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날 May 18. 2023

Q. 현재 노력하고 있는 일은?

A.  ‘운동-자동뇌’ 회로 만들기


우리 뇌에는 2가지 모드가 있다고 한다. 수동뇌 모드, 그리고 자동뇌 모드.


수동뇌 모드는 의식적이다. 수동 뇌는 계획하고 검토하고 실행하고 저장하는 등 일련의 과정을 거쳐 과업을 처리한다. 직장 내 주요 업무를 처리할 때 주로 수동 뇌를 사용하곤 한다. 사용하려면 품이 많이 들고, 수고스럽다. 반면, 자동뇌는 ‘디폴트 모드’이다. 자동뇌는 굳이 의식하지 않고도 일을 처리한다. 10년 경력의 운전자가 자동차를 운전할 때마다 처음부터 끝까지 조작법을 다시 숙지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자전거를 타거나, 설거지를 할 때도 우리는 프로세스를 일일이 검토하지 않는다. Step 1, 2, 3...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자연스럽고 순탄하다. 즉각적이고, 습관적이다.


여기에서 잠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시카고 대학교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세일러의 저서 ‘넛지 (Nudge)’를 소개하려 한다. 넛지는 '(특히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 ‘주의를 환기시키다’라는 뜻의 영단어이다. 경제학적 의미로는 '부드러운 개입'을 뜻한다. 억지스럽지 않은 방법으로 자동뇌를 자극함으로써, 자연스럽게 행동을 촉발하려는 시도이다.


살아오는 동안 내내 어려웠던 다짐이 무엇이었는 줄 아는가? ‘스스로 운동하기’였다. 가끔씩 살을 빼야 하는 경우가 생기긴 했다. 그때도 운동으로 힘들게 살 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내 다이어트는 무조건 ‘굶식’이었다. 러닝머신 위를 멍하니 뛰는 무료한 운동, 웨이트처럼 실신할 듯 숨넘어가는 운동은 특히 질색이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몸은 자꾸 운동을 권했다. 노화의 징조 중 하나는 체중 증가이다. 나는  심한 케이스라서 불과 1년 6개월 만에 체중이 20kg이나 불어났다. 수년 전 무작정 굶기로 다이어트하여 뺀 살이 요요가 되어 돌아온 것이다. 몸을 움직이는 것이 힘들어졌다. 한번 일어날라치면 ‘끙차’ 소리가 나왔다. 상황이 이러니 일상을 돌볼 여력도 나지 않았다. 나는 점점 더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이벤트 하나 없던 비루한 나의 운동 역사에도 넛지가 찾아왔다. 어느 날은 무심히 유튜브 피드를 내리던 중이었다. 솔깃한 제목이 눈에 띄어 흠칫 손가락을 멈추었다. 구독 중인 ‘키키 TV, 전지적 예능시점’이라는 채널에 새로운 영상이 올라왔다. <누가 안된대? 됐잖아. 하루 2분 황금복부루틴!>. 영상의 길이는 단 13분이었다.


‘노느니 개 팬다’라고 (개를 왜 패는지 모르겠지만) 마침 여유도 있겠다 따라 해 보았더니 짧고 쉬웠다. 힘이 들지도 땀이 나지도 않았다. 이걸 매일 하면 살이 빠진다고? 한번 속아줘? 아니, 속고 싶었다. 소위 ‘운동’의 작고 작은 미늘은 그렇게 내 옆구리를 쓱- 꿰차는 데 성공했다.


‘운동’을 수동뇌에서 자동뇌의 영역으로 옮기기가 이 채널의 미션이었다 (아마도). 책 넛지에서 읽은 것 중 많은 부분들을 매칭시킬 수 있었다.


1. 쉽게 만들라.

‘운. 동.’이라는 두 글자는 항상 거대해 보였다. ‘힘들고, 어렵고, 시간이 많이 걸리고, 비싸고, 귀찮기’ 때문에 비장한 각오 한 트럭쯤은 싣고 출발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키키 챌린지만큼은 달랐다. 운동에 옛다, 하며 하루 중 떡고물만큼의 시간만 내어 달란다. 한 세트에 30초인 복근 운동을 3세트 하면, 약 2분 정도의 시간이었다. 나머지 운동들은 그저 보너스였다. 남는 장사 아닌가?


