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담자: 박민선
[SESSION2. 중용]
사내에서 저는 어느덧 ‘천사팀장’ 이라고 불리고 있었습니다. 싼 값에 도금한 꼴이라고 할까요. 아무리 금싸라기라도 제 눈 위에 내려 앉으면 시야만 흐린다고 하지요. 도금마저 흉하게 벗겨진 모양은 사실 ‘호구팀장’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팀을 둘러싼 교묘한 따돌림과 은근한 무시가 잇달았습니다. 바로 옆에 있는 제 존재를 가뿐히 무시한 채 저의 팀원에게 직접적으로 업무를 지시하는 팀장이 있는가 하면, 업무라도 분배해 줄라 치면 ‘그걸 왜 제가’, ‘왜 저희팀이’하며 팀원 각각이 제발 저리듯 억울함을 터뜨려 내곤 했지요. 어떤 뒷 말들이 오고 갈지 몰라 저는 항상 두려웠습니다. 결국 위, 아래, 앞뒤, 좌우 눈치를 보느라 배터리가 방전되고 말았지요. 소위 ‘번아웃 증후군’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성공의 비결은 중용’이라는 말은 ‘성공한 자가 했던 것들이 곧 중간이더라’하는 식의 결과론적인 말이 아닐까요. ‘중용’의 유의어로 한때 유행하던 ‘알잘딱깔센’ 그러니까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있게’ 라는 줄임 말이 있었는데요, 적당히 중간을 잘 지키는 것은 과연 어느 쯤을 말하는 것인지 저로서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개중에는 동물적인 감각으로 이를 노련하게 캐치 해내는 이도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그 감각을 타고나지 못한 것 같습니다. 100명이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그 수 만큼의 ‘기준’이 존재하기 마련이더군요. 저의 ‘중용’은 다른 사람의 ‘중용’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누군가의 천사가 다른 어떤 이에게는 그저 ‘환장할 인간’이었을지 모르는 일입니다. 말은 양쪽에서 모두 들어보아야 하는 법입니다.
회사 내 우애 깊은 동료를 둔 사람은 복 많은 사람임이 틀림없습니다. 웃음과 사랑이 피어나는 텃밭인 줄 알았더니 사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잔뜩 품고 있는 지뢰밭이었습니다. 저희 본부는, 대리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가 여성 직원입니다. 섬세하게 재단 된 정서적 배려가 필요한 케이스의 숫자가 평균 이상인 편이라고 할까요. 성별이 한쪽으로 치중된 집단에서는 묘한 힘겨루기가 벌어지곤 하니 이상한 일이지요. 여왕벌이 탄생하는가 하면, 그 주위로 부지런히 꿀을 나르며 그녀를 양육하는 무리들도 생겨나게 됩니다. 바쁘게 사무실을 가로지르는 모습은 꼭 서로의 뇌관이라도 건드릴까 종종 걸음 치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모두는, 다정히 낀 팔짱을 뿌리칠 준비라도 하고 있는 듯한, 혹은 반대의 경우가 될까 두려움에 질린 듯한 얼굴을 하고있었습니다. 보드라운 쿠션이라도 안은 듯한 대화 사이 훈훈한 공기 저변에는 한줄기 시린 공기가 불길하게 발목 사이를 가로지르고 있었습니다.
- 사실은 외롭대요, 다들.
저를 비롯해, 모두는 각자의 방식으로 외로워 하고 있었습니다. 팀장이라는 직책을 업고 가는 ‘사람’이 앉은 이 자리 역시 외롭고 무서웠습니다.
공식 발령이 난 뒤 약 2주간 사뭇 겸손한 태도로 원래의 자리를 지켰습니다. 한 구석에 고립된 팀장의 자리가 너무나 멀고 쓸쓸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모든 팀원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그 자리에서 못내 누구 하나를 남긴 채 퇴근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고 있었는데 참 눈치도 없긴 했지요. ‘내 새끼들’ 만큼은 야근 시키지 않겠다는 ‘쿨내 풀풀’ 팀장 놀이에 혼자 도취되어 있던 것입니다. 성장이나 자기 계발과 연관되지 않은 잔업은 주지 않겠노라고 대대적으로 선언했고, 이 선언은 이내 자승자박의 기형적인 밧줄이 되고 말았습니다. 회사 업무 중 절반 가량이 잔업임을, 강산이 변할 만큼의 시간 동안 일해온 제가 대체 어떻게 잊을 수 있었단 말인가요. ‘말씀이 곧 형상 될지니’ 단순 업무처럼 자질구레한 것들이나 털실 뭉치 꼬인 듯 지저분한 것들은 곧 저의 몫이 되었고, 하찮은 부채 한 장을 퍼덕이며 급한 불만 대충 꺼도 벌써 자정이 가까워져 있는 것입니다. 오후 10시 30분이 지나서야 비로소 택시비를 ‘업무비’로 처리할 수 있었기에 애매한 시간에 퇴근할 바엔 30분 더 일 하는 것이 낫다는 계산도 있었습니다. 스스로를 땔감 마냥 쓰던 저는 마침내 한 줌 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팀장이 된 지 불과 2주차에, 전무님께 여쭤보았습니다. 돌아보니, 그 치기 어림에 낯붉어 지는 물음입니다만.
