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이라는 동화 (3)

쇼미더머니

by 여날


내담자: 송정훈


[SESSION5. 슬럼프]


얼마 전에 서점에 들렀습니다. 베스트셀러 코너에 가보니 그 해의 가장 큰 이슈가 무엇인지 바로 보이더군요. 작년에는 투자였던 것 같은데 올해는 메타버스인 것 같습니다. 트렌드에 맞춰 A4 최소 100장 이상이나 될 법한 책 한 권씩을 적시에 척척 내놓는 것을 보면 세상에는 참으로 박학다식한 사람도, 전문가도 많은 것 같습니다.


한편 변함 없이 인기인 이슈도 있습니다. 소확행이나 힐링물이 몇 년째 대세를 이루고 있는 듯 한데요.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지 또 어떻게 하면 성공을 하며 자존감을 높이고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는지는, 예나 지금이나 모든 이에게 있어 변함없는 화두인 것 같습니다.


콘텐츠는 또 어떨까요. 사회, 과학, 예술, 철학, 인문, 예체능, 오락 등 세상의 모든 이야기들은 다시 한번 신선하게 가공되어 난생처음 접하는 듯한 재미를 선사합니다. 날카로운 평론과 풍자, 해학까지 갖추고 있으니 이 세상에는 곳곳에 숨은 고수들이며 천재들이 많구나,라고 매번 감탄하게 됩니다.


갑자기, 작가가 되고 싶다는 저의 꿈이 과연 가당키나 한 것인지 의심이 들었습니다. 날이면 날마다 등단하는 무수한 신인을 능가할 만큼의 필력도 내세울 만한 아이디어도 가지지 못했거든요. 저보다도 더 전문적으로, 더욱 설득력 있게 말하고 있는 수 많은 서적들을 보며, 같은 말을 다른 단어로 바꾸어 봤자 소음만 될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30대에 들면서 최선을 다해본 적이 없습니다. 기대에 부풀어 노력을 쏟아본들 '귀하께는 진심으로 죄송하지만...'이라는 답변이 주로 돌아오곤 했으니까요. 미리 실망하고 자조하는 편이 나았습니다. 그다지 열심히 하진 않았으니까,라는 핑계라도 댈 수 있으니까요. 내 능력이 그만큼밖에 안된다는 것을 인정하느니, 차라리 금붕어를 삼키고 말겠습니다.


한편으로는 어쩌면, 이곳이 제가 오를 수 있었던 가장 정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이 제 인생의 가장 찬란한 날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역설적인 기쁨이 될지도 모르고요. 이제는 자박자박 내려가는 일만 남은 것이 아닐까요. 앞으로 서서히 잃어갈 모든 것들을 오늘의 제가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유행 지난 카고 바지 하나까지 쥐고 놓질 못할 만큼 그렇게나 버리는 걸 아까워하던 제가, 다음 계절이 오지 않을 것처럼 지난날의 물건을 처분했습니다. 꼭 필요하지 않은 것, 좀처럼 쓸 일 없는 것을 모두 버렸고, 새로운 소비도 줄였습니다. 불쑥 욕망과 집착이 생길라 치면 딛고 있는 이 자리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앞으로 100년 뒤, 저는 여기에 있을까요. 저를 둘러싼 사람들은요, 또 물건들은요, 이 장소는요. 심지어는 이제 갓 태어난 아기 마저도요. 모든 것은 사라질 것입니다.


지난 세월 동안 저는 제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그렇기에 좌절을 맞닥뜨릴 때마다 크고 작게 무너졌고, 치유하고자 노력했으며, 다시 도전하고, 내 인생의 해 뜰 날을 기대했습니다. 'The best is yet to come.'이라는 말처럼, 가장 좋은 날은 아직 오지 않은 것이라고. 대부분이 같은 마음이리라 생각하지만 결코 모두가 주인공이 될 수는 없지 않겠어요. 슬프고 괴롭고 고통스러운 것은 항상 우리 곁에 있는 법입니다. 받아 들이는 것 외에 별 수 있겠습니까.


세상에는 운 좋게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별다른 풍파 없는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개천에서 난 용처럼 사람들의 귀감이 되는 성공신화를 쓴 사람도 있습니다. 대다수는 엇비슷한 굴곡을 겪으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중위 정도의 삶을 살아가는 듯합니다. 또 그만하면, 괜찮은 인생일 것입니다. 부끄럽지만 저는 개천에서 난 용이 될 줄 알았습니다. 누가 뭐라 해도 이 세계의 주인공은 나,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 자신이 아닌가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애 초반을 그렇게 시작하였듯 말이죠.


인생도 중반에 접어든 지금, 이 세계의 주인공은 내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성공 신화도 결국 내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요. 만약 이 세계가 드라마라면 말이죠, 조연도 있고, 악역도 있고, 지나가는 행인도 있잖아요. 그저 각자의 역할에 충실할 뿐인 거죠. ‘엑스트라’라면 또 그것대로 남은 생의 제 역할에 충실하고자 합니다. 영화 <패왕별희>의 경극 사부는 주인공에게 말합니다. 각각의 사람에게는 각각의 운명이 있다, 자신에게 부여된 운명을 받아 들여야 한다,라고 말이지요.


혹시, 다중 우주를 믿으시나요? 뭐, 증명된 것도 아니니 있으란 법도 없으란 법도 없죠. 조금만 상상력을 발휘해서 다중 우주를 가정한다면 그곳에서의 저는 혹시 비중 있는 조연 정도는 되었는지도요. 아님, 뭐 말고요. 적어도 다른 우주의 저는 목표했던 바를 이루고 그것으로 만족하였기를 바랍니다. 여러 개로 쪼개져 있을지언정 개인에게 배분된 행복은 결국 밸런스를 이룬다는 신의 큰 그림이 있다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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