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라는 동화 (1)

맥도날드

by 여날

내담자: 이수영


[SESSION 01. 여의도]


제 이름은 이수영입니다. 여의도에 위치한 증권사 마케팅 팀의 과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신경증적인 문제,라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최근 제가 일하는 팀이 기존의 마케팅 팀에서 ‘디지털마케팅’ 팀으로 이름을 달리했고요. 좀 불안해진 것 뿐입니다. 저는 근 15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마케팅을 해오고 있는데, 제가 입사하던 당시만 해도 디지털 마케팅이라는 개념은 흔하지 않았습니다. 주로 했던 것들은 전통적인 방식의 대대적인 브랜드 홍보 활동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TV 광고 라든지, 지하철이나 버스 정류장 등의 스크린 광고,라든지 말이죠. 그 외에도 오프라인 이벤트, 프로모션 기획과 광고 등을 담당해 왔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혹시 주식 투자를 하고 있으신가요? 우량 기업의 종목을 사두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요즘에는 여러 테마 종목을 묶어 1주, 2주 등의 작은 단위로 쪼개 파는 ETF나, 해외 주식도 인기입니다. 1주에 수백 만원을 호가하는 ‘구글’의 ‘알파벳’ 사 주식을 0.01주 이상의 소수점 단위로 매매할 수도 있지요. 아는 체 하는 것처럼 보이시겠지만 사실 증권사 직원의 말이라고 믿을 것은 못됩니다. 우스개 소리로, 증권사 다니는 직원 치고 ‘집 한 채’ 한번 날려 보지 않은 사람 없다는 말을 하곤 하거든요. 물론 과장이긴 합니다만, 실제 저희가 가진 것이라고는 ‘진짜, 고급’ 정보의 부스러기 중에서도 찌꺼기에 불과할 뿐입니다. ‘정보’랍시고 얻을 때 쯤이면 그 종목의 주가는 이미 고점에 이른 상태인 것이지요. 증권 회사의 과장은 ‘각 업계 뉴스’를 좀 더 빨리 클릭하는 ‘외부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투자 가능한 한도 역시 연봉 내외로 정해져 있고 그 이상의 투자는 감사 대상이 됩니다.


다만, 흘러가는 강물이나 돈 줄기를 지켜보기에 여의도만큼 목 좋은 곳은 없다는 것 만큼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한강 뿐만이 아니라 돈의 물결이 흐르는 중심이니까요. 유행을 ‘트렌드’라고도 하지요. ‘트렌드’는 일견, 유흥이나 오락거리, 또는 편리함, 생활의 변화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증권가에서의 ‘트렌드’란 돈을 몰고 다니는 수령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현재와 미래의 트렌드에 늘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합니다.


바야흐로 ‘언택트’ 시대의 시작이었습니다. 충격 요법 없이는 아주 천천히 변해 갔을 것들이 눈뜨면 대세가 되어 있었고, 그날 저녁이면 벌써 그저 그런 일상이 되어있는 광경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습니다. ‘메타버스’이니 ‘NFT’ 하는 굵직한 신조어들이 쏟아져 나왔고, 다양한 ‘가상화폐’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저 역시 서당 개 풍월 읊 듯, 머지않아 산업 판도가 완전히 뒤집힐 것이라는 거창한 말을 해대곤 했지요. 남들 하는 말을 주워 섬기는 것 뿐이었지만 사실 한치 의심도 없었습니다. 한낱 어린 아이라도 얼어있는 한강 표면을 흘깃 하기만 하면 그 속은 차가울 것임을 직관 해 낼 수 있는 걸요. 눈 앞에 우뚝 선 거대한 물기둥 주위로 큰 바람이 일고 있음은 자명해 보였습니다. 시류에 편승하는 ‘노력’을 윗자리 어른들께 한껏 어필할 필요가 있었고, 가장 빠르고 간편하고 눈에 띄는 것은 ‘닥치는대로’ 해야만 했습니다. 그 노력의 시작이 팀 명칭의 변경이었지요. 기존의 ‘마케팅전략’ 팀은 ‘디지털마케팅’ 팀으로 전환되었습니다. ‘NFT’가 대세이니 Z세대에게 먹히니 하며 조간 신문을 탁탁 치며 읊으면서도, 날 것의 현실에는 다소 어두운 윗 분들께 그럴듯해 보일 만한 기획서를 만들어 대는 날들이 연일 이어졌습니다. 임기응변 식의 화려한 기획서 저변에서는, 한나절 내내 엑셀을 뚝딱 거리며 차트를 만드는 손가락들이 버둥대고 있었지요.


