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현실을 서사한 영화, 무방비 도시(스포 있음)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영화 무방비도시 Roma città aperta

by 연하 Yeonha

들어가며

무방비 도시(Roma città aperta)는 나치 점령 치하의 이탈리아 로마에서 펼쳐지는 소시민들의 저항과 억압자인 나치와 그의 부역자들의 서사를 현실적으로 그려낸 영화이다. 제목의 aperta라는 단어는 ‘열린' 이라는 뜻인데, 말 그대로 방어 상태를 갖추지 못하고 사실상 외국에게 항복한 상태, 함락된 상태를 의미한다.

1943년 이탈리아는 무솔리니의 실각과 연달아 항복했고 나치는 이탈리아를 침공하여 로마를 포함한 주요 도시들을 장악했다. 이 시기 이탈리아는 독일 나치에 맞서 싸우는 이탈리아 레지스탕스가 등장했으며 연합군이 로마를 해방하기까지 로마 시민들은 독일군의 억압과 통제에 시달려야했다. 이 영화는 나치 점령 하의 로마에 살고 있는 소시민과 레지스탕스에 대한 영화이며 ‘현실'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를 구성하는 등장인물의 구도는 이탈리아인을 억압하는 나치 부대와 저항하려 하지만 결국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는 소시민(레지스탕스) 두 가지로 이뤄진다.


줄거리

레지스탕스 그룹의 리더이자 공산주의자인 루이지 페라리는 자신을 체포하러 온 나치 군인들을 피해 동료인 프란체스코의 집에 숨어든다. 하지만 프란체스코는 부재중이었고 때마침 프란체스코의 연인인 피나가 루이지를 환대하게 된다. 그녀는 루이지(만프레디)를 돕기 위해 신부인 돈 피에트로에게 도움을 청한다. 돈 피에트로는 레지스탕스를 비밀리에 돕고 있는 신부였고, 도망자 신세인 루이지를 돕기 위해 레지스탕스에게 자금을 전달하는 임무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한편 피나는 어린 남자아이(마르셀로)를 기르고 있는 과부이면서 그녀의 연인인 프란체스코와 곧 결혼을 앞두고 있는 상태였다. 당시로서는 과부이면서 임신한 상태의 여성이 성당에서 결혼한다는 것이 사회 규범에서 벗어난 일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죄책감과 고민을 갖고 있었지만 신부인 돈 피에트로는 그런 그녀를 위로해준다. 피나의 여동생인 라우라의 친구 마리나는 루이지를 사랑했지만 루이지는 레지스탕스로서의 임무를 그녀보다 우선에 둘 수밖에 없었다. 마리나는 나치 장교의 애인인 잉그리드의 계략으로 마약에 중독되었고 돈 있는 남자들에게 자신의 모든 사치와 생활을 의지하며 살아간다. 결혼식 당일, 나치 군인들이 피나와 프란체스코가 사는 아파트를 급습하였고 피나는 그런 프란체스코를 보호하고자 나치 경찰에 저항하다가 총을 맞아 생을 마감한다. 그들은 체포된 이후에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하였으나 마리나는 루이지에 대한 애증의 감정으로 루이지를 배신하고 밀고한다. 결국 돈 피에트로 신부와 루이지는 비밀 경찰에게 납치 체포당하게 되고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



네오 리얼리즘

'무방비 도시’는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운동을 전 세계에 알린 작품이다. 네오 리얼리즘은 전쟁 이후의 사회적 혼란과 빈곤, 정치적 억압을 배경으로 하여 현실적이고 날 것의 모습을 담는 데 중점을 두었다. 많은 장면이 거리와 실제 로케이션에서 촬영되었는데, 전쟁 종전 이전인 1944년에 촬영되어 당시의 우울하고 황폐한 거리 모습을 담아내었다.

