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이라는 동화 (2)

쇼미더머니

by 여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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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담자: 송정훈


[SESSION 03. N잡]


한 문장이 되었든 열 문장이 되었든, 다시 꾸준히 써보자고 마음 먹었습니다.


최근 어떤 힙합 경연 프로그램 하나에 열광하게 되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이 방송되는 수요일 밤 11시가 되면 침대에서 녹다운 돼 기척 없는 중에도 벌떡 일어나 TV 앞에 앉지요. 관 뚜껑까지 던져버리고 나올 판인데, 이불이 웬 말이겠습니까. 죽어가던 창작 욕구에 엉뚱한 불꽃이 튀었습니다.


집 밥 같은 인생에도 한 꼬집 조미료처럼 자극적인 맛은 필요한 법입니다.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해 왈가왈부 의견이 많지만 프로그램을 볼 때 만큼은 야밤에 라면 한 그릇 뚝딱 비우는 기분입니다. 감히 ‘매니아’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전에도 힙합이나 랩을 상당히 좋아하는 편이었습니다. 퇴폐적인 비트, 시적인 운율, 딱 떨어지는 라임, 여기에 훌륭한 서사까지 갖춘다면 귀에 착착 달라붙는 찰떡이 따로 없습니다. 신선하고 실험적인 것들은 더욱 이목을 끕니다. 의미마저 파괴하는 ‘라임적 허용’이라던가, 독백처럼 읊조리는 것이 한 편의 모노드라마를 보는 듯한 ‘메소드’ 랩, 한 호흡을 부러 늦춘 엇박자 등 길들지 않은 표현을 찾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열정’ 하나 만큼은 ‘만수르’ 급인 ‘신예’들은 또 어떤지요. 비트가 시작되면, 돌연 눈빛 레이저를 켠 채 광기 활활 뿜는 괴물도 가끔 나오는데, ‘나는 나다!’라며 소리치는 ‘마이웨이’ 식 자신감은 라면에 신 김치까지 얹어 주는 듯 했습니다. ‘이러 해야 한다, 저러 해야 한다’는 세상의 소리에 기죽지 않고 제가 좋은 것에 기꺼이 매몰되는, 세계관 한번 뚜렷한 ‘미친자’가 등장하기도 하지요. ‘지지자불여호지자, 호지자불여락지자’의 진정한 ‘락지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모방자’, ‘기술자’, ‘미친자’ 등 콘셉트 별 다양한 군상이 등장 하는데, 기다려지는 것은 단연 ‘미친자’의 무대입니다. 그 무대를 볼 때면 오슬오슬 소름이 돋는 게 덩달아 접신해 방울이라도 흔들 기세가 되어 버립니다. 꼭 한번은 내 광기도 폭죽처럼 터뜨리고 싶어졌습니다.


하나의 극점에서 반대의 극점까지 나열된 낱말 하나하나를 어루만져보고, 먼 곳에 위치한 것들을 서로 어울리게 빚어 내는 능력에 감탄합니다. 20대 초반에는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식 비유에 황홀해 하곤 했습니다. ‘봄날의 아기 곰을 안고 뒹구는 것처럼 네가 좋아’라든지 ‘갑자기 딸기 쇼트케이크가 먹고 싶어’라고 말하는 여자를 위해 남자가 헐레벌떡 뛰어가 사오면 ‘이제 먹기 싫어졌다’라며 그걸 창 밖으로 내던지는 장면을 묘사하며 ‘가끔은 그런 것들이 여자에게 중요하다’,라고 어른 아이의 어리광 심보를 표현하는 장면 같은 것들 말이지요.* 좀 더 다양한 범주의 작품을 읽게 된 지금도 ‘작가가 언제쯤 내 기대를 거스를지, 이야기는 당최 언제 탈선할지’라며 다소 ‘변태적’인 심정으로 기다리는 것은 여전합니다.


