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담자: 권채원
[SESSION 04. 복수]
'우울'은 자신만의 병이자 그 자신에게는 유일한 병입니다. 같은 우울증 환자조차 서로 공감할 수 없으며 아픔을 나눌 수도 없습니다. 1천명의 우울증 환자는 1천개의 독특한 공간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만큼 홀로 고립된 병입니다.
계약 해지 후 극심한 소화 불량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적게 먹든, 많이 먹든, 천천히 먹든, 빠르게 먹든, 어김없이 체했습니다. 명치에 고여있는 묵직한 이물감 때문에 흰 죽 한 수저만 먹어도 늘 불쾌했습니다. 심지어는 먹는 것이 무서워질 정도였습니다. 혹시 심각한 병이라도 생겼나 싶어 내시경 검사도 해보았지만 제 위는 흔한 염증조차 없이 깨끗했습니다. 거짓말 같은 현실이었습니다.
소화 불량을 기점으로 하여 음독 자살을 한번 시도하였습니다. 앞뒤 맥락 없이, 문득 생각난 듯, 덤덤하게 자살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아시나요. 딴에는 살건 죽건 어느 쪽이든 상관 없을 것 같았습니다. 다만 좀 쉬고 싶을 뿐이었습니다. 하얀색 수면제를 한 알 먹고, 주황색 진정제를 두 알 먹고, 나중에는 주섬주섬 아무 약 봉지나 뜯어서 빨갛고 파란 것들을 한꺼번에 삼키고, 또 다음 약 봉지를 뜯어 초록과 보라색의 약들을 삼키고, 나중에는 무지개 빛깔의 갖은 약들을 삼키고 말았습니다. 취해 엉망이 된 정신으로 신경정신과 주치의 선생님께 전화를 걸어 약을 더 처방해 달라며 잔뜩 꼬인 혀로 진상을 부렸습니다. 그동안 감사했다는 인사도 아마 이죽거리는 협박처럼 들렸을 테지요. 결국 주치의 선생님의 신고로 경찰과 구급차가 출동하는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멀쩡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벌떡 일어선 순간 저는 기절하고 말았습니다.
황급히 오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홀로 몽롱하게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었습니다. 다들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 우스웠습니다. 폭신한 구름 사이를 까치발로 헤실대며 뛰어 다니는 듯 했습니다. 콸콸 주입한 해독제만 벌써 몇 병째.
- 잠들면 안돼요!
의사의 고함이 제 멱살을 잡아, 다시 삶의 맨 땅 위로 패대기 쳤습니다. 인생이 계속되고 있다니요, 맙소사. 찬 바닥에 두발을 디딘 순간 번뜩, 그날 모 회사의 면접이 잡혀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퉁퉁 부은 얼굴로 허겁지겁 병원에서 뛰쳐나왔습니다. 넋 나간 말투로 더듬거리며 치른 1차 면접에서 탈락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밤새 죽음의 문을 두드리다 이젠 살겠다고 면접이라니, 제겐 ‘생사일여’라는 철학조차 얼마나 가볍기 짝이 없는지요. 당시의 자살 시도는 결코 허풍도 협박도 아니었지만 말입니다. 정말이지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었으니까요. 이제 와서 그 때를 회상해 봐도 이내 같은 마음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자살 시도 이후 정신과 폐쇄 병동에 약 2주간 반 강제로 입원하였습니다만, 딱히 큰 차도는 없었습니다. 퇴원 후 그야말로 껍데기만 남은 몸뚱이를 이끌고 지방에 위치한 어느 펜션에 휴양을 하러 갔습니다. 하필이면 수면제 챙기는 것을 깜빡하고 말았습니다. 낯선 곳 새까만 어둠 속에 누워 매일 밤 불면과의 사투를 벌이는 것은 비할 곳 없이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까드득 까드득 신경을 긁는 듯한 소리가 잦아들 때 쯤이면 홀연 우주에 둥둥 떠있는 듯 했는데, 진공 안에서 지구를 바라보는 우주인이 된 기분은 몹시 기괴하고도 불쾌했습니다. 까무룩 선잠이 들면 눈앞이 온통 피칠갑 된 시뻘건 악몽에 놀라 다시 깨어났습니다. 내장이 말라 붙은 소의 머리, 잘려 나간 사람의 머리가 뒹구는 와중에 발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새벽 5시 동틀녘이 되어 겨우 잠이 들면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햇볕이 뜨거운 한낮에 깨어나면 식은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이마에 착 들러붙어 있었습니다. 검푸른 늪 밑바닥에서 필사로 허우적대다 떠오른 듯 늘 축축하고 무거운 기분이었습니다.
집에 돌아온 그날, 처음으로 공황 발작을 겪었습니다. 심장이 터질 것 같고 숨이 가쁘다 못해 끝내는 쉬어지지 않았습니다. 드문드문 쉬는 숨이 때론 짧게, 때론 길게 끊겼습니다. 온통 어지러웠습니다. 심장이 멎을 듯 했습니다. 질식할 듯 기도가 막혀오는 듯 했습니다. 도리 없이 엎어져 바닥에 찰싹 붙어있었습니다. 구급차를 부르려다 망설이길 몇 번, 결국은 관두었습니다. 어렴풋이 이것은, 진짜 발작이 아닌 ‘공황발작’ 임을 알고 있었던 것이지요. 폐쇄병동에서는 자주 벌어지곤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어느 여자아이로부터 얼핏 들은 ‘응급처치’ 같은 것이 생각나 비닐봉지 속에 숨을 불었다가 들이마시길 반복했습니다. 그 순간 또한 그렇게 잦아 들긴 하더군요.