영화는 극적인 요소보다는 사실적인 묘사에 집중했으며, 비전문 배우나 실제 시민들을 기용해 실제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이러한 다큐멘터리적 스타일은 기존의 헐리우드 중심의 영화 문법과는 크게 다른 방식이었으며, 관객들에게 전쟁의 참상과 인간의 고통을 직접 체험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네오 리얼리즘의 등장과 발전은 예산 부족과 전쟁으로 인한 물자 부족으로 인한 탓도 있다. 하지만 결국 이런 방식은 결과적으로 영화의 사실성과 현실감을 극대화 하는데 기여했다. 마치 실제와 같은 현실의 고통과 사실적 메시지를 전달하며 네오 리얼리즘은 당시 오락으로 소비되던 영화의 주류에서 벗어난 경향을 형성하며 세계 영화계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무방비 도시'는 다큐멘터리와 영화 그 중간쯤에 있는 영화이다. 2차 세계대전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대해 큰 관심이 있는 나는 관련한 영화와 서적, 다큐멘터리를 많이 접해보았다.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는 주로 사랑 이야기나 전쟁 영웅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데 이렇게 소시민이 등장하여 절대 권력에 저항하지만 현실적이고 무력한 죽음을 맞이하는 영화는 처음이었다. 굳이 이 영화와 결이 비슷한 영화로는 ‘쉰들러 리스트'가 있는데 여기서도 쉰들러라는 실제 인물이지만 영화에서는 영웅으로 묘사되는 인물이 유대인들을 구출해낸다는 일종의 희망적인 메시지가 있는 반면, ‘무방비 도시'에서 관객은 희망적인 메시지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나마 게스타포에 잡히지 않은 프란체스코가 그 다음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나타나지도 않는다. (마지막에 신부가 처형되고 나서 프란체스코와 마르셀로가 만나서 포옹하는 장면을 상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결국 작은 희망이라도 기대하는 관객들에게 프란체스코와 마르셀로의 재회 장면을 보여주지도 않으며 끝이 나는데, 이후에 프란체스코가 계속 도망을 이어갈지, 마르셀로가 고아로 자라나게 될 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영화는 권선징악을 보여주지 않으며 오히려 악이 승리하는 양상을 보여주는데, 영화의 차가우리만치 사실적인 시선은 그 어떤 것에 대한 희망이나 징벌도 내비치지 않는다. 라우라는 언니의 결혼식에 결국 참여하지 않고 언니가 죽음을 맞이한 뒤에도 이를 알지 못하며, 나치 장교의 연인인 잉그리드는 마리나를 조종하고 루이지를 체포하는 것에 성공해 연인의 신임을 얻는다. 이는 영화가 관객이 보고싶어하는 것을 보여주기 보단 사실, 즉 리얼리즘에 기초하였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권선징악이란 전개는 필연적이지 않으며 죽음과 배반은 때때로 예기치않게 찾아온다. 비록 나치는 패배하였지만 나치 치하 이탈리아 사람들의 비극적인 삶과 굶주림, 저항에 대한 억압은 실제하였다. 종전 직후 이 영화가 보여준 사실감과 아픔은 많은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제한된 촬영 장비와 자원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다양한 촬영 기법을 시도했는데, 첫째는 영화 말미에 신부 돈 피에트로가 처형당하는 장면이다. 카메라는 그가 총살대 앞에 서 있는 순간부터 천천히 그가 쓰러지는 장면을 멀리서 지켜보는 방식으로 담았는데. 이 때 롱테이크를 사용하여 관객이 거리감을 느끼도록 하며, 처형의 끔찍함을 간접적으로 전달하였다. 편집은 느린 호흡으로 배반 - 고문 - 레지스탕스의 죽음 - 돈 피에트로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비극적 서사를 마무리 지으며 실제 시간 흐름에 가까운 전개로 사실성을 극대화한다.

둘째는 피나가 독일군에게 체포되어 끌려가는 프란체스코를 쫓아가며 거리를 달리다가 총에 맞아 쓰러지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핸드헬드 카메라로 촬영되어 상황의 긴박감과 인물의 절망을 강렬히 전달한다. 피나가 총에 맞아 쓰러지는 장면은 one-shot 기법으로 하나의 연속된 숏으로 처리된다. 이 장면은 그녀의 죽음이 극적으로 표현되지 않고 마치 현실 세계의 한 모습처럼 흐름처럼 목격된다. 전쟁 속에서 죽음이란 허망하고 갑작스러우며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것임을 관객은 느끼게 된다.

