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웃음 뒤에 남은 작은 소리

봄의 집에 울음이 번질 때

by 연빈

그렇게 혼자 고통 속에서 연이를 낳고 나니 얼굴에 실핏줄이 터져 있었다.
엄마는 뒤늦게 병원에 도착해 내 얼굴을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리셨다.
“이렇게 혼자 고생을 했어야 했나…”
의사 선생님은 일주일이면 괜찮아질 거라 했지만 엄마는 연이보다 내 걱정이 더 큰 눈빛이었다.
그게 친정엄마였다.
그런데도 나는 어쩐지 그 따뜻함이 조금은 서운했다.
아마 이제 나도 엄마가 되었기 때문이겠지.


3일 동안의 병원 생활이 끝나고, 나는 친정으로 몸조리를 갔다.
그곳에서 진짜 ‘정성’이라는 단어가 시작되었다.
아빠는 겉으론 무뚝뚝했지만 외손녀를 품에 안을 때마다 입꼬리가 올라갔다.
오빠네는 아들만 둘이라, 딸이 처음인 외손녀가 그렇게 반가우셨나 보다.

그 시절 나는 모유가 잘 나오지 않아 분유와 함께 먹였다.
엄마는 젖병을 매일 깨끗이 삶고, 밤마다 내 대신 아기를 안아 재워주셨다.
하루는 젖병을 삶다가 필요한 게 있다며 가게에 잠깐 다녀오신다고 하셨다.
“불은 조금 있다가 끄면 돼.”
하지만 나는 연이를 재우다 그만 같이 잠이 들어버렸다.

얼마 후 밖이 소란스러워 눈을 떴을 때, 주방이 연기로 자욱했다.
젖병을 삶던 물이 다 졸아버려 젖병이 타고 있었다.
다행히 불길은 스스로 꺼져 있었지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정말 하늘이 도운 순간이었다.

엄마가 장을 보고 돌아오시더니 주방을 보자마자 놀라 손을 덜덜 떨었다.
“아이고, 이럴 수가…”
엄마의 첫마디는 나무람이 아니라 안심이었다.

“괜찮아, 다 괜찮아. 아기도, 너도.”
내가 미안해할까봐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를 꼭 안아주셨다.
그 품 안에서 나는 또 울었다.

그게 친정엄마였다.
나보다 나를 더 걱정하는 사람,
불보다 마음이 먼저 타오르는 사람.


웅이는 나 먹이겠다고 붕어를 한약방에 가져가 달여서 보내왔다.
아빠는 그걸 또 받아 며칠 동안 직접 챙겨주셨다.
하지만 나는 냄새 때문에 결국 못 삼켰다.
그렇게 웃으면서도 미안했던 날들.


몸조리가 끝나갈 무렵,
시아버지의 환갑이 다가왔다.
붓기도 채 가시지 않았지만, 결국 우리가 있는 인천에서 환갑잔치를 하기로 했다.
나는 몸이 무거웠지만 환갑잔치할 장소와 손님을 맞을 준비를 했다.
드디어 환갑날, 그날의 주인공은 아버님이었지만, 집 안의 진짜 인기인은 연이였다.

태어난 지 한 달도 안 된 조그만 아이를 친척들이 돌아가며 품에 안았다.
시어머니는 딸이 없으셔서 그런지 연이를 한시도 놓지 않으셨다.
“태교를 잘했네. 예쁜 아기 사진 붙여놓은 보람이 있네.”
주방 벽에 붙어 있던 그 사진들을 바라보며 어머니는 웃으셨다.
“우리 웅이 닮았다. 이목구비가 뚜렷하잖아.”
그 말을 듣고 나도 웃었다.


그때 문득 깨달았다.
친정엄마는 나만 바라보고,
시어머니는 연이만 바라본다는 걸.
한쪽은 여전히 딸의 몸이 추울까 걱정하고,
한쪽은 손녀의 숨결이 고울까 살피는 마음.
두 사람의 시선이 닮았으면서도 달랐다.
그게 어쩌면 친정과 시댁의 차이였을지도 모른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 예쁘다더니,
나 역시 그랬다.
세상의 어떤 아기보다 예쁜, 내 딸 연이.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 날이었다.

환갑잔치가 끝나고 시댁 식구들과 함께 아침을 먹던 중, 갑자기 초인종이 울렸다.
낡은 상가 건물 2층에 있던 신혼집에서 연이 임신 때 빌라로 이사한 지 얼마 안 된 시기였다.
문을 열자 1층 아저씨가 서 있었다.

“아침부터 왜 이렇게 쿵쿵거리세요? 잠 좀 잡시다!”

시댁 식구들이 모여 있다 보니 소리가 커졌나 보다 싶어 죄송하다고 말씀드렸지만
아저씨는 좀처럼 화를 누그러뜨리지 않았다.
결국 어른들이 나서서 달래고 나서야 상황이 마무리되었다.


그날 이후,
우리 세가족의 첫 보금자리에는 작은 울음소리와 함께
층간소음의 긴장이 함께 머물기 시작했다.


봄은 그렇게,

기쁨과 현실을 함께 품고 내게 찾아왔다.

세 엄마의 마음이 겹쳐지는 계절,

그 속에서 나는 진짜 ‘엄마’가 되어가고 있었다.


PS. 연빈의 여정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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