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라는 동화 (2)

맥도날드

by 여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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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담자: 이수영


[SESSION 02. 상대성]


코로나 시국이 시작된 이후 주식시장이 활황이었고, 특히 2021년 정점에 달해 해외 주식 열풍까지 불기 시작했지요. 굳이 마케팅에 혼신을 다하지 않더라도 절로 수익이 났기 때문에 회사 분위기는 아주 훈훈했습니다. ‘우리가 잘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연일 자축했지요. ‘코스피 3000선’을 돌파하는 것을 목도하며, 한동안 다른 활로에 대해서 잊고 지낼 수 있었습니다.


작년 서점 진열대와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 하고 있던 것은 대부분 주식이나 해외 투자 관련 서적이었습니다. 특히 이제 막 주식에 입문하는 ‘주린이’를 위한 서적들이 즐비했지요. 하루 수익률이 웬만해서는 두 자리 수 였으니, 너도 나도 꿀단지에 빠진 개미가 되어 헤어 나올 줄을 몰랐습니다. 최대 한도의 대출까지 받아 주식에 투자하는 이들까지 생겨났으니까요. 고점을 찍었다면 그 이상은 거품인 것이지요. 거품이 터지기 시작한 것은 그해 말이었습니다. 투자의 쏠쏠한 맛을 본 이들이 이제는 다른 돈줄을 탐색하기 시작했습니다. 올해 경제 부문의 다크호스는 단연 디지털 관련 서적들입니다. 메타버스, NFT, 그리고 소위 ‘부캐’를 만들어 수익을 다양화 하는 ‘프로N잡러’ 등 1년이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 상전벽해인 시대인 것이지요. 열심히 배우고는 있습니다만, 제가 가진 시간이나 에너지 모두 뱁새 수준이라 황새 따라 가자니 곧 가랑이가 찢어질 판입니다.


정말로 뜬금없지만요, 시대를 거듭하며 변화되는 양상은 ‘우주팽창’과 좀 닮은 구석이 있지 않을까,하고 생각해 봤습니다. 문과 출신인데다 여기저기서 얻어 들은 것들이니 지식이 좀 어설프더라도 이해해 주세요. 제가 초등학생이던 시절, 대전에 위치한 큰 댁을 방문할 때마다 어김없이 ‘국립중앙과학관’에 들르곤 했습니다. 어른들이 바쁘실 적에는 저 혼자 가서 놀다 오기도 했습니다. 얼마나 재미있었던지, 먼지가 뽀얗게 쌓일 만큼 변함 없는 전시물들을 보고 또 봐도 질릴 줄 몰랐어요. 한 켠에는 자그마하고 빨간 우체통이 있었는데 무려 ‘과학자에게 쓰는 편지’를 부칠 수 있는 코너였지요. 그 당시 늘 달고 살던 궁금증이 있어 또박또박 까만 글씨를 써내려 갔습니다. ‘우주의 끝은 어디이며, 그 바깥에는 무엇이 있나요?’라는 질문이었는데, 매우 친절한 어느 과학자 님께서 몇 장 씩이나 되는 기다란 답신을 보내 주셨어요. 어린 저에게는 난해한 내용이었고, '우주는 계속 팽창하고 있으며,…. 끝은 없습니다.’ 정도로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과학자 님께서 아신다면 통탄할 일이지 뭡니까. 하지만 그 답변은 결코 헛되지 않았고 궁금증은 이후로도 길이 길이 이어져 스스로 답을 찾아보기에 이르렀습니다. 사실 체감하는 난이도는 뭐, 더 높았으면 높았지 여전히 저에겐 어려운 내용입니다만. 우주 공간이 팽창함에 따라 모든 은하는 서로 멀어지고 있고, 특히 서로 간의 거리가 멀수록, 멀어지는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라는 게 요지였지요.


시간은 어떨까 싶어 과거와 현재, 미래를 10년마다 끊어 보았습니다. 우주의 별들이 서로 더 빠른 속도로 멀어지고 있는 것처럼 시간의 흐름도 점점 가속도를 높여 가는 것 같아요. 같은 10년일지언정 과거 기점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세상도 더 빨리 변하는 것 같다는 말이에요. 편지, 전화, 인터넷으로 정보 교환 수단이 속속 변해 왔고,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많은 정보’가 ‘더 빠른 속도’로 전달되고 있잖아요. 무한한 정보들은 가공과 변이를 거쳐 기하급수적인 양의 새 정보를 탄생 시키고 있고요. 그렇다면 각 세대가 체감하는 ‘30년’은 서로 다른 길이가 아닐까요? 소위 Z세대로 각광 받는 새로운 세대야 스마트폰 없는 삶을 상상할 수도 없겠지만 스마트폰은 겨우 10년 정도 전부터 대중화되기 시작했고, 휴대폰이 대중화된 시기는 거기에서 또 10여 년 전에 불과할 뿐인 걸요. 10년을 한 번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90년 전후인데, 이때는 출입국조차 자유롭지 못했다고 들었어요. 심지어 우리나라가 UN 미 가입국 이었다는 사실도 믿을 수 없던 걸요. 어찌 되었건 저도 가까스로 M세대에 걸쳐 있긴 하니까요.


