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이라는 동화

구독경제

by 여날


내담자: 임다온

[SESSION 01. 치망순역지]

아, 상담 받으러 와서 명함을 드리다니, 죄송합니다. 영업 팀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의 직업병 쯤으로 너그러이 여겨 주시길 바랍니다. 명함을 챙기지 않았네, 먼저 건네주는 것을 잊었네,라며, 이래저래 상사나 동료로부터 혼쭐난 경험이 좀 많이 있다보니, 누구를 만나든 명함부터 건네는 습관이 굳어지고 말았습니다.


참고 차, 저의 배경부터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외국계 명품 브랜드인 B사의 한국 지사 영업 기획 팀에서 대리 직책을 맡고 있습니다. 패션 업계에서 일하는 것은 물론 화려하고 멋진 일입니다. 실상은 해외 본사에서 정한 규칙과 선을 엄격하게 지켜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요. 극단의 예를 들자면 말이죠. 사무실 집기조차 본사 가이드 라인에 따라 배치해야 합니다. 사진 상으로 봤을 때 영국 사무실과 미국 사무실, 한국 사무실은 아마도 구분하기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컵 하나, 오브제 하나, 노트나 펜까지 전부 본사에서 정해준 것만 쓸 수 있고, 그 이외의 것이 책상 위로 나와 있어서는 안 될 정도이니까요. 크게야 뭐, 본사가 정해준 범위 내에서 그들의 기획과 지시에 따라 실행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로컬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유통이든 홍보이든 현지에 맞게 최적화 하는 일 정도로 한정되어 있습니다. 반제품을 받아 기후와 토양에 적합한 완제품을 만드는 것에 비하면 될까요. 기획부터 실행까지, 모든 과정을 경험해 볼 수 없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영업 부문의 전 과정을 아우를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 목표이니까요. 속된 말로 이 바닥에서 장수하기 위함이랄까요. 기획도 분석도 모두 해보고 싶어요. 좀 더 주체적인 업무 말이지요. 여기서 일한 지 5년 정도 되었는데, 2년 후 과장 직책으로 올라갈 즈음에는 이직을 하려고 계획 중입니다. 이 업계에서 이직이란 흔한 일이기도 하고, 또 이직 없이 연봉을 올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대기업에 입사만 하면, 정년에 퇴직할 때까지 평생 업이 되던 시절이 있었잖아요. 이젠 그것도 옛 말, 이직으로 자신의 몸 값을 올리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사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옮기는 케이스가 더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만큼 고용이 불안정한 시대이지요. 흔해 빠진 말 다시 말해 뭐해요.


옆자리 동료 한 명이 오전 10시께 해고 통보를 받고 그날 오후 바로 자리를 정리하고 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업무 마비라도 될 줄 알았는데 웬걸, 회사는 무탈하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당연히, 조금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지만요. 이 자리를 오래 지켜온 친구인데, 애초에 누가 되든 상관 없는 거였어요. 저라고 뭐가 다를까 싶어 이후로는 매일 외줄을 타는 듯한 심정입니다. 어느 누구도 감히 말을 걸지 못한 채 눈치만 보는 가운데, 무덤덤히 속 모를 표정으로 제 짐을 구깃구깃 챙겨 넣던 동료의 얼굴이 자꾸 눈에 어른거립니다.

[SESSION 02. 구독 경제]

3년전부터 구독해 오던 플랫폼이 있는데요, 직장인을 위한 데일리 매거진 정도로 생각하시면 될 듯 합니다. 효과적인 커리어 관리, 실무스킬향상, 업계 동향 및 최신 트렌드 관련 콘텐츠를 제공해 주지요. 한편, ‘노동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몸 값’을 ‘레벨업’하여 ‘좀 더 많은 재화’를 획득하려면,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결국 ‘구글’이라는 망망대해에 둥둥 표류 중인 저희 개미들에게 실용적이면서도 튼튼한 동아줄을 던져줍니다. 시의적절한 정보를 잘 섞고 버무린 뒤 한 입 크기로 작게 잘라 입에 쏙 넣어 주는 영리한 비서이기도 하지요. 읽는 동안 만큼은 성공이 손에 잡힐 듯한 ‘느낌적인 느낌’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종국에는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말라며 줄행랑 치는 일부 자기 계발서보다는 좀 더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나침반이 되어 줄 때가 많습니다.