아이러니하지만 거대 기업의 시스템일수록 더 비대한 것이어서, 트렌드에 적응해가는 모양새는 마치 산등성이를 인 듯한 거대한 거북이가 뭍에서 파도를 향해 느릿느릿 기어 가는 듯한 것이었습니다. 기본 시스템만 업그레이드 하면 채 10분도 안 걸릴 일들을 일일이 사람 손으로 하자니 급한 불만 끄는데도 열 배의 시간은 족히 걸렸습니다. 한겨울 두꺼운 얼음장을 깨고 빨래를 하며, 찌든 때를 탕탕 때리는 성질 난 아낙이라도 된 심정이었달까요. 세탁기도 건조기도 있는 시대인데 여태 빨래 방망이를 쓰는 집은 얼마나 될까요.


저희 팀에서는 고객들을 대상으로 매달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타 증권사 계좌의 주식을 저희 계좌로 이관하면 금액에 따라 현금을 캐쉬백 해주거나, 혹은 주식 거래 액수가 큰 상위 고객들에게 리워드를 주는 식의 이벤트이지요. 그런데 그 사후 작업이 가관이었습니다. 고객의 이관 내역, 거래 날짜나 금액 등이야 시스템 상에 기록이 된다고 하더라도, 이벤트 요건에 맞는 대상들을 추출하고, 그 중 적격인 고객을 정제해 내는 것은 오로지 사람 손을 거쳐야만 하는 것이었지요. 개인의 계좌 별, 날짜 별 거래 금액을 합산하고, 이벤트에 응모한 내역이 있는지 확인하며, 리워드 비율인 0.5%를 적용하면 현금으로 받는 금액은 얼마가 되는지 계산했습니다. 한편으로 복수의 이벤트에 지원한 고객들이 중복으로 혜택을 받아가지 않도록, 엑셀로 한번 더 걸러내야 했지요. 이 밖에도 임직원이 수혜를 가져가지 않도록 엑셀 차트를 한번 더 돌리고, 또 다른 조건의 사람들을 걸러내고, 걸러내다 보면, 어느덧 엑셀 시트는 수십 개로 늘어나 있었습니다. 어디에서부터 시작했는지, 무엇이 ‘최최최최종’ 버전인지도 헷갈리게 되는 것이지요. 이벤트 혜택을 꼼꼼하게 챙기는 고객들의 컴플레인 콜로 매달 지급일 무렵엔 CS센터도 포화 상태가 되었습니다. 저는 IT 팀에 자동 지급 시스템 개발을 제안하기에 이르렀습니다.


-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과장님이 보시기에는 이거 하나 바꾸는 게 간단해 보이시겠지만, 시스템 근본부터 뜯어 고쳐야 한다니까요. 서버도 부족한데, 새로 갖추려면 본부장님의 허가까지 받는 기간을 고려 하셔야 한다고요. 인력이야 말해 뭐해요. 이전에 요청 해주신 건들도 다 급하다고 하셨잖아요. 지금 그쪽에 투입돼 있는 인원 빼서 이쪽으로 돌려야 하고, 그렇게 제일 먼저 시작한다고 쳐도 아삽(ASAP) 3개월은 걸려요. 당연히, 기존 요청 건들이 홀딩되는 건 알고 계실테고요.


메일이나 전화로는 실랑이만 계속할 것 같아 대면 미팅이라도 할라치면, IT담당자는 피곤에 절은 얼굴로 지겹다는 듯 설명했습니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지금이야 사람을 ‘갈아 넣을’ 수밖에 없는 단순 업무들을, 곧 시스템이 모두 처리할 수 있다면 지금처럼 많은 인력은 필요하지 않을 테지요. 몇 차례의 구조조정이 있을 테고, 좀 더 ‘창의적’이고 ‘인간다운’ 기획을 할 수 있는 소수의 인원만이 살아 남을 것입니다. 한편,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여기고 있는 ‘기획’ 업무조차 AI로 대체되는 것은 시간 문제일 것이고요. 그렇다면 나의 직업 수명은 얼마나 남은 것인지 날마다 셈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얼마전, 아주 오랜만에 맥도날드를 찾았습니다. 세상에, 주문을 받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대신 모든 주문은 키오스크가 받고 있었습니다. 가끔 키오스크 한 두대 정도 구색처럼 갖춰 둔 매장은 많이 보아 왔지만 그래도 주로 주문을 받는 역할은 사람의 몫이었으니까요. 직원들은 다른 일로 바빠 보였습니다. 비어 있는 키오스크는 5대나 되었고요. 줄줄이 늘어선 빈 키오스크를 무시하고 대면으로 주문을 하자니 그 눈치를 못 견딜 것만 같았습니다. 키오스크 앞에서는 매번 긴장이 된다 할까, 괜히 주눅이 들고 맙니다. 그럴수록 익숙한 척, 능숙한 척, 1초라도 빠르게, 동시에 여유 만만하게 터치하려고 허세를 부리게 되지요.


