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담자: 송정훈
[SESSION 01. 방공호]
언제가 제일 행복하냐고요? 잠자는 시간이 가장 행복합니다. 이외에는 드라마나 보며 시간이나 죽이는 신세이지요.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 보셨어요? 마지막 화 중 이런 대사가 있습니다.
- 돈이 너무 많은 사람과, 돈이 너무 없는 사람의 공통점은 인생이 재미 없다는 거야.
하지만 저는 동의할 수 없어요. 뭐라 하기 애매한 돈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생은 재미가 있게요? 별로 새로울 것 없는 장소에서, 새로울 것 없는 일과를 시작하고, 늘 보는 사람들과, 별다른 이벤트 없는 하루를 보내는 게 다예요. 뻔하지 뭐, 해버리는 것은 아마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제일 간단해서 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기도 할 거예요. 더 대단한 걸 바라거나 새삼 호기심을 가지기엔 지난 세월 너무 많이 다쳤고 너무 많이 아팠어요. 이것도 ‘방공호’랍시고 꾸역꾸역 쌓아 올린 게 지금의 안정인데 이것마저 무너지면 전 도무지 다시 일어날 자신이 없어요.
[SESSION 02. 생계]
인원이 100명 남짓인 작은 생활용품 업체의 홍보팀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작가로 멋지게 등단한 뒤 그만두자는 생각으로 시작한 일인데, 체력 탓에 병행이 쉽지 않다는 핑계로 글쓰기는 이래 저래 미뤄둔 것이 벌써 3년째입니다. 관두고 글쓰기에만 몰두할까,하는 생각은 해봤자 사치일 뿐입니다. 학창 시절 불어를 전공한 덕에 번역 프리랜서로 뛰어볼까 생각한 때도 있었지만 감히 실천에 옮기지는 못했습니다. 작은 기업일지언정 무리 속에 숨어 보호색을 띄고 있는 한 발밑이 꺼질 정도로 불안한 기분은 들지 않으니까요. 회사가 전쟁터라면 사회는 지옥이라는 말은 저와 같은 수많은 ‘미생’들의 발목을 붙들고 있을 테지요. ‘이게 아닌데’싶다가도 이 시국에 생계 수단이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냐며 소시민적인 감사를 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K 신문사의 기자 한 명으로부터 메일을 받았습니다. 회사에 대한 보도자료를 그대로 내보내도 되겠냐는 문의였습니다. 메일에는 <어느 회사의 이상한 행동 강령>이라는 제목이 붙은 워드 파일과 저희 회사 강령 수첩의 1페이지를 스캔한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습니다. 입에 담기 민망할 정도로 유치한 ‘행동 지침’의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1) 조직은 군대처럼 운영해야 한다.
2) 우리 회사는 위에서 내려가는 지시를 그대로 이행하는 ‘상명하복’ 조직이다.
3) 업무 강도는 세게! 관리는 철저히!
언론이며 여론이 물고 뜯을 만큼 좋은 먹잇감이었습니다. 민감하고 심각한 사안이라고 생각한 저는 곧바로 전무님께 보고를 드렸습니다.
- 군대가 어때서! 군대가 나쁘냐!
전무님은 어느 뜨내기 기자가 돈 푼이나 뜯어내려고 한다며 되려 소리를 질렀습니다. 열흘 후 어김없이 기사는 올라왔고, 기사를 막지 못한 책임을 추궁 당해 다시 호된 불똥을 맞았습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기사를 내리기 위해서는 또 다른 기사를 내야 했습니다. 저는 제가 가진 최선의 필력으로 회사의 무용담을 써내려 가기 시작했습니다. <A사, 화상 환자를 위해 1천만원 대의 무료 수술을 지원하다>, <A사, 소비자가 신뢰하는 기업 1위를 차지하다>, <중국으로 활로를 넓히는 A사의 도전> 등등, 남녀노소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직설적인 칭찬으로 채워 넣은 그 기사들은 흡사 북한의 선전물과도 같았습니다. 작은 회사였지만 아예 무방비할 정도로 ‘연줄’이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라운딩’이라고 부르지만 실상은 술 접대로 정성껏 모셔온 기자들에게 갓 구워낸 제 글 쪼가리들을 돌렸습니다. 백방에 전화를 돌려 땅에 코 박을 듯 부탁 했고, 그에 화답하듯 몇몇 신문사들의 인터넷 지면에 속속 미담들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쯤이면 충분하다 싶을 만큼의 기사가 올라오기까지는 약 반나절 정도가 걸렸습니다. 다음은 쉬운 단계였습니다. 돈으로 해결 가능했으니까요. 대행사에 2천만원을 지불하고 검색 최적화 작업을 부탁했습니다. 회사 연관 검색어의 검색 결과 1페이지의 <행동강령>을 밀어내고 <중국진출>을 그 자리에 채워 넣는 것이지요.
