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담자: 정효민 (람의 아내)
[SESSION 01. 결손]
저희가 결혼한 지 3년, 이제는 아이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만 남편은 아이를 갖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아니, 두려워한다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일 것 같습니다.
‘아버지’가 된다는 것에 대한 막연한 부담감은 아마도 제 남편의 유소년 시절 경험에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남편은 소위 말하는 ‘한부모 가정’에서 자라났습니다. ‘현실의 아버지 상’이라는 것을 경험하여 보지 못한 그는, 새롭게 주어질 아버지라는 역할을 잘 해나갈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고 합니다. 좀 더 쉬운 이해를 위해 남편의 어린 시절을 상세히 풀어 보겠습니다.
이제부터 저희 남편을 ‘람’이라고 칭하겠습니다. 유년시절의 람은 안심하고 쉴 만한 ‘품’ 이라는 것을 가져 본 기억이 없다고 해요. 람이 채 돌을 맞이하기 전 그의 부모님이 이혼하셨고, 람의 어머니는 그를 안고 친정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람의 외할머니는 한창 예쁠 스물 때 훨씬 연배 높은 남자와 결혼을 했던 딸이 영 못 마땅했던 터였고, 그 남자의 핏덩어리는 외할머니에게 더더욱 거북스러운 존재였습니다. 람의 어머니가 잠시 외출한 틈을 타 외할머니는 아기 람을 안고 친아버지의 거처로 향했습니다. 집은 비어 있었고, 외할머니는 하는 수없이 핏덩이를 빈 집에 두고 가기로 했다고 합니다. 아기를 홀로 남긴 채 돌아서려고 하는데, 제 상황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람은 자지러지게, 필사적으로 울어 댔습니다. 외할머니는 급한 대로 아기를 안아 달랬고, 울음이 잦아들자 다시 람이를 눕혀 둔 채 문을 닫았다고 합니다. 람은 다시 새되게 울기 시작했고, 외할머니는 저러다 애가 끊어지지 싶어 달래고 또 내려놓았습니다. 마음 약한 외할머니는 수차례나 같은 과정을 반복했고, 결국 못 이기는 척 아기를 안고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고 합니다.
람이 걸음마를 시작한 무렵 즈음, 외할머니가 람의 노는 모습을 보며 가장 자주 하시던 말이 기억에 난다고 합니다.
- 어째 저 놈 새끼는 좋은 길 냅부고 물짠* 길만 밟고 다닐까 몰라.
어린 람의 생 앞에 놓였던 것은 주로 ‘물짠’ 것들이었습니다. 생계가 급했기에 람의 어머니, 즉 저의 시어머니는 서울에서 일을 해야 했습니다. 돌봐줄 이 없는 람은 나주 외할머니 집에 남아 그대로 5살까지 자랐다고 합니다. 외할머니 본디 성정에 따른다면 애정이 끓었을 것이나, 겉으로 상당히 무뚝뚝했고 훈육에도 엄한 편이셨다고 합니다. 물건을 치우지 않으면 그대로 버려버렸고, 밥을 먹지 않겠다고 떼라도 쓸라 치면 갓 지은 밥도 모두 버리곤 했습니다. 람은 마음 놓고 응석을 부려 본 적도, 무엇을 사달라고 졸라본 기억조차 없다고 합니다. 할머니가 과수원에 나가 계신 동안 오도카니 홀로 지내야 했지만, 가지고 놀 장난감조차 하나 가져보지 못했지요. 밥을 그득하니 먹어도 채워지지 않던 그 허기짐이 외로움인 줄도 몰랐습니다. 유치원 졸업식 날, 람이는 유치원까지 혼자 절반 쯤 걷다 제 그림자까지 혼자인 게 싫어 그냥 돌아왔다고 합니다. 여느 날과 같이 집은 텅 빈 채 조용했습니다.
이튿날, 졸업식에 참석하지 않은 람이 걱정되었던 유치원 선생님이, 마지막 인사를 건넬 겸 람의 집을 방문해 왔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졸업 선물로 ‘고래 로봇’을 주셨는데, 난생 처음 장난감을 가져본 람이는 고래 로봇의 턱이 빠지고 꼬리가 떨어져 더이상 고래 모습이 아닐 때까지 가지고 놀았다고 합니다.