이 외에도 Z세대 최신 트렌드라든가, 경제 동향이라든가,하는 매거진 형식의 여러 플랫폼을 구독하면서 세상 모양새를 더듬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개중에는 기존에 무료로 제공하던 콘텐츠를 유료로 전환한 곳도 제법 많습니다. 형체의 유무 여부를 떠나 시간과 에너지가 투입된 모든 것에는 그에 상당 하는 재화가 지속적으로 공급돼야 하며 그때서야 비로소 그 양과 질을 무리 없이 유지해 나갈 수 있는 것이겠지요. ‘엣지가 있되 선 넘지 않는 정도로’ 깔끔하게 큐레이션 해주는 서비스에도 예외 없이 애덤 스미스 선생님의 질서가 적용될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서비스’는 ‘보이지 않는 손’들에 의해 시장 경제의 주요한 맥으로 자리 잡았고, 그 중 하나가 바로 ‘구독 경제’ 서비스가 아닐까 싶습니다. 점심 뭐 먹지,라는 퀘스트를 깨고 나면 다시 짬뽕이냐 짜장이냐,를 놓고 고민하는 우리네 직장인들에게 있어서 정말이지 편리한 서비스가 아닐 수 없습니다.


OTT를 위시한 구독 경제는 마치 새로운 경제 트렌드인 양 부쩍 회자되고 있지만, 사실 ‘선별’ 작업을 거쳐 유무형의 ‘결과물’을 ‘정기적’으로 제공하는 서비스는 이전부터 존재 해왔습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신문, 우유 배달 등이 있었고요, 또 각종 학습지 또한 대유행 했는데 개중에서도 저는 수학 학습지를 끔찍하게 싫어했습니다. 초급 단계에서는 그림이라도 나오던 것이 몇 단계 올라가지도 않아 하얀 건 종이요 검은 건 숫자라며 안면몰수하니, 기껏해야 열살 내외의 저에게 그 모습은 흉악하기 짝이 없었지요. 지도 교사가 일주일에 한번씩 방문해 그간의 학습 내용을 체크해주는 ‘약식 과외’도 진행되었는데, 선생님이 오시기 전날부터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해 당일 하교 길에는 지구 종말을 기도하기에 이르는 정도였습니다. 끙끙 앓던 끝에 벼락치기라도 해낸다면 그나마 나은 경우였지요. 대부분 백지 그대로인 학습지를 붙들고 멋쩍음과, 힐난과, 죄책감 등을 고스란히 견뎌내는 식이었습니다. 가끔 학습지를 학교에 두고 왔다는 둥, 잃어버렸다는 둥 뻔뻔한 거짓말을 해댔는데, 비록 어린아이였을지언정 그 ‘찌질’하고 한심한 모습을 떠올리자면 성인이 된 지금도 민망하기 그지 없습니다. 외상 후 후유증까지 남은 셈이니, 대단한 위력이지요.


사실 수학 학습지는 이후에도 모습만 바꾸어 가며 제 평생을 따라다녔습니다. ‘To-Do-List’에 매일 올라오긴 해도 지워진 적은 거의 없는 ‘오늘은 홈 트레이닝 꼭!’ 따위가 되는 식이었죠. 크고 작은 결심은 도처에 널린 작은 가시처럼 지금도 저를 살살 찔러 대고 있습니다. 고생하시는 관계자 분들께 정말이지 너무나 죄송한 말씀이지만 제 죄책감의 원천 대부분이 자기 계발 매거진 등을 포함한 구독서비스입니다. ‘OTT’ 서비스나 ‘전자책 플랫폼’, ‘직장인 교육 플랫폼’ 등 다수 구독 업체에 성실히 돈을 기부하며 본전 따위는 정중히 사양하고 있으니까요.


사실 제 ‘구독 과잉’은 ‘위기 의식’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정보도 기회도 다 놓칠 것 같고, 결국 뒤쳐지다가 끝내는 도태될 것 같다는 불안감 속을 사는 저에게 ‘구독’은 세상과 맞서는 강력한 ‘무기’인 것만 같았습니다. ‘자기계발콘텐츠’는 저를 비싼 몸으로 만들어 줄 달콤한 ‘연금술’ 마냥 느껴졌고, ‘명상콘텐츠’는 소위 ‘만병의 원인’인 스트레스를 치유해줄 것만 같은 ‘힐링포션’처럼 느껴졌습니다. 실상은 시간을 처참하게 살해하는 죄책감을 견뎌가며 ‘유튜브’ 가십 뉴스에 빠진 채 뒹굴고 있지만요. 그 ‘유튜브’의 프리미엄 서비스 비용은 아깝다며 몇 년 째 광고를 참고 보는 것은 대체 무슨 아이러니인지요.