업력이 꽤 길었기에 사무에 신속을 기하기 위한 IT시스템은 제법 구색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직원 처우나 복지 확충에 예산을 쓸 정도의 재정적 여유는 없었고, 있다고 하더라도 정작 대표 스스로가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듯 했습니다. 지금은 60대 장년이 된 대표를 수장으로 설립되어 90년대 말 외환위기까지 이겨낸 애매한 규모의 ‘중중소’ 기업이었습니다. 눈에 띄지 않는 사각지대에 자리한 채 30년을 버텨냈고, 노동법의 뙤약볕을 기어코 피하지 못해 빛바랜 일부분만을 도색한 것 만으로도 회사는 그럭저럭 건재했던 것이었습니다.
매년 3월에서 6월 사이에는 ‘현장지원’이 있었습니다. ‘디자인팀’도 ‘회계팀’도 너나 없이 자신의 이름 세 글자가 적힌 명찰을 달고 마트에 파견되었습니다. 신상품의 샘플을 마트 방문객들에게 나누어주고, 샘플의 수량을 시간마다 확인했지요.
- 저기요, 여기 화장실이 어디예요?
화장실의 위치를 물어오는 손님이 제법 있었는데 그게 오히려 반가웠습니다. 화장실 위치를 설명하고 오겠다며 부러 매장을 한 바퀴 휘 돌고 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라도 시간을 죽이지 않으면, 1분도 1백 년 같았던 것이죠.
매년 1월의 ‘동계 물류 지원’이 백미였습니다. 직원들은 ‘곧 그날이 오리라’라며 과장스레 자조하였는데 그럴수록 마음은 쌀겨 마냥 쭈그러드는 것이었습니다. 4~5인으로 된 조가 미리 짜여졌고, 조원 1인의 차량 속에 찌그러진 채 이천의 물류창고로 이동했습니다. 한겨울 아침 8시, 군불도 없는 백열등 아래의 실내는 야외와 마찬가지로 시려서 대화라도 할라 치면 입김이 나왔습니다. 100명 내외의 직원은 미처 얼음장 밑에 들지 못한 흙 위, 먼지가 낮게 이는 운동장에 종종 거리고 선 채 ‘춥다’라는 것 외 별 내용도 없는 수다를 떨고 있었습니다.
- 보온팩은 한 사람 당 하나씩이예요. 물은 정수기에서 떠다 드시고요.
높은 층고에서부터 지게차가 내려준 박스 수 천 개를 열어보며 물량을 일일이 확인해야 했기에, 실내가 아닌 야외에 쭈그리고 앉았습니다. 삼삼오오 모여 엉덩이 밑에 폐박스를 깔고 상자 하나씩을 맡아 나누어 세다가, 자기 상자 내 물건의 수량을 모두 점검한 뒤에는 서로 바꾸어, 앞 서 센 수량이 정확한지 확인하는 식이었습니다. 일견 간단해 보여도 셀 때마다 숫자가 달라진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기어코 숫자를 맞추고 나면 어느새 해가 저물어 있었습니다. 무거운 엉덩이를 느릿느릿 끌고 집으로 귀가했다가 다음날 아침에는 또 같은 차를 타고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일주일 내내 계속되었지만 그래도 한식 뷔페 메뉴는 매일 바뀌었습니다. 이천 한식 뷔페집은 싸고 맛있구나, 내심 흡족해 하며 잡채를 꼭꼭 씸어 삼켰습니다.
