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라는 동화 (1)

계약직

by 여날


내담자: 권채원


[SESSION 01. 계약직]


지난달에 회사에서 잘렸습니다. 이곳을 소개해 준 수영과는 나란히, 2년 계약직으로 입사했습니다. 수영이는 지난 달 정규직으로 전환되었고, 전 뭐 보다시피 지금은 실직 상태가 되어 백 만원 대의 실업 급여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팀장님의 변명 아닌 변명에 따르면 한 임원 분께서 평소에 저를 달가워하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입사하자마자 위아래 직급 없이 모두 수영을 좋아했습니다. 예쁘고, 싹싹하고, 업무에도 열심이고, 유머 감각까지 갖춰서, 수영이 있는 곳에서는 수시로 웃음이 터졌습니다. 수영의 동기이자, 같은 팀원, 같은 직급에 나이마저 같았던 저는 늘 비교 당하고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수영에 비하면 저는 다소 고지식하고, 융통성이나 재치가 없는 편이었으니까요. 같은 ‘스펙’이면 다홍치마, 거기다 성격까지 최상이라면 다른 하나는 본 모습보다 더욱 못나 보이는 법이지요. 실수를 해도 수영의 센스 있는 유머 한마디면 좌중은 웃음 바다가 되었고, ‘그렇지,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는 거지.’ 하고 왠지 모두가 납득하는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제가 같은 실수를 할 때면 힐난과 질책이 폭우처럼 몰아치던 것과는 대조적이었지요.


입사 후 며칠 지나지 않아, 커다란 택배 상자가 도착하던 어느 날을 기억합니다. 수영이 직접 제작했다고 하는 ‘굿즈’들이 가득 들어 있었습니다. 접착식 메모지, 필기구, 노트 같은 아기자기하고 예쁜 사무용품들이었습니다. 팀원들 뿐만 아니라 3층 직원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왁자지껄 하게 구경하며 감탄했습니다. 3층 전 직원들이 하나씩 나눠 가지고도 남을 만큼 넉넉한 양이었지요. 수영은 팀원들에게 3개씩 더 얹어주고 남는 것들은 모두 저에게 나눠줄 정도로 인심을 썼습니다. 초면의 이들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는 털털한 성격의 수영은, 낯선 환경을 영 어색해 하던 저에게 있어 유일한 기댈 곳이자 안식처였습니다. 식사도 제대로 못한 채 서로 할 말만 찾다 어색해 질 법한 점심 약속이라도 잡히면, 수영의 팔짱을 꽉 낀 채 막무가내로 끌고 가곤 했습니다. 수영은 지난 날 다니던 회사에서의 에피소드며 무용담을 늘어 놓아 사람을 웃기는 재주가 뛰어 났거든요. 레퍼토리 수야 한정적이어서, 늘 한 자리에 있던 저야 같은 이야기를 수없이 듣고 또 듣곤 했지만요.


수영처럼 싹싹하지 못할 바엔 일이라도 열심히 하자고 생각했습니다. 팀장님이 무심하게 툭, 자료 좀 찾아 달라는 말씀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누구보다 재빠르게, 또 깔끔하게 정리하여 제출했고요, 기획서나 자료같은 것들이 상급자 분들의 의중에서 아주 빗나가는 일도 없게 했습니다. 교묘하게 떠넘겨지는 잔업들도 군말 없이 처리했고, 수영을 수장으로 한 TF 팀에 굵직 굵직한 기획들이 넘어가더라도, 나는 나의 소임에 충실하면 되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거듭 다독였습니다. 개인에게 떨어진 기획 업무도 중요한 것이었기에, 저는 어느덧 제일 일찍 출근하고 제일 늦게 퇴근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옆 팀 분들이 오히려 안쓰러워 하셨을 정도이니까요.


팀장님이 수영을 유독 편애하고 있다는 것을 같은 층에 위치한 모든 부서의 사람이 눈치챌 정도였습니다. ‘증권사 마케팅 모임’이라고 하여, 여의도 증권가 직원들이 정기적으로 친목을 도모하는 한편, 향후 마케팅 방향 등 업계 정보를 공유하는 모임에도 수영 혼자 참여하라며 팀장님께서 따로 지시를 할 정도였습니다. 이 바닥에서 성공하려면 꼭 쥐고 있어야 하는 인맥과 정보의 황금 열쇠를 수영의 손에만 쥐어준 것이었습니다.


서운한 내색 없이 그저 묵묵히, 최선을 다했습니다. 평소 팀장님께서도 다소 과장 섞인 비장함을 담아, 내 새끼들은 모두 정규직 전환 시키겠다며 약속해 주셨으니까요. 유령처럼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저변의 불안을 수영에게 이야기 했는데, 수영은 단순한 선의로서 제 마음을 팀장님께 전달한 모양입니다. 다음날 팀장님은 빈 회의실로 저를 조용히 불러 내었습니다. 두려움을 거듭 가라 앉혀 주시며 걱정하지 말라고, 내가 책임지는 것이니 정규직 전환에서 누락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재차 강조하셨습니다. 이어 농담조로, 계약서에 서명할 준비나 하고 있으라고 말씀 하셨지요.


