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울음뒤 우리의 반성

조용한 밤 뒤에 찾아온 일들

by 연빈

연이가 태어난 지 세 달쯤 되었을 때였다.
그날 밤, 연이는 이유 없이 울기 시작했다.
기저귀를 갈아도, 분유를 먹여도, 안아도, 업어도 잠이 들지 않았다.
그 울음은 점점 커졌고, 우리는 번갈아가며 달래다 지쳐갔다.

그렇게 딸바보였던 웅이도 순간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왜 이렇게 계속 울지…”
그 말과 함께 연이를 침대에 던지다시피 내려놓는 모습을 나는 분명히 봤다.

순간 심장이 얼어붙었다.
웅이도 그 즉시 자신이 놀랐는지, 곧바로 연이를 다시 안았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하지만 그 짧은 순간이 우리에게는 오래 남았다.

그날 밤, 연이는 결국 울다 지쳐 잠들었고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 옆에서 한참을 바라봤다.
“우리도 아직 배우는 중이야.”
그건 서로를 향한 위로이자 다짐이었다.


그리고 한두달뒤 연이가 뒤집기를 시작했다.
그 작은 몸이 스스로 뒤집히는 모습을 보며 우리 둘 다 눈물이 났다.
그만큼 벅차고, 그만큼 서툴렀던 시간이었다.

연이는 비교적 순한 편이었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깨는 밤과 끊임없는 돌봄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다.
사랑하지만 버거운, 행복하지만 낯선 —
그 감정이 교차하던 시기였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문득 영화가 너무 보고 싶었다.

아기를 낳고 나서 처음으로 ‘우리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다.
“이제 밤에는 잘 자니까 괜찮을 거야.”
웅이와 나는 작전을 짰다.
집 근처 극장에서 심야영화를 보고 끝나자마자 바로 돌아오자고 했다.

영화가 끝나고 집에 들어오는데 왠지 마음이 불안했다.
엄마의 예감이었다.
방 문을 여는 순간, 그 예감은 현실이 되었다.

연이가 문가에 엎드린 채 잠들어 있었다.
분명 방 안쪽에 재워놓았는데...
그 작은 몸이 문까지 온것 이었다.
눈가에는 마른 눈물 자국과 함께..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우리 아이가... 우리를 얼마나 찾았던 걸까.”
그날 밤은 우리에게 깊은 첫 반성의 순간이었다.
연이의 눈물이 우리 마음을 단숨에 무너뜨렸다.

그날 이후, 우리는 다시는 그 아이를 두고 밖을 나가지 않았다.



길었던 봄과 여름이 지나, 가을

그해 추석,
우리는 처음으로 연이를 데리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생후 몇 달밖에 안 된 아기를 안고 장거리를 간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큰일이었다.

혹시나 낮 동안 차 안에서 아기가 칭얼댈까 봐 밤에 출발하기로 했다.
뒷좌석에서 연이를 품에 안고 나는 거의 잠만 잔 것 같다.
웅이는 혼자서 몇 시간을 운전하며 내려갔다.
미안했지만, 솔직히 그땐 나도 정신이 없었다.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명절의 시작이었다.
웅이는 고향집에 도착하자마자 아들이 되었고,
나는 며느리가 되었다.

같은 시간 안에서도 우리는 전혀 다른 자리에서 명절을 맞고 있었다.


연이를 돌보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명절 음식이며 매 식사 상차림까지 이어졌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만큼 정신없었다.

시어머니는 손이 크신 분이었다.
“명절에는 넉넉해야지.”
한 번 음식을 하시면 냄비마다 푸짐하게 쌓여갔다.
나중에 친척들에게 나누어주실 양까지 미리 챙기셨다.
그 정성과 에너지는 존경스러웠지만, 몸은 점점 무거워졌다.


명절 당일, 식사상을 차리고 옮길 때였다.
쇼파에 앉아 티비를 보며 웃고 있는 웅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저 사람은….”
그 순간, 마음속에서 작은 불이 일었다.
부산에만 오면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 남편.
내가 사랑했던 ‘다정한 웅이’는 어디로 간 걸까.

명절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
차 안은 전쟁터였다.
“몰랐어… 내가 안 보여서…”
“그걸 몰라? 눈앞에 다 있었잖아.”
서로 지친 얼굴로 변명과 서운함이 오갔다.
그날 차창 밖으로 스치는 바다는 이상하리만큼 잿빛이었다.

하지만 연이가 잠에서 깨어 작은 손으로 내 얼굴을 더듬을 때, 모든 말이 멎었다.

싸움도, 서운함도, 결국은 우리가 부모로 자라가는 과정이었다.

그날 이후 웅이는 조금 달라졌다.
명절이 다가오면
“올해는 내가 좀 더 부지런 떨게. 상도 옮기고… 눈치도 같이 볼게.”

그의 어설픈 다짐에 나는 웃었다.
완벽하진 않아도, 조금씩 나아지는 게 우리의 방식이었다.


시간이 지나 연이가 기어 다니기 시작했다.

낮에는 작은 손으로 장난감을 두드리며 놀았고, 옹알이도 제법 잘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초인종이 울렸다.
“쿵쿵대는 소리 좀 그만 내세요!”
또 그 1층 아저씨였다.

“저희 집엔 아기뿐인데요. 지금 기어다니는 아기랑 놀고 있었어요.”
하지만 아저씨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조용히 좀 하세요, 매일 시끄럽잖아요!”
그 말투는 이미 화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끝까지 죄송하다고 했지만, 그날 이후로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심지어 청소기를 돌리지도 않은 날에
“아침부터 왜 시끄럽냐”며 올라온 적도 있었다.
위층에서 나는 소리를 우리 탓으로 돌리며.


그때 깨달았다.
우리가 ‘가족이 되었다’는 건
이제 더 이상 둘만의 세상이 아니라는 것.
작은 울음 하나에도 세상이 반응하고,
하루의 소음이 누군가에게는 불편이 된다는 것.

그래도 나는 생각했다.
이 모든 게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라고.
울음도, 웃음도, 다 지나가면 기억 속엔 사랑만 남겠지.


PS. 연빈의 여정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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