5살부터 8살때까지는 엄마와 함께 살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당시 미혼이었던 외삼촌과 이모들도 한 집에 살게 되어 집은 예전과 달리 사뭇 왁자하고 떠들썩한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외삼촌이 고등학생이던 시절, 외삼촌은 람에게 ‘들국화’의 노래를 가르쳐 주었고, 자주 무등을 태워주었으며, 람에게 들국화의 노래를 몇 소절 신청하기도 하였습니다.
- 세상을 너무나 모른다고, 나 또한 너에게 얘기하지. 조금은 걱정된 눈빛으로, 조금은 미안한 웃음으로.
대학 졸업 후 건축을 업으로 삼게 된 외삼촌은, 아직 어려 짐이 될 법한 람이를 데리고 전국 각지로 함께 답사를 다니곤 했다 합니다. 외삼촌은 기타를 치는 법을 가르쳐 주었고, 야구 규칙도 알려주었으며, 정물 데생 하는 법도 가르쳐 주었습니다. 살면서 알아야 할 기본적인 것에서부터 지혜, 신뢰, 사랑 등 인간 관계에서의 추상적 가치까지 모두 가르쳐 준 사람도 외삼촌이었습니다. 한편 람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는 한없이 엄하게 꾸짖었는데, 그 꾸짖음에도 열정과 애정이 필요한 것임을 람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습니다. 훈계의 끝에는 늘, 닳고 닳은 당부가 달리곤 했습니다.
- 애비 없이 자란 놈이라 저렇다, 라는 소리 만큼은 듣지 말거라.
‘아버지 없는 아이’라는 낙인과 그에 따르는 죄책감은 람이 태어난 순간 제 잘못 아닌 이유로 채워진 족쇄들 가운데 가장 무거운 것이었습니다. 외삼촌의 노력에도 불구, 아버지의 자리는 결코 아버지가 아닌 사람으로 채워질 수 없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람은 <아빠와 크레파스>라는 동요를 들으면 가슴 한 켠이 말할 수 없이 먹먹해지곤 한다는데, ‘아빠’가 ‘크레파스’를 사주었다는 일상을 당연한 듯 무심하게 노래하는 그 동심의 순수한 믿음은 결코 람의 것이 되지는 못했기 때문입니다.
[SESSION 02. 가족]
9살 무렵, 어머니가 재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새 아버지의 집안에서 아이까지 받아들이지는 못할 듯 하여 람은 자신의 존재를 깊이 깊이 묻어야 했고, 어머니와 다시 떨어져 지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람은 중학생이 될 때까지 외숙모의 집에 얹혀 지냈습니다. 새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이에서 이부 동생이 태어나자 어머니께서는 심해 깊이 숨죽여 잠겨 있던 람이를 아주 조금씩 뭍으로 꺼내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람이는 새롭게 꾸려진 가정 속에, 움직임을 거의 의식할 수 없을 정도로, 머뭇거리며 스며들기 시작했습니다.
참으로 다행히, 새아버지는 조용하지만 온화하고 품성이 선한 분이셨습니다. 람은 차츰 새아버지 집과도 왕래를 하게 되었고 새로 생긴 친척 그리고 사촌들과 두루 친하게 지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친척 중 어느 하나가 뱉은 말이 비수가 되어 람과 그들의 연결을 단칼에 베어 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래저래 람은 남의 집 자식으로 새아버지 집에는 결코 융화될 수 없다는 내용인 듯 했습니다.
- 핏줄이 어디 가나. 그쪽 집안 사람들은 그런 모양인가보지. 어찌 됐든 남의 식구잖아.
람은 왜 자신이 결손인지 궁금했습니다. ‘결손’이라며 왜 굳이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결손 가정의 자식이니 의무적으로 흉터 몇 개쯤은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처럼 느꼈습니다. 하지만 람은 상처를 상처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제 사지를 매단 외줄들이 엉망으로 엉켜 버릴 것만 같았습니다. 엇나가는 법 없이 람은 제법 원만한 성인으로 자라났습니다. 람의 어머니는 끝끝내 당신이 이혼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말해주지 않았지만, 벌어지는 어떤 일들은 잠자코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고 람은 일찍이 받아들인 것 같습니다.
친아버지의 부고가 날아든 것은, 최근 어느 날의 일이었습니다.