2. 문간에 발들이기

새벽 5시면 키키의 라이브 영상이 시작된다. 이 새벽의 약속을 어떻게 매번 지켜내야 할지 막막했다. 동기부여해 줄 모든 수단들을 동원하는 수밖에 없었다.


1) 낮은 진입장벽: 불과 침실과 거실 사이의 거리이다. 약 2~3미터의 거리를 어기적대며 걸어 나오느니 차라리 굴러 나와도 될 일이다. 스마트폰과 연결된 커다란 티브이를 켜면, 라이브 준비 중이라는 화면이 뜬다. 얼마나 좋은가! 새벽부터 대형 화면으로 보는 유튜브 라방이라니! 맛있는 미끼이다.


2) 중. 꺾. 마를 지켜주는 나의 ‘아미’들: 다시 침대로 되돌아가고픈 욕구를 꺾어주는 ‘아미’는 강한 놈들이어야 한다.

첫 번째 아미는 ‘방탄커피’이다. 새벽에는 너무 배가 고픈 나머지 방탄 커피를 마시고 싶어서라도 침대에서 일어난다. 방탄커피, 이름부터 후덜덜이다. 총알도 막아낼 만큼 강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고 하여 방탄커피(Bulletproof Coffee)라는 명칭을 얻었다고 한다. 레시피는 세상 간단하다. 버터 두 큰 술, 코코넛오일 두 큰 술, 카누 2 봉지 (보다 정확한 레시피는 구글 검색을 요한다).

두 번째 아미는 괄사이다. 울퉁불퉁한 괄사로 몸의 움푹 파인 곳을 슥슥 밀어주면 덕지덕지 붙은 피로가 뚝뚝 떨어져 나가는 듯하다.

세 번째 아미는 ‘향기’이다. 아로마 오일을 좋아해서 라벤더, 유칼립투스, 페퍼민트 등 예닐곱 개의 에센스를 가지고 있는데, 먼지처럼 남은 잠을 알싸하게 깨우는 페퍼민트를 좋아한다. 다소 과하다 싶은 정도로 듬뿍 귀 뒤에 바른다. 이것은 모두 스승 키키 님의 팁이다.


미라클 모닝을 함께 시작하는 나의 아미들

3) 긍정 에너지: 라이브 방송이 시작될 즈음이면 아주 무거운 잠은 휘발된 상태이다. 이 상태에서 키키 님과 함께 스트레칭을 한다. 따라갈 누군가가 있기에, 그 누군가의 에너지가 긍정으로 밝게 빛나기에 내 몸과 마음도 밝아진다.


4) 시동은 디폴트, 달리는 건 자유: 라이브는 오직 30분. 길지 않아 부담이 없다. 이쯤 되면 몸이 적당히 풀려 더 움직이고 싶어 진다. 마침 산책하기 좋은 시간이 된다. 나는 딱 3 천보만 걷고 오기로 한다. 그 이상도 이하도 걷지 말자고. 그러나 시동이 한번 걸리면 속력을 내는 자동차와 같이, 들어올 즈음에는 이미 8 천보 이상을 걸었다.


3. 자율주행에 문제가 생길 때


자동 행동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피로, 감기몸살, 귀찮음, 불의의 사건 등 여러 내적 외적 환경으로 인해 자동 사고 과정에 문제가 발생하면, 자동 행동이 기존처럼 자연스럽게 일어나지 않기도 한다 (심한 경우 오랫동안 꺾이거나 좌절되기도 한다). 나 같은 경우는 이틀 연달아 늦잠을 자는 바람에 운동 루틴이 끊긴 적이 있다. 음식의 유혹을 참지 못해 식단 루틴을 망친 적도 있다. ‘자동행동’을 재가동하는데 가장 방해될 것으로 여겨지는 요소를 재빨리 캐치해야 한다. 그리고 그 싹을 잘라버려야 한다. 100년의 의지도 무참히 꺾어버릴 나의 급소는 죄책감과 패배감, 완벽주의이다. 작은 실패라도 할라치면, 전체를 모두 망쳐버렸다고 생각하는 고약한 습관이다. 변수를 예상하지 않은 계획은 올바로 된 계획이 아니다. 망치고, 다시 시작하는 것도 과정에 포함된다. 그렇다. 다시 ‘시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계산된 과정’ 일뿐이다. 그래야 ‘지속가능한’ 운동과 식단이 된다. 추가로, 미리 만들어 놓은 구호를 외친다. 중. 꺾. 마! 패배해도 괜찮아,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야 (사실 필요한 것은 이게 전부가 아닐까?).