‘비둘기는 바둑 기사처럼 침묵하며, 신발은 유리처럼 빛난다.’라는 문장은 신선하면서도, 상상력을 자극하지요. 무슨 말인가 싶다가도 부지불식 머리 위에는 그림이 그려지고 있으니 순간 멈칫 할지언정 결국 동의할 수밖에 없는 묘사이구나,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이 문장은 어느 만화 여자 주인공의 대사 가운데 하나인데요.** 소녀는 ‘나뭇잎’와 ‘목성’처럼 일견 동떨어져 보이는 것들을 엮어 문장을 만들어 냅니다. 이로써 ‘나뭇잎’과 ‘목성’을 연결하는, 새로운 고리가 우주에 태어난다며 흡족해 하지요. 그녀를 짝사랑하는 소년이 있어 둘만의 낱말 잇기를 시작하는데, 어휘력이 다소 심하게 풍부한 소녀는 ‘치차종삭반’이나 ‘리슈만편모충증’이라는 희한한 단어들도 어렵지 않게 꺼냅니다. 설마 하며 검색해보니 실제 존재하는 단어들이 아니겠습니까. 이 끝말잇기는 무려 한 달 동안 계속 되었고, 소년은 ‘이대로 둘이서, 인간이 만든 말을 전부 다 말하면,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대화를 한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라는 낭만적인 생각도 해봅니다. ‘리타타리움’이라는 단어를 뱉고 난 뒤 소녀는 패배를 선언하는데, 소년과의 말 잇기 놀이가 끝나는 것이 싫어 멋대로 ‘리타타리움’이라는 단어를 말을 지어냈다고 고백해 옵니다. 사흘 후 외국에서 새로운 물질이 발견되고 이 물질에는 ‘리타타리움’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뉴스가 전해집니다. 소녀는 ‘우리가 말을 지어 냈으니 세상이 서둘러 의미를 만들어 낸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어 ‘신도 어쩌면 그런 식으로 세상을 만들었는지도 모른다’라며 미소 짓지요.


참 철학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현학적’으로 들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굳이 어려운 얘기를 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19세기 언어학자 ‘소쉬르’의 이론이 연상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런 것이지요. 소쉬르는 ‘언어’를 일종의 ‘기호’로 보았고, 이는 ‘기표’와 ‘기의’로 나뉘어 진다고 했습니다. ‘기표’는 문자나 발음 그 자체이고, ‘기의’는 그것이 품고 있는 ‘뜻’입니다. 하나의 기표가 여러 가지 기의를 가질 수 있으며 기의는 가변성을 가지고 있지요. 예를 들어 ‘빨강’이라는 단어의 기본 의미는 ‘색깔 중 하나’이지만 신호등에서의 ‘빨강’은 ‘정지’의 의미로 변화하는 것처럼 말이죠. 영화 <기생충> 속의 ‘냄새’나 ‘선’이 ‘가난’과 ‘계급’을 은유적으로 상징하는 데 쓰인 것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결국 ‘단어는 형식적인 것이며 그 속에 담긴 의미는 상황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으므로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소쉬르’ 이론의 골자입니다.


단어를 가지고 놀다 보면 종종 유머가 탄생하기도 하는데, 냇가에서 청개구리라도 발견한 마냥 그 재미가 쏠쏠합니다. 유머의 원리는 무엇일까 궁금해져 찾아본 적이 있는데 철학자 ‘칸트’가 이런 말을 남겼더군요. “웃음은 팽팽한 기대가 갑자기 어처구니 없는 것으로 전환될 때 일어나는 감정이다.”라고요. 원래 어떤 관점, 그 중에서도 주로 심각한 관점에서 인지 되던 것이 갑자기 완전히 다른 관점, 그러니까 주로 엉뚱하거나 예상에 빗나가거나 우스꽝스러운 관점에서 보여지게 되면, 원래의 기대는 거품처럼 무너져 버리고 결국 웃음이 터져 나온다는 것입니다. 과연 그럴 듯한 설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뻔히 예상되는 상황에서 빗나가는 것을 볼 때 통쾌한 감정을 느끼곤 하니까요.