람에게 ‘친아버지’라는 사람은 어떻게 정의되고 있으며 얼마 만큼의 무게를 지니고 있는지 감히 추측할 수 없습니다. 몇몇 단편적인 이야기만 들었을 뿐인데 얼핏 듣기엔 꽤나 냉랭한 것들이었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등록금도 낼 수 없을 만큼 집안 사정이 어려워졌고, 교직원들의 눈총도 나날이 따가워 졌습니다. 고심한 끝에 친아버지에게 주춤 주춤 전화를 했고 어렵사리 돈 얘기를 꺼냈지만 당신 자신도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며 어물쩍 전화를 끊어버렸다는 일화 따위였지요.
람이 일곱 살 쯤에 겪었던 일입니다. 어느 날 친아버지는 어린 람의 손을 잡고 목욕탕에 데려갔고 짜장면도 사주었다고 해요. 친아버지는, 짜장면을 다 먹은 람을 억지로 차에 태웠습니다. 무서워진 람은 차에 타기 싫어 저항했고, 울고 불고 기를 쓴 끝에 끌려간 곳은 사진관이었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람은 아버지의 무릎에 앉아 사진을 찍었고, 그 사진은 부자가 함께 찍은 유일한 사진으로 남았습니다. 사진 속 람이는 시뻘건 두 눈이 퉁퉁 부은 채 부루퉁한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임종을 앞둔 친아버지는 병상 곁을 지키던 당신의 친구에게 거듭 부탁했다고 합니다. 람을 봐야 한다며, 람을 불러 달라고요. 이 소식은 뒤늦게야 람에게 도착했고, 그때 친아버지는 이미 숨을 거둔 이후였습니다. 기억나지 않는 어느 순간이 부자의 마지막 대면이 될 줄은 람도, 친아버지도 미처 몰랐을 것입니다. 친부의 지갑 속에서 평생, 람은 부루퉁한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람은 친아버지의 가는 길목 만큼은 지켰습니다. 수목장을 거쳐 아버지는 조그마한 나무가 되었습니다. 람은 손수 장례를 치른 것으로 자신의 도리를 다했다며 퉁명스럽게 뱉었습니다만, 람이 가끔씩 그 터를 찾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문득 생각했습니다. 한번쯤은 같이 가야하지 않을까 하고. 무슨 인사를 드리러 ‘찾아뵈’어야 할지는 사실, 잘 모르고 있었지만요.
아버지는 허리께 닿은 조그만 묘목의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풀밭 위에 잠시 손을 얹은 순간, 눈물이, 내가,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주책 맞게 흘렀습니다. 얽히고 설킨 관계 틈바구니에 낀 채 실낱 같은 숨소리 한번 쉽게 뱉지 못했을 어린 람이 떠올랐습니다. 분노도 증오도 애정도 죽은 자에게 있어 이미 그 의미를 잃었고, ‘아버지’는 더이상 ‘아버지’가 아닌, 앞서 가신 모든 조상 중 하나로 남은 채였습니다. 갈 곳 잃은 모든 말과 마음은 모두 이 자리에 묻는 수밖에 없습니다.
람은 제 눈물에 매우 의아해했지만, 저는 람이라는 사람 자체가 쭉 의아했습니다. 세상 어느 자리도 람을 오래 품어주지 않았지만, 람 자신은 제법 곁을 내어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쏟는 애정은 늘 충실하고 진심 어린 것이었습니다. 람은 스스로 따뜻해지는 법을, 어떻게 깨친 것일까요. 당신은 아주 어릴 적부터 이미 스스로의 부모가 되었어야 했기에 필요한 것은 다 알고 있을 거라고, 그러니 괜찮다고, 그냥 그렇다고, 제가, 감히 어떻게 입밖에 낼 수 있겠느냐마는.
가끔 남편에게 묻곤 합니다. 다시 태어나면,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남편은 늘 범고래가 되고 싶다고 합니다. 범고래는 바다 먹이 사슬 최상의 위치에 있어 백상아리조차 그에 대적할 수 없다고 합니다. 육지 동물이나 조류까지 이겨낼 적도로 무적이라고 합니다만 어찌 된 일인지 인간만큼은 절대로 공격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온갖 궂은 적들도 모두 이겨낼 만큼 단단하지만 한편으로 어떤 범주의 것들에 있어서는 한없이 무른, 제 남편은 이미 범고래인 것이 아닐까요. 그것으로 이미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만. 덧붙여 람에게 이 말은 꼭 해주고 싶습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아버지상, 세상에 그런 건 없어.
* ‘물건의 질이 형편 없거나, 기대에 미치지 못하다’라는 뜻의 전라도 방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