- 이렇게 태만하다니, 넌 나락행이다. 자, 다음 인간.


꼬박꼬박 돈만 냈지 알고 보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셈이나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곧장 나락으로 직행일 줄 알았던 인생이 의외로 ‘구독’을 하나 마나, 그럭저럭 무탈하게 살아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럴 수가요. 선생님께서는 ‘반드시, 꼭, 어떤 상태이어야만 해’, 혹은 ‘무엇이 되어야만 해’, ‘어떠하지 않으면 큰일 날 거야’라는 생각은 허상이며 위험하기까지 하다고 말씀하셨지요. 물결이 일면 이는 대로 그저 몸을 맡기라고, 세찬 흐름을 거스른다고 애쓸 것 없이 그냥, 따라서 흘러가도 되는 거라고, 담담히 말씀해 주시던 것을 기억합니다. 애초에 ‘정답’이 존재한다고 믿는 저의 전제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이지요.


[SESSION 03. 대치동키즈]


재화를 창출하는 성실한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신념은 곧 제 정체성이기도 합니다. 자라난 환경 속을 부유하는 미미한 낌새와 기미들이 먼지처럼 내려 앉아 퇴적된 것인데, 그 역사도 오래되었습니다.


시작은 네 살 즈음이었습니다.


- 만성 신부전증. 신장 두 개의 기능이 다했습니다. 이식 받지 않는 한, 평생에 걸쳐 투석을 해야 합니다. 예후가 좋다고 말씀드릴 수는 없네요. 장기 기증자를 기다리도록 합시다.


어쩐지 계속 졸음이 오고 피로하다던 아빠는 병원에 남아서 잠을 자고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세브란스 병원을 나오니 노란 은행길이었습니다. 걸음 걸음마다 노란 은행잎이 별똥별처럼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떨어지는 나뭇잎을 잡겠다고 허공 속에서 두 손을 휘적휘적 저었습니다. 우연히 손에 잡히면 기뻐하며 소원을 빌었습니다. 엄마는 넋 놓은 채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누군가 가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가 누군가의 가장이 되었든.


- 이 아이, 아빠가 없어. 부친이 있어야 할 자리가 깨졌어.


4학년 즈음인가 다니던 향교에 엄마가 방문하셨을 때 저는 엄마와 함께 나란히 훈장님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훈장님께서는 역술을 공부하셨기에 그분께 상담을 요청하는 어른들이 제법 많았습니다. 한지를 배배 꼬았다 풀었다, 지루한 시간을 견디던 제게 그 말이 딱히 감명 깊게 울린 것도 아니고 충격을 받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말의 울림은 점점 커졌습니다. 이 아이, 아빠가 없는 아이야. 저는 제가 태어났기 때문에 아빠가 아프게 된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10년 간 미술학원, 피아노 학원, 수학, 영어, 컴퓨터 학원에 성실히 출석하였습니다. 엄마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대치동 전선을 누비던 기억 외 유년기의 다른 기억은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엄마와 저는 동맹을 맺은 듯한 관계가 되었습니다. 십 년 후에는 제 스스로 가장이 되겠다는 약속. 엄마가 학생체육관에서 밤새 줄을 서 정선생 사과탐 강의의 우선 신청권을 받아오면, 저는 기본 밤 11시, 가끔 새벽 2시에 끝나는 정선생 강의에 성실하게 몰두하였습니다. 엄마가 손수 갈아 주신 딸기 주스를 마시면서 엠넷 티비를 보는 것이 유일한 보상이었습니다. 새벽 세시, 네시에 이르기까지 저는 엠넷을 보았습니다. 즐길 수 없는 제 청소년 시절의 공허함을 엠넷으로 대신 채워 넣듯이요.


가장이 되었든 그렇지 못하든, 아빠는 아빠대로 전력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저에게 아빠가 없다면 한 평 남짓한 공간을 차지한 저 투석액은 다 무엇이겠어요. 엄마와 내가 대치동 라이딩을 하는 동안, 아빠는 나름의 방식으로 싸우고 있었습니다. A항공사 지상직 사무실의 한쪽 구석에서 이뤄지는 임 과장의 은밀한 투석은, 우리 가족밖에 모르는 사실이었습니다.


- 너는 니가 벌어 먹고 살아야 한다. 우리가 널 도와줄 수가 없어.


