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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하 Oct 24. 2017

다시 제주를 꺼내보자

Prologue





내가 제주도로 처음 여행을 떠났을 때 나는 제주도에 특별한 인연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가슴이 벅차지는 혹은 따듯해지는 추억이 가득해 찾아간 것이 아니었다. 그저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고 싶었고, 유행처럼 번지던 '혼자 떠나는 여행'을 해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또한 나는 겁이 많아서 처음으로 혼자 떠나는 여행을 해외로 잡기에는 무리였다.


그래서 제주도였다. 

해외여행은 아니지만, 비행기를 타고 가니까 해외여행 같은 기분을 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 재밌는 점은 그 당시 나는 해외여행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고, 그 기분을 알지도 못하면서 저런 상상을 했다.)


그런데 나는 그때 무슨 생각이었을까. 

겁도 없이 자전거 여행을 계획했다. 제주도의 외곽을 따라서 자전거를 타고 도는 여행을 계획한 것이다.
'그래도 섬인데, 크면 얼마나 크겠어'라는 만만한 생각에 제주도 자전거 일주를 계획하였고, 그냥 일주가 아닌 내가 할 수 있는 재능을 기부하면서 떠나보자고 생각했다. 당시 캘리그래피로 활동하던 나는 제주도에서 만나는 소중한 인연들에게 캘리그래피가 쓰인 액자를 선물하며 일주를 하는 계획을 세웠다. 

물론 꽤나 의미 있는 여행 주제였고, 준비하는 시간도 수월하게 흘러갔다. 선물로 나눠 줄 액자 열댓 개가 든 가방을 메고 자전거에 올라타기 전까지는 말이다.


지금 돌아보면 그리 쉽지는 않은 여행이었다. 낯선 땅에서 길을 찾으며 내 몸 하나 가누기도 힘들었는데 기초 체력도 다지지 않고 자전거 일주를 하려 하니 하루에 수십 번도 더 포기할 생각이 들었었다.

'이게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매일 밤 숙소에서는 그만 포기하고 관광지나 찾아다니며 여행을 마칠까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돌아보니 너무 소중하고 아름다운 시간이었음은 분명했다. 

힘든 만큼 너무 많은 도움을 받았고, 추운만큼 따듯한 온기를 듬뿍 받았었다.

제주도 안에서 내 기분과 마음을 오락가락했지만, 제주도의 마음은 제주도의 맑은 바다처럼 매일 변함없이 맑았고 예쁘고 따듯했다. 내가 지치고, 포기하려 할 때마다 제주도는 그 마음을 조금씩 나눠주었고, 내일은 또 어떤 제주를 마주칠까 궁금함에 나는 다시 달릴 수 있었다.


여행을 다녀와서 내가 느꼈던 제주도 이야기를 정리해서 사람들과 나눠야지 라는 생각을 했다. 

다른 사람들의 여행기처럼 큰 사건이 있던 것도 아니고,  감동이 밀려오는 만남과 이별, 사랑이야기가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잔잔하고 고요하게 다가와 손잡아주는 그런 제주의 모습은 나에게 그 어떤 이야기보다 반짝였기 때문에 너무 소중했다. 여행을 마치고 현실로 돌아온 나는 정신없이 회사와 집, 친구들 속에 섞여 다시 일상을 살아가기 시작했고, 사람들과 함께 나누려 했던 여행 이야기들은 미루고 미루다 결국 잊히고 말았다.


퇴근을 마친 어느 날 개인작업을 위해 집에서 노트북을 열었다. 

용량이 가득 찼다는 노트북 알림에 작업물과 사진들을 정리하던 중, 제주도에서 자전거 일주를 하며 적었던 일기들을 발견하였다. 

일기들 앞에서 나는 한참을 멍하니 멈춰 있었다. 나는 잊고 있었는데 그 이야기들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일기들은 마치 제주도에게 받았던 따듯한 마음들을 사람들에게도 전해주겠다던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정신을 차리고 여행에서 남긴 기록들을 찾아보기 시작했지만, 없어진 기억들이 너무 많았다. 

겨우 남아있는 사진과 이야기들에게 고맙고 미안했다.

이제야 노트북 구석에 숨죽이고 나를 기다리던 작은 이야기를 꺼내본다.

아쉽지만 너무 많은 기록들이 사라져서 완성하지 못하고 끝을 맺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더 후회하기 전에 지나가는 밤을 붙잡고 책상에 불을 켜본다.





캘리그라피 여행을 위한 준비물

1. 캔버스 액자

이번 여행에서 사람들에게 선물할 캘리그라피 액자로는 캔버스 액자를 선택했다. 평소에 애용하는 액자가 있지만, 그 액자는 유리로 된 액자여서 여행 중에 깨질 수 있기 때문에 캔버스 액자로 바꾸게 되었다.

무게도 가벼워서 많이 챙겨갈 수 있었지만, 붓을 사용해서 캘리그라피를 쓰는 나는 붓의 잉크를 한 번에 많이 머금지 못하는 캔버스가 많이 낯설었다.


2. 필통

학생 때부터 내 필통은 여러 가지 펜들로 가득했다. 쓸 일이 많지 않은 펜이라도 ‘언젠가는 쓰겠지’라는 생각으로 버리지 못하고 들고 다녔었다. 

이제는 공부나 필기가 아닌 그림을 그리는 일을 하며 공책이 아닌 스케치북을 쓰고, 필기용 얇은 펜들이 아닌 일러스트용 펜을 사용하지만 필통은 변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필요할 거야!라는 생각에 버리지 못한 펜들이 필통에 가득 담겨 나와 함께 여행을 떠났다.


3. 카메라

가져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항상 고민이 되는 카메라. 남는 건 사진뿐이라고 하지만 늘 만족하는 사진만 나오는 게 아니니까 카메라를 가지고 떠나야 하는지는 더더욱 고민된다.

이번 여행에서는 눈과 스케치북에 듬뿍 담아와야겠다 생각하며 떠날 때면, 핸드폰 카메라로 멋진 풍경을 담으면서 카메라를 왜 안 가져왔을까 후회하고, 카메라로 예쁜 사진 많이 찍어야지 생각하며 카메라를 가지고 여행을 떠나면, 이 무거운 짐덩어리를 왜 가져왔을까 생각하게 만드는 신비한 물건. 

그래도 이번에는 필요할 것 같다. 함께 가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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