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는 실험으로서, 이미 시도해 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서서 자신의 이마에 알파벳 대문자 E를 쓴다. 결과 유형은 아래 2가지로 나누어진다.
1) 자기가 보는 것과 동일하게 E를 쓰는 사람
2) 다른 사람이 볼 때 정상적인 E자로 보이게 좌우 반전된 E자로 쓰는 사람
실험의 목적은 사람과 마주한 상황에서 상대와 나의 관계를 의식하는 정도인 ‘자기의식 (self-consciousness)’ 알아보기 위함이라고 한다. 아래는 ‘자기의식’에 대한 설명이다.
1) 정방향의 E를 쓴 사람은 ‘사적 자기의식 (private self-consciousness)’이 높은 사람이라고 하며,
2) 좌우 반전된 E를 쓰는 사람은 ‘공적 자기의식 (public self-consciousness)’이 높은 사람이라고 한다.
한편, 두 유형은 아래와 같이 서로 다른 특징을 가진다.
1) 사적 자기의식: 타인의 시선보다는 자신의 생각, 가치관, 태도, 동기 등 내면의 자신에게 좀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인다.
2) 공적 자기의식: 자신의 용모나 행동에 주의를 기울이는 성향이 강하고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반응에 주의를 기울이는 편이다. 즉, 항상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실험의 정확도가 높은지는 잘 모르겠다 (출처가 불분명하고, 구전으로 알려진 것이기 때문에 ‘카더라’ 일 수도 있겠다). 다만 ‘자기의식’이 둘로 나누어진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나는 좌우 반전된 E자를 쓴다. 실제로 공적 자기의식이 높기도 하다. 공적 자기의식은 ‘그놈의 눈치’라는 고질병으로 발현된다. ‘눈치 본다’의 영어 표현 중 하나로서 ‘walk on eggshells’가 있다. 계란 껍데기 위를 걷는다니 상상만 해도 몸과 마음이 쭈그러드는 듯하다. 내가 꼭 그런 상태이다.
지나치게 눈치를 보는 사람들의 자의식은 과잉된 상태이다. ‘자의식 과잉’은 ‘자아도취’나 ‘나르시시즘’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만약 누군가가 나를 지켜본다면 그들은 나를 뭐라고 생각하게 될까’라며 자신에 대한 타인의 생각과 느낌을 남들보다 더 자주, 더 심각하게 염려하는 것이다. 잘 보이고 싶기에 유독 자기를 비난한다는 건 대체 무슨 아이러니일까.
자기 비난의 주된 원인 중 하나는 완벽주의라고 한다. 자신에 대한 기준을 높게 설정하고, 도달하지 못할 때 ‘실패’라고 판단해 버리는 것이다. 원하는 기준에 수시로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불구, 그때마다 자신을 가혹하게 비난하고 처벌한다. 실수나 실패, 예측할 수 없는 고통은 너무나 극심하다. 그러므로 더욱 완벽해지려고 애쓰는 악순환의 고리가 탄생한다는 것이다. 그 '완벽'이란 타인의 기준에 맞춘 것이다.
한편, 자기 비난은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에서 비롯된다. 자신이 기여한 바가 적은 상황에서도 자신에게 탓을 돌린다. 이것도 내 탓, 저것도 내 탓, 결국에 ‘모든 것이 내 탓’으로 귀결된다. 이것이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이다. ‘모든 게 나에게 달려있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벌어진 일에 대한 ‘자기 기여도’를 지나치게 과장하여 인식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타인들과 기타 요소들이 서로 영향을 끼치고 있는데도 말이다.
내 자의식도 유별나게 과잉된 상태이다. 일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이것도 저것도 나 때문인 것만 같다. 혼자라고 마음 편한 것도 아니다. (누구나 그렇듯 당연히) ‘바보짓’을 수시로 일삼지만, 건이면 건마다 호되게 스스로를 책망한다.
여느 날은 일방적으로 당하는 나 자신이 불쌍해졌다. ‘여날’을 객관화하여, 완전한 타인으로 인식해 보았다. 그것도 주눅 든 7살의 아이로서. 100% 포용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위협은 덜했다. 1인칭의 나와 2, 3인칭의 내가 멋쩍게 눈 맞추는 순간이었다. 아주 만족스러운 정도는 아니어서, 좀 더 좋은 방법은 없을지 연구하는 중이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선생님이 이런 질문을 해왔다.
“여날 씨도, 나도, 언제 어디서든 갑자기 죽을 수 있어요. 여날 씨가 내일 당장 죽더라도 이상하지 않아요. 만약 그렇게 된다면 여날 씨는 어떤 오늘을 살고 싶은가요?”
그렇다면 꼬리처럼 붙어 있는 이 지긋지긋한 눈치부터 버리고 싶다. 남이야 뭐라든 내 멋대로의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 자신을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나도 제법인 면이 있다. 프랭크 시나트라의 <My Way>의 가사처럼 오늘을 살고 싶다고 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