4. 인센티브 또는 디스인센티브

키키 챌린지의 목표는 ‘올여름 크롭티 입기’이다. 고심에 고심을 한 끝에 40만 원어치의 크롭티를 먼저 질러버렸다. 나는 올 7월(늦어도 8월)에 이 크롭티를 꼭 입을 것이다. 만약 입지 못한다면 저 4벌의 발랄한 크롭티는 옷장에서 곰팡이와 함께 썩어갈 것이다.


운동을 하다 보면, 이게 정말 나인가? 하는 놀라움이 들 때가 있다. 나는 지레 운동 안 하는 사람이라는 자동사고를 만들어 버렸고, 수동사고로 이를 재설계하는 데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운동하는 나’라는 자동사고로 만들기 위해 또 한 번 애를 써야 했다. 이제 나는 운동하는데 그리 힘이 들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시도 때도 없이 운동이 하고 싶어 근질근질한 지경이다. 왜일까 생각해 보니 제법 인센티브가 컸다 (크롭티는 차치하고서라도 말이다).


오.운.완! 가장 좋아하는 인증 시간

나는 운동하는 사람, 이라는 의식의 전환은 결코 작지 않은 변화였다. 몸의 중심, 즉 코어에 근육이 들어차고 있다는 느낌은 중요하다. 몸뿐만 아니라 마음의 중심 역시 단단한 사람이 된 듯했다. 쉽게 흔들리거나 꺾일 거라는 ‘자기 불신’이 괄목할 만큼 줄었다.


둘째, 운동에는 가시적인 결과가 있다. 일을 할 때도 가시적이고 구체적인 결과가 있는 프로젝트를 선호하는 편이다. 운동은 그 효과를 바로바로 느낄 수 있으니, 이만한 프로젝트도 없다. 하루 운동을 마치고 거울을 보면, ‘자기 효능감’도 높아진 듯하다.


셋째, 운동이야말로 ‘지금, 여기, 숨’이라는 명상 그 자체이다. 지나간 과거에 사로잡혀 우울해하거나,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며 불안해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운동을 권하고 싶다. 플랭크나 스쾃, 크런치를 하는 그 순간은 분명 힘들지만, 온전히 지금의 자세, 내 근육의 움직임, 나의 들숨 날숨에 집중하게 된다는 점에서, 마치 현재의 ‘바른 몸가짐’이 지금 내가 해결해야 할 유일한 것이자 지상 과제라는 태도를 배울 수 있다.


운동 한번 믿기 참 힘들다. 주변 지인들이 아무리 권해도, 결국 스스로 깨닫지 않으면, 절박하지 않으면, 진입장벽이 너무 높으면, 한번 시작하기가 번거로우면 중장기 프로젝트로 발전시킬 수 없다. 내가 추구하는 것은 지속 가능한 운동이다. 빼고 더하고, 수정하고 개선하고, 한편으로는 나이 들어 연약해져 가는 몸에 따라 속도를 늦추고 할 테지만, 평생을 가져갈 수 있는 프로젝트가 되었으면 한다. 패배해도 괜찮다. 한두 번, 아니 열 번을 실패하면 어떠랴. 정말, 정말,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다. 그래서 운동은 중. 꺾. 마, 다시 꺾이지 않을 나의 과업이다. 꼭 운동이 아니더라도, 살면서 그런 것 하나쯤은 꼭 필요하지 않던가.

작가의 이전글 Q. 내가 버려야 할 것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