대세를 따라 개헤엄 이라도 치지 않으면 바보 취급 받을 것 같은, 그래서 자존심을 다칠 것 같은 그런 기분 아시지요. 서핑을 즐기는 화려한 무리 앞에서는, 네 발로 물장구 치는 그 우스꽝스러운 몸짓마저 치장하게 되더라고요. 몰라도 아는 척, 늘 겪어온 일인 척하며 사실은 서툴게, 천천히 배우고 있는 것이지요. 꽤나 자신만만하게 마주했던 키오스크 앞에서 저는 고장 난 인간이 되어버렸습니다. 손은 엉뚱한 곳을 헤맸고, 화면은 어느 장단에 춤춰야 할 지 몰라 앞뒤로 왔다 갔다 하며 짜증을 내는 게 아니겠어요. 어느새 사람들이 뒤에 줄을 서기 시작했고, 쓸데없이 커다란 스크린은 ‘세상 사람들아, 이 바보 좀 봐라’ 하며 조롱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더블에그불고기버거’를 선택했더니 세트로 할 것이냐며 저에게 되려 패를 넘겨 왔습니다. 당연히 그렇다고 했더니 진의를 의심하듯 되묻지 않나, 100원을 더 내면 모짜렐라 치즈스틱을 먹을 수도 있고, 500원을 더 내면 칠러로 업그레이드도 되는데 진짜 ‘더블에그불고기버거 세트’로 하고도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라며 몰아 붙이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봐, 내 걱정일랑 말라고. 내가 원하는 건 단순한 더블에그불고기 버거세트라고. 늘 먹던 걸로, 클래식 한 감자튀김과 콜라이면 된다고,라고 기계를 상대로 말해 뭐하겠습니까만, 기계는 질세라, 또 달리 추가할 것이 없는지 여러가지 사이드메뉴를 띄워 대지 않겠어요. 혹시 지금 가스라이팅이라도 당하는 중인 걸까,라고 저도 모르게 생각했습니다. 기계는 놀리듯 혀를 쭉 뽑아내며 번호표 내주었어요. 그 순간 몇 세대는 더 뒤쳐진 기분이었습니다. 결국 감자튀김 대신 모짜렐라 스틱이 나왔지만, 대꾸 한마디 못한 채 그저 얌전히, 먹어 치울 수 밖에 없었지요.


얼핏 읽은 바에 의하면 ‘켄쇼’라는 인공지능 투자 프로그램이 등장한 이후, 세계적인 투자 은행 골드만삭스는 600명에 달하는 투자 전문가들을 해고했다고 해요. 전문가 15명이 한 달 가까이 매달려야 할 수 있었던 일을 단 5분만에 처리했다고 하던데, 대단한 것을 넘어 정말이지 무섭지 않나요.* 그 대단한 켄쇼 뭐시기도 아닌, 맥도날드 키오스크에게서 시한부 인간이라는 선고를 받은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그저 숙연하게 버거 세트를 기다릴 수밖에요. 그래서, 내가 기계보다 쓸모 있을 수 있는 시간은 대체 얼마나 남은 걸까 생각하다가, 사회 경제학자도 뭣도 아닌 무지렁이답게 정신 승리를 선언했지요. 애초에 사용자 인터페이스라고 하는, 그러니까 화면 레이아웃이나 동선 같은 걸 일컫는 소위 UI가 이상했던 거라고요. 미련한 변명일 뿐이지요. 이제 막 디지털 마케팅에 입문했을 뿐인데, 수년 내 AI가 저의 자리를 대체할 것이 분명합니다. 제 나이 30대 중반, 이제와 새로운 어떤 것을 준비해야 할까요? 앞으로 10년 후, 저는 무얼 해먹고 살아야 할까요?


*이지성, <에이트: 인공지능에 대체되지 않는 나를 만드는 법>, 차이정원, 2019

매거진의 이전글구원이라는 동화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