달리 다른 것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해 본 적이 없고, 무엇을 위해 준비해 보겠다는 일탈 없이 저는 회사원이 되었습니다. 명문대를 졸업한 미꾸라지가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선택 중 하나였습니다. 올라갈 필요도 없이 안정 궤도를 그리며 사는 것으로 내 인생은 됐다,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평생 소소한 행복과 재미나 느끼며 살면 더이상 바랄게 없었지만, 그 평탄 대로도 극소수를 위한 것임을 그때는 미처 몰랐습니다. 다음 단계는 내려가지 않기 위한 발악이었습니다.

백 명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는 모습을 떠올립니다. 첫 번째 아해가 무섭다고 합니다. 열 번째 아해도 무섭다고 합니다. 스무 번째 아해가 무섭다고 합니다. 아해는 아해가 무섭다고 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무섭다고 합니다. 모두가 같은 곳으로 뛰고 있습니다. 수십 명의 아해는 넘어지고 뒤얽혀 피투성이가 됩니다. 개중 몇몇은 벌써 저만치 앞질러 나갑니다. 한 명의 아해가 벌써 종을 쳤습니다. 댕댕댕.*

[SESSION 04. 유일함]

‘구독서비스’는 선택해야 하는 수고로움을 공급자에게 일부 위임해 준다는 편리성이 있습니다. 빅데이터를 근거로 행동 패턴과 라이프스타일을 분석하여 ‘TPO (Time, Place, Occassion)’ 에 맞게 알아서 재단한 상품을 수요자에게 제공한다는 이점이 있지요. 반면 스스로가 ‘계량화’ 되어 특정 ‘프레임’에 갇히게 되는 일도 벌어질 것입니다. 첫 스타트를 끊은 작은 도형이 자기 복제를 반복한 끝에 ‘프랙탈’을 이루고 그 ‘프랙탈’이 마침내 ‘프레임’으로 천천히 굳어져 가는 과정을 상상해 보곤 합니다.


개인은 계량화 될 수 없다,라고 믿고 싶습니다. 사람은, 동일한 지점에서 만나고 또 멀어지며, 같은 경험을 공유하기도, 별개의 독특한 경험을 가지기도 합니다. 극소의 확률로 인생 모든 경험이 같을지언정 그걸 해석하고 엮는 방식은 서로 또 다르겠지요. 한 사람은 지난 세월 축적된 수천, 수만 권의 장서들이 우연히 흩어져 있거나 또는 고유 질서에 따라 배치된 하나의 커다란 도서관이 아닐까,라고 생각해 봅니다. 남의 것만 따라하려고 했지 정작 제 것을 들여다 본 일은 없습니다. 무엇이 어떻게 흩어져 있는지 몰라 길을 잃은 지 오래입니다. 흩어진 낱 권들을 들여다 보고 정리하는 일에도 익숙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누군가의 연금술이 저에게도 필요충분조건이 되리라는 보장은 없을 것입니다.


백 명의 아해가 내달리는 대신, 커다란 광장에 한데 모여 춤추는 모습을 떠올립니다. 뛰어남도 열등함도 모른 채 그저 유일함 만을 추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 세상에 존재하는 프리즘 중, 내부 ‘선’과 ‘면’의 구성이 온전하게 일치하는 것이 단 한 쌍도 없다면, 같은 빛 줄기라도 각자가 서로 다른 모습으로 펼쳐내는 모습이 아름다울 것입니다. 프리즘마다 보얗게 쌓인 먼지를 닦아내고 광내어, 각자가 뿜어내는 찬연한 빛의 어우러짐을 볼 수 있다면요.세기의 역작을 읽고 아무 감흥이 일지 않을 수 있고, 한없이 가벼운 SNS 콘텐츠가 영감을 던질 수도 있습니다. 실마리야, 어디서 어떻게 얻든. 문득 궁금해지면 답을 찾아보고, 갈림길에 닿으면 새롭게 질문하고 또 발견하며, 쭉쭉 가지 쳐 나가다 보면, 어디에 닿을 지는 누구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만들어 가는 조각이 곧 제 일부가 되고 전체가 되지 않겠어요. 혹시 아나요, 제 곁에서 구경하는 이도 덩달아 조금쯤 즐거워지는, 작은 세계가 만들어질 수도요. 수 천 수 만명의 사람이 어울려 각자의 춤을 추는, 그런 세계 말입니다.



* 이상, <오감도>,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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