어느 날 총무팀의 과장님이 제 책상 옆 휴지통을 의자 삼아 엉덩이를 올려둔 채 말했습니다.
- 야, 너 카누 먹지 마.
- 왜요?
- 맥심만 먹어. 긴축이야 긴축. 어쭈, 책상에 각티슈 봐라? 두루마리 써. 농담 아니고, 진짜로.
- 아, 과장님!
저는 장난스레 분을 표시했습니다.
- 저 마우스 패드 구매 기안 올렸는데 왜 반려하셨어요.
- 마우스패드는 무슨. 마우스패드든 각티슈든 올리면 대표님 전결 받아야 하는데, 올리고 싶냐? 나도 못 사서 A4 용지 쓰고 있어. 나중에, 나중에. 참, 설날 연휴 연차로 올려, 얼른. 늦었어, 너만.
- 무슨 연휴가 연차야. 이번 워크샵도 금, 토예요?
- 어어, 김치 전설 알지? 집 김치 안 갖고 왔다고 대표님 노하신 거. 이번에 양 차장님이 겉절이랑 마른반찬 싸오실 거야. 대표님 것만. 혹시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메뉴 생각해 놔라. 오늘 선발대랑 장보러 갈 거야. 태원이가 고추장찌개 잘 끓인다고 해서 부탁하려고.
삐걱삐걱, 이가 맞지 않아 가운데가 꺼져 버린 회사 바닥이지만 그래도 발이 빠지는 일은 없습니다. 디딜 수 있는 마루가 있어 안심합니다. 주 52시간 근무제, 최저 임금. 수혜를 누리게 되더라도, 아마 순서는 최후가 되겠지요. 이곳을 박차고 나간다고 해도 우리는 어느 곳에서 아마 다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엇비슷한 규모의 회사에서 비슷한 조건의 사람들에게 이직 제안서를 돌리는 듯, 어제 내가 받은 제안이 내일은 옆자리 동료에게 가 있곤 했으니까요. 그런 회사들은 늘 입사율보다 퇴사율이 더 높은, 회전율 하나는 끝내주는 곳들이죠.
그럼에도 불구, 8월 연봉 협상이 있고 난 이후에는 층마다 퇴사 인사를 다니는 분들이 매일 둘 셋씩, 한 두 달이나 연이어 속출하곤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모습에서 자신의 앞날이라도 보듯, 어떤 이는 안도하고 어떤 이는 한탄합니다. 그 앞 날조차 보이지 않는 이들이 뻐끔,뻐끔하며 쉬는 한숨이 갑갑한 공기 속을 부유합니다.
저희 회사 입사지원서에는 생년월일시를 적는 란이 있습니다. 태어난 시를 적으라는 것은 사주를 보겠다는 뜻이지요. 면접을 보던 날, 면접관이 자리를 비운 사이 종이 하나가 비죽 나온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경술월...임인일... 허리가 부러져 죽어도 일하다 죽을 팔자. 저는 면접을 가뿐히 통과했습니다. 이 회사가 지원자의 사주를 본다는 것은 직원들 사이에서도 공공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정작, 사주를 보아주던 회사 전담 역술가가 몇 년 뒤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는 아이러니한 소문이 들려왔지만요.
- 대리님, 저는 빨리 점심시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빨리 퇴근을 하고. 빨리 하루가 지나고, 빨리 인생이 흘러서, 빨리 죽었으면 좋겠어요.
너는 젊은 애가 무슨 그런 말을 하냐, 농담으로 여겨 웃으면서도 한편으로 같은 생각을 합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하며 하루를 꾸역꾸역 채우다 결국엔 청중 하나 없이 끝나 버리는 것이 인생인 걸까요. 풍파를 과장하고 불행을 자랑하는 건, 누가 봐주지 않는 평범한 인생보다 비참한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