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초등학교 3학년 1반, 그러니까 10살이던 시절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아버지를 일찍이 여의고 어머니 혼자 명동에서 양장점 일을 하고 계셨기 때문에 저와 동생은 외할머니 집에 얹혀 자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외할머니 집에는 백수였던 외삼촌이 군식구로 한 방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온종일 방안에서 틀어박혀 화장실 가는 때 아니면 나오는 법이 없었습니다. 용변을 보고 들어가는 길에 겸사겸사 끼니로 때울 수 있는 것을 챙겨 또 틀어박히곤 했습니다. 방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나면 언제 다시 나올런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여느 날의 밤이었습니다. 동생과 이불을 덮고, 불을 껐을 땐 오늘은 무사히 넘어가는구나 싶어 안도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방심을 아주 늦추어서도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월간 발행의 소년만화에서 '유비무환' 이라는 단어도 막 배운 참이었거든요. 유비무환, 미리 마음의 준비라도 해두면 최소한 놀라는 정도는 덜할 것입니다. 그래, 혹시 모르지, 경계하고 다독이며 선잠이 들었나 싶은 순간, 천지가 진동하는 듯한 ‘쾅’하는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렸습니다. 화들짝 놀라 치를 떨면서도 다시 되뇌어 보았습니다. 유비무환. 제가 방비할 수 있었던 것 따윈 아마도 없었을텐데 말이지요.
자정이나 지났을까, 그렇다면 이틀은 아니고 사흘 만입니다. 누적되는 횟수에 따라 무뎌지기는 커녕, 더 무서워지는 건 왜였을까요. 일방의 욕설과 고함, 그리고 다른 일방의 울며 애원하는 목소리가 반복 되었습니다. 외삼촌과 외할머니의 실랑이는 점차 정점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몇 시간이나 이렇게 잠자코 기다려야 할까, 억지로라도 잠드는 편이 나았을 텐데, 무력한 한숨을 쉬며 차라리 스스로를 탓해 보기도 합니다. 두 세 번의 날 숨 중 한번은 참아가며 이불을 10초마다 한번씩 말아 쥐었고, 제 일생 만큼의 시간을 소비했다 싶은 때야 비로소 온몸을 덮는데 성공했습니다. 이불로 귀를 꼭 막고 있으니 다행히 아까처럼 고막이 따가울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외삼촌의 험악한 목소리가 이불 위로 우렁우렁 울려 왔습니다.
- 돈 내놔라.
- 돈 없다, 이 망할 놈의 새끼야. 방 구석에 처박힌 저년은 누고? 오줌도 안 싸나 쳐 나오지도 않고? 쌍으로 지랄을 다 하네.
- 여자 없다 안 했나? 뭐 해준 게 있다고 지랄은! 큰 형이 내 주라고 숨겨 논 돈 있는 거 안다!
돈 달라, 안된다, 그 정도의 요지 밖에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어렸습니다. 외삼촌은 외할머니를 밀치고, 외할머니는 그 다리를 잡고 기를 쓰며, 결국엔 몸싸움이 벌어진 듯 했습니다. 장롱은 문마다 활짝 열려 있을 것이고, 서랍장은 있는 대로 뒤집혀 있을 것입니다. 날이면 날마다 그렇듯이 뻔한 물건들이 제멋대로 흩어져 있겠죠. 평소처럼, 외할머니가 기어이 돈 몇 푼을 쥐어주고 끝내 ‘아이고, 아이고, 내가 왜 저 새끼를 낳아 가지고’라는 한탄 섞인 울음 소리로 마무리되나 싶던 순간 문득 차가운 시선이 닿는 듯 했습니다. 목덜미에 오소소한 소름이 돋았습니다.
- 저 쌍년, 저 싹퉁머리 없는 년이 오늘 내 나오니까 질색하면서 지 밥 챙겨 테레비 앞으로 뛰어 가더라. 싸아가지 없는 년. 싸대기나 흠씬 올려 붙이려다 지 애미 난리 날까 얼마나 참은 줄 아나. 싸가지 없는 년.
날아온 비수는 두꺼운 솜이불을 찢고 심장에 꽂혔습니다. 영혼까지 차갑게 얼어 굳은 기분이었습니다. 아, 아까 그거. 어제 저녁 밥상을 손수 차려 양손에 번쩍 드는 순간 외삼촌이 길고 긴 낮잠에서 깨어나 방문을 열고 나오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평소와 같이 뒷머리를 긁으며 하품하는 외삼촌을 뒤로 하고 무거운 밥상을 들쳐 안은 채 뒤뚱뒤뚱 TV 앞으로 갔습니다. 당시 열광해 마지 않던 미스터리 드라마가 막 시작되던 참이었거든요. 여차하면 초반부를 놓칠까 맘이 급해 달려가 앉았던 것이 외삼촌 눈에 그리 보였나 봅니다.
아닌데, 그게 아닌데. 분을 참지 못하던 외삼촌의 말을 떠올릴 때마다, 눈이 팽 돌아갈 정도로 뺨을 맞고 또 맞는 기분이었습니다. 잊고 싶을 수록 계속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양 뺨 쯤이야 시뻘겋게 터지면 그만, 그보다는 마음이, 두 볼이 아물고도 남을 시간 동안 더 많이, 더 오래도록 아팠습니다. 까짓 것 가지고 두고두고 분할 건 또 뭡니까. 한마디 변명조차 못해본 제가 몸서리치게 싫었습니다. 삼촌, 그게 아니라.