우물로, 우물로, 계속 빠져 들었습니다. 아래로 허물어질 수록 하늘은 더욱더 작아져 마침내 엄지 손톱만한 푸른 점이 되었습니다. 사람 있어요, 외쳐도 구해 주는 이 없기에 한줄기 연기 나마 올려 보내고 싶었습니다. 분노라는 땔감이야 차고 넘쳤기에 강 팀장 하나쯤 불살라버리기에는 충분한 양이었습니다. 나만 죽을 수 있겠니, 너도 이 우물 바닥에서 나와 함께 죽자꾸나. 연기에 홀려 우물을 들여다 보는 순간 네 목을 오라로 낚아채 여기로 끌어내릴 것이다. 저는 복수에의 집요한 야욕에 빠졌습니다. 지난 2년 간 보았던 강 팀장의 실책을 생각나는 대로 쥐어 짜냈고 회사의 인사팀에 아래와 같은 고발장을 보냈습니다.
[A 증권 사내 문화 고발]
… 본인은 ① 능력 외 다른 요소에 의한 차별 (업무 차등 분배), ② 업무 기회 불평등, ③ 고의적인 업무 배제 및 방임, ④ 미흡하거나 전무한 업무 인계 과정, ⑤ 업무 상의 실수에 대해 응당한 처벌 이상의 과도한 질타, ⑥ 인격에 대한 존중의 선을 넘는 언어 폭력의 문화 등으로 인해 본인이 입은 정신적인 타격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1) 음주 강요 문화
- 입사 첫날, 강태호 디지털마케팅 팀장 (이하 ‘강 팀장’) 은 약 2천cc 가량의 맥주 피처에 소주 여러 병을 들이 부은 뒤 500cc 잔에 따라주었고 원샷으로 마실 것을 종용했습니다. 신규 입사자는 기어서 들어가는 게 관례라고 들었습니다…. 길바닥에서 토사물과 함께 뒹굴며 저는 의식을 잃었습니다…. 주변을 살피던 남성 하나가 저를 관찰하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이것은 타이밍 좋게 그 옆을 지나가게 된, 산책 중인 어느 모녀가 전해준 얘기입니다…. “아저씨 뭐 하시는 거예요?” 모녀의 물음에 몸을 더듬던 남성은 후다닥 달아났습니다. 모녀는 토사물 투성이의 본인을 안아 일으키고 집을 찾아주려고 했습니다. 본인의 핸드폰으로 가족에게 연락을 하였으며, 본인 가족에게 본인을 인계할 때까지 곁을 지켰습니다… (이하 모녀의 전화번호).
2) 성적 차별 대우
- 입사 당시, 강 팀장에게 정규직으로 계약을 할 수 없겠냐고 물었을 때 이 회사는 과장급 이상의 여성 채용을 매우 꺼리기 때문에 일단 계약직으로 시작하는 편이 수월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팀장의 뺨을 때리지 않는 이상 정규직 전환은 이례 없이 진행된다고 들었습니다. 만약 정규직 전환이 되지 않는다면 다른 증권사를 소개해 주겠다며 흔쾌히 장담했습니다.
3) 업무에서의 배제 및 방치
- 강 팀장이 배분하고 팀원 사이에 공통 합의된 업무 분장 관련, 본인의 업무를 사전 고지 없이 타 팀원에게 분배하고 본인에게는 별도 고지하지 않은 경우가 수십 여 건에 달합니다…. 본인은, 이미 다른 팀원에게 분장된 업무를 하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허비해야 했으며, 일주일 중 4일 이상 평균 10시까지 야근을 하여야 했습니다. 대화 녹취와 주고 받은 문자 내역을 첨부합니다….
(이하 녹취 및 메신저 화면 캡처 첨부)
4) 기타 언어 폭력 외
- 마케팅본부장 오승윤 상무가 강팀장에게, ‘디지털 마케팅 과장의 자존심을 있는 대로 짓밟고 뭉개 바닥까지 끌어내리는 한이 있더라도 성과를 뽑아내라.’ 라고 지시한 사실을 강팀장으로부터 직접 전해 들었습니다….
- 사내 메신저 내용은 자신이 마음먹는 대로 모두 열람할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경고를 들었습니다….(이하 생략)
이윽고 인사청문회가 열렸고 강 팀장의 ‘팀장’ 직위는 해제 되었습니다.
그리고 놀라울 정도로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우물 밑 바닥은 굳어지지 않았고, 우물 벽 물 이끼에는 손톱조차 걸리지 않습니다. 인사팀의 처분이 강 팀장에게 치명타가 되었을지의 여부는 알 수 없지만, 그마저도 이제 저와 관계 없는 일이 되었습니다.
물이 차면 차는 대로 낮아지면 낮아지는 대로, 이리저리 쓸리며 심연의 시간을 견디고 있습니다. 사는 모양새는 그저 먹는 것으로 발현되고 있을 뿐입니다. 육신의 껍데기는 음식을 쑤셔 넣고, 내장은 자꾸 밀어내려고 합니다다. 삼킨 것들은 명치에 납작하게 눌려 버티다가, 게워내 지던가 아래로 꾸역꾸역 밀려내려 가던가 하는 식이지요. 명치부터 배꼽까지 끊어내 버리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럽습니다. 신경정신과 주치의 선생님은 이것 또한 공황 증세 중 하나라고 하더군요. 해소되지 못한 감정들이 위장 속에 갇혀, ‘심신상관증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치료 방법도, 약도 없는 것이지요.
한 달 서른 밤이 아닌, 하루 수백 번의 붉은 밤과 수 천 번의 검은 밤이 저를 덮쳐 옵니다. 분주한 사무실 속 바삐 일하고 있는 저의 꿈을 꾸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곳은, 행인지 불행인지도 모를 무채색의 시공간입니다. 그저 납작하게 엎드려 숨죽인 이끼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과연, 죽는 것일까요, 사는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