- 제가 과연 팀장 재목이기나 할까요.
<미생>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발은 땅에 굳게 두되, 머리는 하늘에 두어, 천리 밖을 내다 볼 줄 아는 것이 진정한 리더라는 비유가 나오지요. 말하자면 이상향을 추구하되, 당장 딛고 있는 현실의 사정 역시 결코 무시하지 말라는 뜻일 것입니다. 이것은 뭐, 저 같은 초짜가 언감생심 욕심 낼 바는 아니었습니다만.
감투고 지위고 모두 필요 없으니 지금의 소원은 ‘제 할 일만 하는 것’ 입니다. 윗사람의 의중을 헤아려 가며 제 일에 몰두하는 것도 쉽지 않겠지만요. 모든 것을 두루 내다보는 거시적인 시야를 지닌 한편, 미시적으로는 한 사람의 마음까지 보살필 줄 알고, 때때로 나타나는 능청스러운 모습이 밉지 않으며, 동시에 항거 불가한 카리스마까지 갖춘 그런 인물이 되려면 3천년은 족히 걸릴 것 같습니다. 몇 번을 다시 태어나 이 고생을 할 바엔 위로 모시는 팀장님의 부족함을 이해하는 편이 빠를 것 같습니다.
새롭게 출시한 클렌징 제품의 모델 촬영이 있었습니다. 모델 촬영 현장을 처음으로 지휘해 보는 막내 사원 하나가 ‘무섭다’고 하더군요. 단순한 세안제 촬영이라도 기획부터 실제 촬영까지, 준비 기간에 장장 한 달을 소요한다고 해도 빠듯할 지경이지요.
막내 사원이라고는 하지만, 어깨 너머 배우는 눈썰미는 좋았기 때문에 제법 잔뼈가 굵었습니다. 프로젝트 리더로서 일을 진행한다는 것은 초심자로서 매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저였음에도 남의 마음을 읽는 데는 까막눈이더군요. 기껏해야 이론적인 이야기만 늘어 놓을 수 있었을 뿐 종내는 ‘그 느낌적인 느낌 있잖아, 그 느낌을 몰라?’라는 식의 결론이 났을 뿐입니다.
‘차라리 내가 하고 말지’라며 단시간에 해치워 버리자는 유혹이 들었습니다. 퇴근길 마트에 들러 촬영에 필요한 모든 소품을 단 15분 남짓한 시간 동안 재빠르게 골라냈습니다. 베이지 빛 원피스 서너 벌과 휴양지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오가닉 데코, 호텔에나 비치돼 있을 법한 값비싼 타월 등 제가 그리는 ‘느낌’에 꼭 들어 맞는 것들만 골라, 다음날 아침 양손 무겁게 촬영 현장을 방문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분명 ‘참관자의 신분’이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전체 과정을 진두지휘 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원은 책임자로서의 지위를 잃고, 이따금씩 거들다가, 마침내 방관자의 위치로 밀려나고 말았습니다.
관대하며, 공정하고, 각자의 생각과 개성을 존중하는 그런 우두머리가 되겠다는 것은 핏덩이의 허황된 이상일 뿐이었습니다만, ‘나만큼은’ 공정하게 플레이 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었습니다. 점심 장사하는 분식집 주인 마냥 동동 거리는 와중에 언제 사골 육수를 내서 라면을 끓이겠습니까. 그 친구에게도 저에게도 성장하는 시간을 인내하는 여유는 내어 주지 못했습니다. 싫은 소리 한 마디 듣는 것이 두려웠고, 종국에는 모두가 저를 사랑해 주길 바랬습니다. 숭고한 희생이라도 떠맡은 줄 알았지만 결국 스스로조차 돕지 못한 꼴이 되었습니다. 굽어 보는 위치에 있다고 착각한 나머지 내 키가 작은 줄은 미처 몰랐지 뭡니까. 호랑이 가죽을 비집고 나온 여우 털을 모습을 보며, 눈 감은 척 너그러이 속아준 팀원들이야 말로 제 키보다 훌쩍 자라나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