반전이 가져다 주는 카타르시스를 담고 있는 작품들도 대단합니다. '넷플릭스' 프로그램들을 무심히 둘러보던 중 마침 올라와 있던 일본 애니메이션*** 한 편을 보게 되었습니다. 야쿠자 세계에서 명성이 자자한 전국 최고의 야쿠자가 돌연 ‘전업주부’로 전환한다는 내용인데요. 모든 일에 비장하고 쓸데없이 살벌한 그의 모습이 어처구니가 없어 실소가 터집니다. 사시미 칼을 들고 피칠갑 한 것은 알고 보니 깜찍한 곰돌이 깃발이 꽂힌 어묵 도시락을 만들기 위한 ‘생선 해체 쇼’로 인한 것이었고, 무릎까지 꿇고 ‘엄격, 근엄, 진지’하게 기다리던 ‘회장님’은 사실 동네 부녀회의 ’회장님’이었다는 것처럼 말이지요. 칼 자국이 선명한 험상궂은 맹도견의 이름은 ‘엘리자베스’라는 설정이나, 죽은 메뚜기를 짊어진 개미 행렬을 보고 ‘야, 너네 그거 먹으려고 가져가냐?’라고 묻는 고양이에게 ‘아, 뭐, 네’ 라며 회사원의 ‘멋쩍고 성실한’ 말투로 대답하는 개미도 실소의 포인트이지요. ‘무서움’이 알고 보니 ‘귀여움’이었다니, 하루의 긴장을 풀며 맥주 캔을 따는 듯한 청량하고 시원한 맛이 있습니다.


조개는, 게랑 더 친할까요, 벌레랑 더 친할까요? 우연히 접한 프랑스 그림책 <누구랑 더 친할까?>****는 제 ‘기표’에 담긴 ‘기의’가 얼마나 협소한 지 알아야 한다며 뻥!하고 펀치를 날려왔습니다. 조개가 벌레의 친구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 보지는 않았으니까요. 그러고 보면 어떤 조개는 ‘게’가 아닌, ‘벌레’와 더 친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더군요. ‘바다’라는, 일개 공통점에 의거해 분류할 줄만 알았지 ‘벌레’와 ‘게’를 친구로 맺어 주는 상상력을 잃은 지 오래입니다. ‘친하게 지내’라며 엉뚱한 것들의 만남을 주선할 때 아주 재미있는 일이 생기는 듯 합니다. 만화 속에서 야쿠자와 가정 주부가 엮이는 것처럼 말입니다. 야쿠자의 부하들은 극심하게 반발하다 종국에 ‘주부와 야쿠자는 표리일체가 아닐까’라며 인정하기에 이릅니다.


‘기표’가 담을 수 있는 수많은 의미들을 더듬어 억지 없이 자연스러운 고리를 만드는 기발함에 때로 즐거워 합니다. 그저 좋아서 미친, 천진무구한 광기에 무람 없이 빠지고 싶습니다.


글을 본업 삼을 준비는 되지 않았습니다. 펄펄 뛰는 날 것의 불꽃도 생계의 풍파에 따라 일고 지고 할 것을 압니다. 동면에 든 창고에 이제 슬슬, 군불이나 때볼까 합니다.


[SESSION 04. 꿈]


꿈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나타나서 무당에게 제 앞날을 물었다며 그 결과를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 얘야, 넌, 빌게이츠만큼 유명해 질 거란다.


할머니가 제 이름 석자를 가리켰습니다. 그 아래에는 제가 태어난 사주가 적혀 있었습니다. 경술월... 임인일... 현몽이라, 이보다 명확한 계시가 있을까요. 저는 사직서를 준비했습니다. 마지막 페이지에 사인을 하려고 하는데, 펜촉이 너무 얇아 잉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갖은 애를 쓰다 애먼 종이를 찢고 나서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바늘이었습니다.


7시야, 일어나라,라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이어졌고, 저는 곧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 무라카미하루키, <상실의시대>, 유유정 옮김, 문학사상, 2000

** 미시마요시하루, <코다마마리아문학집성>, AK커뮤니케이션즈, 2021

*** 오오노코스케, <극주부도>, 월간코믹@번치, 2018

**** 마거릿티벌티, <누구랑 더 친할까?>, 아람,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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