그로부터 3달여쯤 지났을까, 팀장님은 회의실이 아닌 근처 커피숍으로 저를 불러내셨습니다.


- 미안하게 됐다.


아아, 지난 2년동안 얼마나 괴로웠는지요. 이변이 있어도 괜찮다, 정말 괜찮다, 하며 수 십 수 백 번 가정해 본 최악의 시나리오가, 눈 앞에서 현실이 되어 버렸습니다. 너무나 큰 충격으로 자아가 산산조각 나지 않도록, 뇌수에 열이 올라 팔팔 끓고, 신경이 너덜너덜해 질 정도로 미리 그리고 또 그려본 그림었건만. A, B, C 후속 플랜까지 모두 연습해 보았건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만화 속 등장인물의 머리 위에 떠있는 구름처럼 생긴 말 풍선 있잖아요. 솜사탕처럼 몽실몽실, 말랑하고 보드랍기만 하던 제 말 풍선의 머리채가 잡아 뜯겨 버린 듯 했습니다. 까맣게 반짝이던 동공은 까맣고 탁한 먹물 마냥 그 빛을 잃고 멍하니 팀장님의 목 부근에 닿아 있을 뿐이었습니다. 상황을 견디기 괴로웠는지 팀장님은 계속 ‘쩝’, ‘쯧’ 하는 등 혀를 차며 멋쩍은 소리를 내었습니다. 오직 두 사람만이 심해로 천천히 가라앉는 듯한 정적 위로 저는 하찮은 지푸라기 몇 닢이 떠다니는 듯한 환영을 보았습니다. 필사로 그것을 움켜쥐듯 마지막 자존심을 짜내 구차한 낱말들을 주워섬겼습니다.


- 팀장님, 저 교육팀에서 일했던 경력이 있는데 혹시 부서 이동은 안될까요? 그 팀에서도 채용 진행 중이라고 들었어요.

- .......

- 외국어 전형은 없나요? 저 영어도 잘하고, 중국어도 잘해요. 영미 지역, 중국 지역 전부 담당할 수 있으니, 해외사업팀으로 이동하면 아마 전천후로 쓰실 수 있을 거예요. 실망 시켜 드리지 않을게요….

-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야. 차라리 다른 회사로 이직하는 게 더 빠르지 않겠냐.


완곡하지도 못한 거절 뒤에 ‘쯧’ 하는 소리가 따라왔습니다. 30분쯤 침묵이 오갔을까, 마침내 제가 포기를 선언했습니다.


- 팀장님, 저 때문에 이렇게 일어나지도 못하고 계신 것 같은데... 얼른 들어가 보셔요.

- 널 혼자 이렇게 두고 내가 어떻게 가냐.


그러면서도 팀장님은 한편으로 자켓을 걸치고, 짐을 주섬주섬 챙겨 들었습니다.


- 나 간다. 너무 오래 멍 때리고 있지 마라.

- 네.


이유를 묻지도 않았습니다.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습니다. 그날 전, 아주 오래도록 그 자리에 앉아있었습니다. 봉제 인형처럼, 미동도 없이, 그저 가만히, 어느 곳도 바라보지 않은 채 앉아 있었습니다. 폐점 시간이 되어 아르바이트 생이 물걸레로 바닥을 모두 닦아낼 때 까지요.


[SESSION 02. 수작업]

수기 작업이 문제였습니다. 저희 팀은 달마다, 주식이나 다른 상품들을 거래하는 고객들을 대상으로 한 이벤트를 진행하곤 했습니다. 이벤트가 종료된 이후에는, 이벤트 요건에 맞는 고객들을 추출해서 적절한 금액의 리워드를 지급해 주었습니다. 문제는 대상자들을 걸려내는 작업을 모두 엑셀로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1단계, 지난 달 500만원 이상 거래한 고객들의 리스트를 내려 받습니다. 2단계, 이 중 임직원들을 걸러냅니다. 3단계, 이벤트에 응모한 고객들을 추려냅니다. 4단계, 다른 이벤트에 중복으로 응모한 고객들은 리워드 금액이 더 큰 이벤트에 응모한 것으로 간주하여 다시 추려 냅니다. 5단계, 남은 고객을 거래 구간 별로 나눕니다. 6단계, 거래 구간 별 리워드 금액을 매칭 시킵니다..... 요건은 복잡하기도 해서, 모든 요건들을 적용하고 나면 엑셀 시트는 벌써 20개, 30개에 이르는 것이었습니다.


