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이라는 동화 (1)

타로카드

by 여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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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담자: 한주령


[SESSION 01. 일기예보]


참, 인생에도 일기예보 같은 것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둘 중에 하나, 또는 여러 개 중 하나를 선택했을 때, 그에 수반될 책임은 얼마나 클 지, 또 후회는 얼마나 하게 될 지, 각각이 가져올 이해득실을 따져봐도 암만, 우열을 나눌 수 없는 상황이 수시로 찾아오곤 합니다. 주사위를 던질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점집으로 향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했지요. 가끔 인생이 엉망으로 꼬이기라도 하면, 복채 비용이며 부적 값도 함께 감당 못할 지경이 됩니다. 제가 이곳에 오게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만.


‘선생님’들의 ‘스토리텔링’을 듣다보면 그제서야 비로소 제 인생의 주인공이 된 듯 합니다. 종국에 가서 영광스러운 승리를 거머쥐는 건 바로 저,라고 이야기 해주니까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이어지는 그럴싸하고 자연스러운 이야기도 흥미로운 한편, 결정을 못해 힘들어 할 때 어느 쪽을 콕 집어 대신 선택해 주니 안심이 됩니다. 그 선택이 가져올 좀 더 밝고 맑은 미래를 듣는 일은 얼마나 달콤한지 모릅니다. ‘선택의 당위성’을 만들고 싶은 마음으로 30%의 복채를 한다면, 또 그 선택으로 일어날 책임을 위임하는 값으로 기꺼이 30%의 복채를 지불하고요, 이성과 논리로 설득되지 않는 괴로움을, 초월적 힘을 빌려 위로 받고 싶은 마음으로 나머지 40% 이상의 복채를 지불합니다. 누구에게도 털어놓기 어려운 서러움을 다 털어내고 싶었고, ‘너는 무조건 다 잘 될거니까, 걱정하지마.’라는 말이 듣고 싶었습니다. 사주나 신 점 등을 보아주시는 ‘선생님’ 들은 저의 ‘답정너’ 심보를 꿰뚫어 보고 주로 달콤한 말들로 다독여 주었습니다. 조심해야 할 점들을 조목조목 짚어주고 미리 화를 피할 수 있는 방법도 일러 주었습니다. 나서는 길에는 모든 것이 다 잘 풀릴 것 같은 밝고 맑은 희망을 품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머지 않아 올 저의 해 뜰 날을 상상하며 ‘아, 개운해!’ 를 외치는 쾌감은 가히 중독적 이었습니다.


제 인생의 갈림길에 섰을 때마다 찾은 곳만 수십 여 군데에 달할 것인데, 역술가와 무당, 타로 전문가 등 전국의 용하다는 곳은 모두 찾아가 보았습니다. 서울에서 대전, 대구까지도 다녀왔으니까요. 주로 찾은 곳은 철학관이었는데, 기본적인 기질과 성향, 주변의 환경과 그로 인해 형성된 현재의 모습을 아주 기가 막히게 잘 맞추더군요. 백이면 백, 줄줄이 읊는 내용은 대동소이하면서도 정확하지 않겠어요. 알고 계시겠지만 왜 ‘바넘효과’라고 있잖아요. 사실 누구에게나 적용 가능한 성격적인 특성들을 모호하게 표현해서, ‘와, 내 얘기잖아! 저 점쟁이 정말 족집게네’,하고 감탄하게 만드는 방법이요. 저도 바보가 아니에요. 슬쩍 지인들의 사주를 넣어 보기도 했는데, 오직 그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특성을 아주 정확하게 짚어냈습니다. 바넘효과도 위약효과도 아니라고 할 수 있을 만큼이요. 그러나 미래에 대한 예측은 모두 달랐는데 지나고 보니 천태만상이었지요.


2017년 마지막 밤 제야의 종소리를 듣는 날 저는 엉엉 울었습니다. 홍대 앞 역술가 한 분께서 2018년 저희 아버지를 잃게 될 것이라고 장담했기 때문이었죠. 그 해에는 하루도 맘 졸이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수시로 아버지께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고 대화 말미에는 늘 불이며 물이며 자동차이며 사람이며 모든 것을 조심하라고 하라며 신신당부했지요. 거의 편집증이라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아버지가 미리 조심하셨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 역술가 분이 엉터리였던 것인지, 몇 년이 더 지난 지금도 아버지는 여전히 건강하시니 어느 쪽이 되었든 정말 다행이지요.


2019년에는 전국의 유명하다는 무당이란 무당은 두루 찾아다녔습니다. 용인의 신당에서는 재직 중인 회사가 곧 외국의 유수 기업에 합병될 것 이라며 이직을 말렸는데, 합병은커녕 경영 사정의 악화로 사모펀드 회사에 매각되고 말았습니다. 인천의 한 도령께서는 사내에서 이성과의 스캔들이 크게 터질 것임을 경고 했으나, 딱히 조심해야 할 만큼 가까이 접근해 오는 이성 조차 없어 딱히 설렐 것도 없는 나날이었습니다. 외국 기업 합병은 커녕 사모펀드사에 매각되었다는 사실을 알리자, 용인의 애기씨는 제 정성 부족을 탓하며 오히려 신당의 초를 사서 기도를 올릴 것을 권유하셨습니다. 인천 도령에게 찾아가 스캔들은 커녕 이성의 그림자도 못 밟았다고 항의 해봤지만, 그는 오히려 망신살 뻗지 않게 미리 조심한 것에 감사하라고 하였습니다.


