒤를 잇던 새로운 세대는 자신들이 경험한 세계와 동떨어져 보이는 구호에 공감하지 못했고, 제가 졸업할 즈음이 되자 학생 운동은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우리는,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방황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뙤약볕이 내리던 날, 천막을 치고 한 달 내내 단식 농성을 이어가던 선배가 떠오릅니다. 이따금 소금만 살짝 핥던, 마르고 여윈 얼굴이 저를 보고 환하게 웃던 기억이 납니다. 그 미소가 여름날처럼 눈 부셨던 것도요. 스스로의 소신을 유치한 채, 뚜벅뚜벅 충실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선배의 소식을 들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날의 제가 되어 선배 옆에 나란히 앉는 상상을 합니다. 다시 돌아 갈 수 있다면, 차근차근 고백하고 싶습니다.


- 선배, 화내지 마세요. 그런데 제가 사실은 말이죠…. 선배는 이해해 주실테죠.


[SESSION3. 구원]


여느 때와 다름 없이 평화로운 주말입니다. 사람들은 한 손에 핸드폰을 든 채 아침 식사를 하겠지요.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이 다치고 죽고 삶의 터전을 잃었다는 뉴스를 읽으면서, 한편으로 계란 프라이 노른자가 눌어 붙은 그릇을 싹싹 맛있게 비우고 있을 것입니다. 부당하고 반 도덕적인 기사들을 보며 크게 분개하기도 하겠지만, 다수는 굳이 무엇인가 하려고 시도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자극적인 기사를 클릭하고 소비하며 감정적인 화를 분출한 뒤에는 내 삶의 지반이 굳은 것임을 새삼 의식하게 됩니다. 혹은 애써 쌓아올린 방공호가 무너질까 두려워 하는 쪽이 될 수도 있겠지요.


난 사람도 못된 소시민으로서, 최소 스스로는 구원했다는 자부도 착각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삶이 무의미하다는 느낌, 아무 기쁨도 자극도 없는 삶이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간다는 느낌,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당황스럽고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무력감에 압도되는 것은 순식간이더군요. * 충격 요법으로 시기만 앞당겨 졌을 뿐, 언젠가 한번은 겪어야 될 일이었을 것입니다. 진짜 두려운 것은 죽음 그 자체가 아닐 것입니다. 제대로 살지 못했다는 감정, 기쁨도 의미도 없는 삶을 살았다는 사실이 두려운 것이겠지요. ‘자신 답게 살고 있다’라고 생각하는 날에는 죽음을 대함에 있어서도 비로소 초연해 질 수 있을까요. ‘왜 사는가’에 대한 정답은 저도 모릅니다. 사람마다 각각 사는 목적도 이유도 다를 것입니다. 단 하나의 진정한 진실은, 지금 살아 있다는 진실입니다. 현재를 위해서 살아야 하는지, 아니면 후회 없는 미래를 위해 살아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양쪽 모두를 짊어진 채, 오늘을 묵묵히 살아갈 뿐입니다.


* 에리히프롬,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장혜경 옮김, 나무생각, 2000

매거진의 이전글구원이라는 동화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