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담자: 권채원
[SESSION 03. 강 팀장]
‘너희는 쌍둥이냐’ 라는 놀림을 받을 정도로 찰싹, 붙어 다니고 떨어져 있을 때조차 서로의 안위를 묻곤 하던 수영은 제법 사회생활의 선배 다운 충고를 해주었습니다.
너는, 하고 수영이 제게 말했습니다.
- 총대를 메지 않았으면 좋겠어. 조직에 순응하면서 사는 법도 좀 배워. 나서서 따지다가 너만 독박 쓰지 말고. 최대한 몸을 사리라고.
- 너는 인상 자체가, 총대 메는 이미지와 맞지 않아. 지금 너를 채용하려고 눈 여겨 보고 있는 사람들은 너에게, 순응하는 이미지를 기대하고 있다는 말이야. 스스로 챙길 수 있는 것은 챙기되, 불합리한 것에 따지거나 위 아래 할 것 없이 도발하지 마. 너랑, 어울리지 않아.
- 너무 잘하려고 애쓰는 모습은 부담스러워. 한번에 성과 내려는 조급증 좀 부리지 마. 모두가 너를 채점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났으면 좋겠어.
- 취미처럼, 숨 쉬듯이 자연스럽게, 공이 오면 받고 또 다시 던져주는, 그런 공놀이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봐.
강태호 팀장의 시도 때도 없는 지시에 허덕이던 팀원들은 이러다 죽네 사네, 자조하며 함께 항의라도 하자는 분위기가 한창이던 때였습니다. 몰래 만든 채팅 방에서 강 팀장을 희화화하며 낄낄대곤 했습니다. 또 어느 날은 하나 둘 씩 엇갈려 자리를 뜬 뒤 다시 삼겹살 집에 모여, ‘이런 환상적인 팀원 조합은 없었지’, ‘팀장 하나 미친 놈 인들 어때’, 하고 새삼 서로를 기특히 여기며 술잔을 부딪혔습니다.
가끔 강 팀장과 대화라도 나눌라치면 묘한 위화감이 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강 팀장은 저나 다른 팀원들의 지극히 ‘인간적이고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 궁금함을 표시하는 일이 거의 없었던 것입니다. 강팀장의 대화 소재는 주로 자신의 지인과 과업을 과시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새로운 팀원이 입사할 때면 눈을 반짝이며, 마치 그 사람에게만 하는 이야기인 양 자신의 업적과 무용담을 늘어놓았는데, 토씨마저 변하지 않는 레퍼토리를 반복하는 데 싫증을 내는 법도 없었습니다. 본인의 이야기를 마치면 임무를 다했다는 듯 자리를 떠나곤 했는데 팀원들은 이제 저 이야기만 스물 세번째 들었네, 나는 벌써 서른 번째를 채웠네,하며 앞다투어 조소를 터뜨리곤 하였습니다. 실제로 그 업무를 같이 하였던 이들에게 사실 확인을 할라치면 이야기의 9할이 허풍인 것으로 드러났지만요.
회의 때면 시장 점유율 몇 프로 달성, 이번 달 매출 상승 120% 등 현실적인 것에서 시작하여, 30분 즈음이 지나면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겠다는 둥, 홈페이지를 갈아 엎겠다는 둥, 강 팀장의 상상은 무한대로 뻗어 나갔습니다. 끝내는 우주 정복을 목표로 하겠다는 것이 아닌가,하며 마음 속으로는 조롱을 일삼곤 했지요.
어느 날도, 팀원들은 채팅 방에 강 팀장의 흉을 보고 있었습니다. 강 팀장의 행동이며 말이며, 채팅방에서는 모두 바보스럽고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저도 모르게 실소가 터지고 말았습니다. 시선이 닿는 듯 하여 옆 눈으로 흘깃 하니, 이상한 낌새라도 잡은 듯 한 강 팀장이 제 쪽을 노려 보고 있었습니다.
그날 팀 전체가 회의실에 소집되었습니다. 회의실 내부에 떠도는 공기가 사뭇 험악 했습니다. 팀원 한 명 한 명에게 옮겨지던 이글거리는 시선이 저에게 꽂히는 순간 강 팀장이 내뱉었습니다.
- 어떤 누구든, 이 팀 분위기를 흐리는 사람은 내가 용서하지 않겠다. 그게 어느 누구가 됐든말이야.
강 팀장이 자리를 비워 분위기도 느슨해진 그날 오후, 팀원들은 다시 커피숍에 집결했습니다.
- 팀 분위기 흐리는 사람을 용서할 수 없으면 주먹으로 거울이라도 깨겠다는 말인가? 아니면 본부장 실로 직진해서 본부장 명치라도 날리겠다는 건가?
수영의 말에 팀원들은 자지러지게 웃으며 한 마디씩 앞다퉈 거들었습니다. 함께 웃고 말면서도 모든 것을 농담 거리로 폄하해 버리는 수영이 싫었습니다. 무거운 일들을 가볍게 만들어 버리면 문제가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아프다고 절규하는 목소리들은 땅굴 파고 기어 들어갈 줄만 아는 ‘진지충’쯤으로 여기는 것일까요? 모든 것을 가벼이 여김으로써 혼자만 개운해 지려는 수영의 회피 방식이 싫었습니다. 그녀의 옆에서는 전 언제나 ‘쿨’ 하지 못하고, 속 좁고, 기분 나쁘게 음울한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의 팀 주간 회의 시간이었습니다. 무슨 영웅 심리가 발동한 걸까요. 업무 지시가 산발적이며 또 지시한 업무량도 극심해 모두가 힘들어 하고 있다며 강 팀장에게 따지고 나섰습니다. 이렇게 잔업이 많아서야 중요한 업무들을 뒷전으로 할 수 밖에 없다며 상황 좀 이해해 달라는 말투가 감정으로 격해지고 말았습니다. 얼굴이 푸르러지다 끝내 검붉어진 강 팀장은 펄펄 뛰며 제 업무 상의 온갖 흠이며 꼬투리를 다 잡아 공격해 오기 시작했고, 저는 마지막 살점 하나마저 남기지 못한 채 처참히 난도질 당하고 말았습니다. 눈물이 콧물 되고 콧물이 눈물 된, 점액질 인간 하나가 나이 답지 않게 끅끅,거리고 있었습니다. 다른 팀원들은 꿀 먹은 벙어리 마냥 각자 책상 어느 한 곳을 응시한 채 말 한마디 꺼내지 않았습니다. 강 팀장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자 팀원들 역시 머쓱해 하며 하나 둘 말 없이 자리를 떠났습니다. 회의실에는 저와 수영, 둘만이 남았습니다. 책상 위 고개를 묻고 서럽게 눈물을 터뜨리던 저와 함께 수영도 함께 쿨쩍, 울먹였습니다.
- 너만 생각해, 너만.
계약이 만료되던 날, 수영이 제게 마지막으로 남긴 날입니다. 이후로 수영을 비롯, ‘환상의 5인조’라 마지 않던 팀원 모두와 저 사이에서는 단 한통의 연락도 오간 적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