꼭 외삼촌이 아니더라도 맞아 보기야 평생 문자 그대로 수도 없이 맞아봤습니다. 비유 따위가 아니라 말 그대로 난데없이 뺨을 맞아 보기도 하고, 뭐 가릴 거 없이 짐승처럼 두들겨 맞기도 하고, 차라리 죽어 버리라며 목을 졸려 보기도 했는데, 그날 그 밤 두꺼운 이불 위로 떨구어 졌을 뿐인 '말' 이 왜 아직까지도 제일 아픈지 모르겠어요.
가끔은 제가 퍼부을 수 있었던 온갖 거친 말들이 이제 와서야 떠오르곤 합니다. 상황을 되풀이해 떠올리면서 어떻게 맞받아 쳐야 좋았을지 세세한 부분까지 상상해 봅니다. 그 말을 다 못한 자신에게도 분노를 느끼지만, 막상 그 때의 저로 되돌아 간다면 그 날 밤과 똑같이 마비되어 속수무책으로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있겠지요.
저는 외손녀라 사실 외할머니의 예쁨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사랑을 받아본 순간도, 따뜻했던 추억도, 애정 어린 조언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고분고분 말을 잘 들으면 예뻐해 주실까 싶어, 외할머니가 정해주신 규칙은 꼭 지켰습니다. 소변 볼 때는 휴지 두 칸, 대변을 볼 때는 세 칸만 쓰기. 문갑은 병이 나기 쉬우니까 한 칸 이상 열지 말기. 뭐 그런 저런 사소한 규칙들을 단 한번도 어긴 적이 없었습니다.
외할머니는 담배를 많이 태우시는 친구 할머니와 자주 화투를 치곤 하셨는데, 점수를 딸 때마다 방이 떠나가라 껄껄 대며 웃으셨습니다. 저는 외할머니가 웃는 것이 좋았습니다. 웃으실 때마다 저도 함께 웃었습니다. 언젠가 내게도 반드시 저렇게 웃어 주시겠지 아마, 하고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친구 할머니는 폐병으로 돌아가셨고 할머니의 그 웃음을 다시 볼 수는 없었습니다.
웃어 주신 적은 없지만 외할머니께서도 제 걱정을 하여 주셨던 때가 있었습니다. 저는 어릴 때 피부도 많이 건조하고 아토피도 심했는데 외할머니는 그때마다 바셀린을 발라 주셨습니다. 피부가 상했을 때는 바셀린 만한 것이 없다고요. 당신께서 직접 발라 주시지 못하실 때에도 저더러 바셀린을 찾아 바르게 하셨는데, 한 칸만큼 열린 문갑 사이로 그보다 더 큰 열 살의 제 손을 조심조심 비집어 넣던 기억이 납니다.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외할머니께서 대장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온갖 슬픈 생각을 하며 울어보려고 했지만 어찌 된 일인지 눈물이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주, 아주 몹쓸 아이가 된 것 같았습니다. 큰 외삼촌네 오빠들도, 둘째 외삼촌네 오빠들도 저렇게 슬퍼하는데, 왜 몇 년이고 같이 산 나는 왜 슬프지 않지,하고 생각하며 고개만 푹 꺾은 채 손가락만 꼼지락거렸습니다. 사실 '정 없는 년' 이라는 욕을 들을 걱정이 더 컸습니다. 그땐 충격으로 눈물도 안 나오나 보다 싶었는데 사실 그 이후로도 외할머니가 그리웠던 적은 단 한번도 없습니다. 외할머니를 떠올릴 때마다 무정하고 차가운 마음이 되어 버리는 제 스스로에게 질려버리는 한편, 죄책감도 함께 몰려옵니다. 저는 정말 ‘싸가지 없는 년’인 걸까요.
비록 문갑 한 칸 만큼의 마음만 열어 주셨지만 바셀린 한통은 아낌없이 발라 주셨는데 말입니다. 바셀린은 사실 만능 방어막인 것을 아세요. 만취한 외삼촌이 난동을 피우는 와중에 매 한번 맞아 본 적이 없는 것은 외할머니가 온몸으로 막아 주셨던 덕분일 테지요.
그런 애정도 있을 것입니다. 어쩌다 우연히 쓰임새를 갖게 되었지만 또 그만큼 두루 쓰이고 그만큼 보호해주는 어떤 것이요. 투명해서 보이지도 않지만 찐득하기는 또 어떤 연고보다 찐득한 바셀린 같은 것이요.
그때 외할머니에게 말했으면 좋았을 걸요.
- 할머니, 저 너무 무서웠어요.
- 할머니, 자는 척했지만 사실은 저 다 듣고 있었어요.
- 할머니, 제가 손자가 아니라 손녀라도, 친손녀가 아닌 외손녀라도 예뻐 하시는 거죠.
그리고 할머니는 저에게 이렇게 말씀해 주셨기를요.
- 여원아, 너의 잘못이 아니란다.
- 여원아, 너는 얼마나 예쁜 손녀이냐.
어찌 생각해봐도 눈물이 나지 않으니, 그때 그곳에서 하지 않았으면 영원히 소용 없었을 말도 있나 봅니다. 그 시절 할머니는 당신의 마음 돌보기도 버거우셨던 것일 테지요. 대를 타고 내려온 상처에도 바셀린이 특효 일지는 모르겠으나 미처 아물지 않은 상처들은 제가 마저 치료하고 가야 할 듯 합니다. 다시 뵙는 날에는 외할머니도 저도 모두, 진심을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