2010년 즈음 와인으로 이름난 지방인 보르도 출신의 프랑스 친구가 한국에 온 적이 있어요. 그 친구 말에 따르면 아직 한국을 모르는 프랑스인들이 대부분이라 했고 그나마 안다는 이조차 ‘내전국가’ 방문은 위험하다며 한국 행을 필사적으로 말렸다고 해요. 기어코 한국 행을 선택한 모험심 강한 제 친구마저 한국에 ‘요거트’가 있는 것을 보고 엄청나게 놀랐다고 하니, 전 자존심까지 상했다니까요. 만화 ‘검정고무신’에 나오는 뭐 그런 풍경이라도 기대하고 온 걸까요. 불과 10년 정도가 지난 지금, 한국의 인지도는 훌쩍 올라간 지 오래고, 심지어 세계가 함께 한국 문화를 즐기며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었지요. 내가 좋다, 재미있다,라고 느끼는 영상이라도 있으면 해외에 있는 친구에게 더 빨리 공유할 수 있으니까 각종 ‘메이드인코리아’ 콘텐츠도 한국의 인지도 격상을 위해 ‘열일’한 셈이죠.


대세를 따라가느라 눈이 팽팽 돌아갈 지경이니 가끔은 과거 감성이 그리워지기도 해요. 왜, ‘무드셀라 증후군’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나쁜 기억은 잊고 좋은 기억만 회상하면서 추억에 젖고 싶은 때가 가끔 있죠. 그때가 좋았는데,싶은 '아련한 감성'이요. <오징어게임> 보셨어요? 저 어릴 때만 해도 구슬치기를 하고, 숨바꼭질, 달고나 뽑기, 공기며 고무줄 놀이를 했던 기억이 있어요. 요즘엔 그런 놀이 하는 어린 아이들이 잘 보이지 않아요. 세상에, 저 벌써 구세대 뭐 그런 거인 건가요?


아주 어릴 적 <한지붕세가족>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던 거 혹시 기억나세요? 새벽에 잠이 안 와 채널을 무심히 돌리다 보니 마침 방영 중이길래 ‘레트로 감성’ 에나 한껏 취해 보자는 심정으로 보기 시작했지만 참도 저렴한 감상일 뿐이었죠. 10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인물이나 서사에 이입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기 시작했어요. ‘입장을 바꿔본다면’ 이라는 계몽적인 제목의 에피소드였는데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일일이 훈계하고 구박 하는 존재이며 며느리는 응당 순종 해야 함을 뭔가 당연한 듯 어물쩍 녹여내고 있더라고요. 그 시어머니가 ‘본인의 시어머니’로부터 똑같이 구박 받는 모습을 지켜보며 며느리들이 아주 통쾌해 하는 내용이었는데 저는 ‘글쎄’ 싶은 표정으로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어요. 고부관계 뿐만 아니라 ‘좀 너무하다’ 싶은 다른 수직 관계가 여럿 등장하는 걸 보며 좀 짜증이 나기 시작했고 오히려 드라마가 끝내 ‘너 나가!’ 하며 저를 현실로 내동댕이쳤습니다. 그때서야 푸르르, 고개를 흔들며 정신을 차렸답니다. 불과 2,30년 간의 괴리도 이렇게 큰데, 거듭 가속 페달을 밟으며 진화 중인 우리 어린 세대야 오죽이나 할까요.


[SESSION 03. 사건의 지평선]


‘사건의 지평선’이라는 흥미로운 용어가 있습니다. 짧은 식견으로 이해한 바에 따르면, 우주가 점점 팽창함에 따라 별들 역시 우리에게서 멀어지고 있으며 거리가 멀어지면 멀어질 수록 더 빠른 속도로 멀어지다가 어느 순간 관측 불가능한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게 된다고 하는데, 이것을 사건의 지평선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덧붙이자면, 블랙홀이 암흑인 것 역시 사건의 지평선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어쩌면 제 기억도 일부 그런 모양새일지 모릅니다. 좋은 기억은 반짝이는 별로 남았지만, 평점 이하 그저 그런 세월들은 빠른 속도로 뇌리에서 지워져 갔겠지요. 아픔이나 권태 따위였을 것들은 희미해지다 끝내 지평선 너머로 사라져 버렸기에 저의 우주도 아름다웠나 봅니다. 빛의 속도로 가늠해 본다면 그 별조차 사실 실체를 잃고 박제된 과거일 뿐인 것을요. 시대가 너무 빠르네 어쩌네, 숨이 차기도 하지만 각 세대 나름대로 꾸준히 애쓰고 있을 테니까요. 척도 뭣도 없이 나의 속도로 걷는 걸음이 가장 자연스러울 테지요. 그래도 전에 비하면 제법 빨라졌을 걸요. 서퍼가 물마루 넘듯 푸른 물결이 거칠면 거친 대로, 높으면 또 높은 대로 파도를 타볼까 합니다. 이래 봬도 맷집이며 잔 근육들이 제법 생겼으니까요. 그래 봤자 디지털 네이티브만 하겠냐만, 그들에게 한 수 배워야 할 점도 제법 많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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