셋째는 루이지가 잡혀들어간 고문실에서의 조명과 미장센이다. 게스타포의 고문실은 공포스러운 분위기와 암울함이 강조되는 극적인 명암이 주를 이룬다. 주로 어둠 속에서 심문이 이루어지고, 인물들의 얼굴에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진다. 이는 필름 누아르 조명 기법과 유사하며 상황의 암울함과 공포감을 조성하는데 기여한다. 고문을 당하는 모습이 교차 편집되어 한 개인이 아닌 마치 사회가 절대 권력에 의해 억압되고 고통받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며 고문 도구들의 배치와 이후 고문 도구가 쓰여지는 모습을 보여주며 레지스탕스의 아픔과 나치즘의 공포를 관객이 생생하게 느끼게끔 한다.

넷째는 마지막 장년에서 아이들이 아이들이 로마의 거리를 배회하는 모습은 카메라가 멀리서 포착한 롱숏이다. 아이들은 처형 장면을 목격하고 체념하듯 뒤를 돌아서곤 다같이 발을 맞추어 어디론가 걸어간다. 이 장면에서는 딥 포커스(deep focus)를 사용하여 아이들이 배경의 도시와 함께 한 화면에 담기는데, 전쟁의 아픔을 담고 있는 도시와 아이들의 발걸음이 한 화면에 놓인다. 레지스탕스와 신부의 순교라는 개인의 이야기는 아이들의 발걸음을 통해 개인의 이야기가 이탈리아 사회 전체와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이 마지막 시퀀스는 비교적 느린 편집 리듬을 유지하며 아이들이 걸어가는 모습을 천천히 따라가는데, 아이들의 걸음이 아픈 현실을 딛고 나아가는 이탈리아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암시하며 관객이 영화가 제시하는 현실을 차분히 받아들이게 한다.



글을 마치며

영화를 보면서 함께 생각난 영화가 10여년 전 한국에서 개봉하였던 제주 4.3 사건을 다룬 영화 ‘지슬'이다. 두 작품 모두 실제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제작되었고 다큐멘터리와 유사할 정도로 리얼리즘 성격을 지닌다. 두 영화는 모두 4.3 사건과 이탈리아의 함락이라는 배경을 토대로 전쟁의 잔인함 속에 무고한 시민들이 겪었어야 했던 고통과 아픔을 다루고 있다. 두 작품의 강한 현실주의적 묘사는 극적인 화면 전개나 인물의 클로즈업 표정 연기 없이도 실제 인물들이 겪었어야 했던 아픔을 날카롭게 전달하는데 성공했고, 아직까지 내 인상에 강하게 남아있다. 이러한 리얼리즘 영화의 공통점은 영화를 보면서 나로 하여금 ‘이런 상황이 다시 재현된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는 것이다. 헐리우드 영화에서 대개 주인공은 영웅적인 면모나 뛰어난 재능을 타고난 사람이기 마련이다. 영화 자체에는 몰입하게 되지만 내가 그 사람이 된다거나 나한테 그런 상황이 닥칠 거라는 상상은 잘 안해 보게 되었던 것 같다. 반면 리얼리즘 영화의 등장인물은 소시민이거나 주변에 있을직법한 인물이다. 이러한 질문을 하면서 마리나의 결정에, 피나의 결정에, 루이지의 결정에 모두 다 다른 인물이지만 공감과 이해를 던질 수 있었다. 누구는 대의를 위해, 누구는 사랑을 위해, 누군가는 가난 없는 삶을 살기 위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같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하마스와 이스라엘간의 전쟁이 전 세계를 위협에 빠뜨리고 있는 시점에 이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더욱 각별하다. 전쟁과 폭력은 어느날 갑자기 우리에게 찾아오고 그 아픔도 아마도 무자비하고 갑작스러울 것이다. 영화의 무방비 도시는 실제 정치적 상황이었던 로마의 무방비 상태와 더불어 사랑하는 이와 가족을 지킬 수 없었던 개개인의 무방비함을 상징한다. 영화의 메시지를 통해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안전에 대해 감사하고, 이를 위한 참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되새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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