지급 대상이 수백 수천 명인데, 대상 별 지급해야 하는 금액을 일일이 수기로 매칭 시켜야 했습니다. 최종으로 추려낸 대상자들을 자동 지급 시스템에 업로드 하는 방식도 사람 손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시험지 답안을 밀려 쓰듯 대상자와 지급 금액이 어긋나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대참사가 벌어 질 것은 뻔했습니다. 이벤트 사후 처리가 완료되면 늘 5% 이내 범위에서 누락이 발생하였습니다. 누락 건들을 잘 챙겨 두었다가 익월에 잊지 않고 지급하여야 함은 물론이었습니다. 잊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CS센터에 강성 고객 한 명이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제 담당이었던 이벤트를 신청했고, 거래 조건까지 만족 시켰으나, 응당 지급 받아야 할 3만원을 받지 못했다고요. 두 달 전에 누락되어 이미 컴플레인 접수가 되었던 건이라 이번 달에는 반드시 지급되었어야 하는 건이었습니다. 하늘이 노래졌습니다. CS센터에게 무작정 처리를 떠넘길 일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직접 사과 전화를 걸어야 했습니다.


- 고객님, 안녕하세요. 디지털마케팅팀 권채원 과장입니다. 지난달에 진행한 종목 이관 이벤트의 담당자입니다. 지급 과정에서 누락이 있었던 것을 방금 저희 고객센터로부터 전달 받았습니다. 진심으로 죄송한 말씀을 드립니다.


제 안에 축적된 정중함이란 정중함은 모두 끌어낸 목소리였습니다. 사실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었습니다. 스스로의 멍청함과 부주의함에 기가 질릴 정도였습니다. 잠시의 침묵이 이어진 끝에, 상당히 냉정하고 침착한 목소리가 되돌아왔습니다.


- 한 달 전에 전화 했을 때도 죄송하다며 사과 했잖아요. 이번 달에 꼭 지급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저도 참았어요. 이쯤 되면 고객 우롱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 보세요.


- 전적으로 저의 실수입니다. 리워드는 두 배로 지급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이봐요. 제 한 달 거래 금액이 최소 3천만원입니다. 제가 고작 3만원이 아쉬워서 이러겠어요?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을 해보라고 말했습니다.


- 지난달 누락되었던 건들을 이번 달 시스템에 입력하는 과정에서 재차 누락이 발생하였습니다. 꼼꼼히 살피지 못한 저의 실수입니다. 다시 한번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 입력…이요…?


아차 싶었습니다.


- 그러니까, 계좌 지급 시스템이 수기라는 말씀이신 거죠? 금감원 신고 감인데요. 허, 참. 잘 되었습니다. 고객 우롱에 수기 입력이라니, 금융사 시스템이 이래서야 믿고 거래 하겠습니까? 몇 천씩 오가는 주식 거래 시스템도 이런 식입니까? 금감원에서 조사할 필요가 있겠군요.


말문이 막혔습니다. 새까맣게 공포에 질린 눈에서 이미 눈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습니다. 고객님, 회사 시스템 전체가 그런 것이 아니고, 단지 일부 이벤트에 국한된 시스템 중 누락 건에 대해서만 수기로 지급을 하고 있습니다. 뱉은 말을 무마하고자 말을 바꾸어 보았습니다. 달랜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고객의 분노는 절정에 치달았습니다. 저는 눈 앞에 보이지 않는 ‘고객님’을 향해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나오는 대로 아무 말이나 주워 섬겼습니다.


- 고객님, 금감원 신고 만큼은 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계약직 직원입니다. 이번 건으로 계약이 해지 되면 저는 실직 상태가 됩니다. 어렵게, 어렵게 잡은 직장입니다. 한번만 부탁 드리겠습니다…. 신고하시더라도 달게 받겠습니다만, 전적으로 저의 책임입니다....


화장실 바닥에 납작 엎드렸습니다. 숨죽인 울음 소리가 비집고 나오는 것은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 어처구니가 없네요. 지금 고객 협박하는 겁니까? 프로다운 행동이라고 생각합니까? 3일 내 금감원 민원 넣을 것이니, 처분 기다리고 계세요.


금감원 민원은 없었습니다. 저희 회사에 대한 조사도 없었습니다. CS센터 담당 직원의 말에 따르면, 해당 고객은 3만원만을 입금 받기로 하였으며, 사안에 대해서도 제법 너그럽게 용서를 하여 주었다고 합니다. 다만, CS센터에 소문이 난 모양이었습니다. 초보적인 실수와 구차한 변명과 직원 답지 못한 행동으로 팀장님께 호되게 질책을 당했습니다. 날붙이라도 삼킨 기분으로 회의실을 떠나려던 순간, 회의실 의자가 피로 흥건한 것이 보였습니다. 하혈이었습니다. 흥건한 피를 다 지워내느라 물티슈 한통을 다 쓰고도 모자랐습니다. 날붙이가 몸을 가르고 내려왔나, 하는 바보스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그런 것이었다면, 차라리 후련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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