한편 타로 전문가도 여럿 찾아갔습니다. 십중팔구는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두루뭉실한 풀이를 해주곤 하는데요. 여기까지 이야기 하다 보니 꽤나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하나 생각나네요.


저는 스포츠용품 관련 회사에 다니고 있는데요, 회사 내 같은 팀에 역술가를 스승으로 모시며 정식으로 역학을 공부하고 있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의 자리는 마치 작은 철학관처럼 역학 관련 책들이 수십 권 쌓여 있고요. 심지어 타로 카드며, 펜듈럼, 수맥을 짚어내는 L로드까지 운수를 점쳐내는 도구라면 없는 것이 없지요. 새 직원의 입사가 정해지면 미리 사주를 넣어 각 팀원과의 궁합이 어떠할 것이라고 귀띔해 주기도 하였고요, 또 신년이면 팀원들 운세를 통합해 점친 뒤 당해 팀 전체의 흥망성쇠를 예고하기도 했습니다.


- 과장님, ‘간편구매앱’ 프로젝트가 홀딩됐어요. 이거 영 쎄한데... 다음 달 오픈은 가능할까요?

- 2시 노트북. 회의실. 고고.


고민이 있을 때 의뢰를 하면 ‘회의하는 척’ 각자의 노트북을 들고 슬쩍 회의실로 들어가 커피 한잔의 복채로 타로점을 보기도 하였습니다.


맞고 틀리고의 여부를 떠나, 역학에 제법 조예가 깊다는 점에서 그분의 명성은 꽤나 자자했습니다. 본인 역시 자신의 예측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에 대부분 그 전문성을 인정하는 혹은 ‘의존하고 싶어하는’ 분위기가 되어버렸습니다. 누구의 점괘를 뽑아보니 와이프에게 눌려 살겠다더라, 또 누구의 프로젝트는 성공할 것이라더라, 등등 그분의 ‘예언’은 지루하고 별 볼일 없는 사무실의 일상에서 더없이 흥미진진한 가십거리 역할을 하였습니다. 나중에는 마치 공공연한 사실처럼 직원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곤 하는 게 아니겠어요.


주식 투자 열풍이 불면서 그동안 주식의 ‘주’자도 모르는 사람까지 주식시장에 뛰어들던 시기가 있었지요. 그 즈음이던 2020년에는 미국 대선을 앞두고 있었고, 그분의 작은 ‘철학관’ 주위는 부쩍 붐비기 시작했습니다. 트럼프냐, 바이든이냐, 최후 승자가 누구냐에 따라 미리 투자해 둬야 할 주식 종목도 달라졌기 때문이지요. 그분은 100% ‘트럼프’가 당선될 것이라고 공공연히 장담했습니다. 그리고 그분 스스로도 트럼프 관련 테마주에 거액을 투자했고요.


- 100% 트럼프야. 앞으로 10년 대운이 기가 막혀, 하이패스 달고 고속도로 탄 격이야. 우리 선생님 말씀은 틀린 적이 없어.

- 얼마 투자하셨어요?

- 5천.


‘트럼프 당선설’이 사내에 확산 되었고 직원들 역시 그 분의 자신만만함에 압도되어 너도 나도 트럼프 관련주를 사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개표가 진행되던 기간은 소위 ‘팝콘각’ 이었습니다. 초반에 트럼프 쪽으로 기우나 싶더니 이내 바이든 후보가 바짝 추격해 왔고 두 후보의 득표율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손에 땀을 쥐는 형국이었지요. 며칠이 지나자 바이든의 승리가 거의 확실시 되었고 직원들은 ‘트럼프주’를 팔고 ‘바이든주’를 사들여야 하는 것 아니냐며 부화뇌동 어떨 줄을 몰라 했습니다.


- 반은 손절했다. 혹시 모르잖냐... 그래도 올해 트럼프 기세를 꺾을 수가 없거든. 글자가 그래.


그분은 트럼프의 당선을 여전히 확신하면서도 ‘트럼프주’를 슬슬 처분하기 시작하는 듯 했습니다. 바이든의 승리가 공식화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트럼프가 불복할 것이며 끝까지 그가 승리할 것이라 기대하였는데 정작 본인은 관련주를 모두 매도했다는 걸요.


- 과장님, 얼마나 남았어요? 트럼프주요.

- 나? 벌써 다 팔았지. 누가 되고 말고를 떠나서 이게 타이밍 싸움이라. 그래도 익절했어, 익절.

- 아니, 과장님... 선장이 배를 버리시면 어떻게 합니까, 타이밍을 알려 주셨어야죠...


사실은 저도 트럼프 관련주를 매수하고 매도하는 과정에서 돈 푼 꽤나 잃었지 뭡니까. 거의 천만원 정도를 잃은 셈이니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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