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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하 Oct 31. 2017

처음 뵙겠습니다, 제주

제주는 활짝 웃어주었다.





여행의 첫 날 처음부터 잘하리라곤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자신감에 차있었다.

비행기 예매도 저렴한 가격에 할 수 있었고, 짐도 빼놓은 것 없이 체크해가면서 챙겼다.
하지만 출발하기 이틀 전에야 허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비행기의 이륙, 착륙 시간부터 무리였다. 

내 비행기의 시간은 출발하는 날은 오전 그리고 돌아오는 오후 시간대로 여행 일정을 꽉채워서 활용 할 수 있는 티켓였다. 


'이 정도 시간대면 괜찮을 거야.'라고 생각하며 비행기 티켓을 끊었지만, 내가 출발해야하는 곳은 인천공항이 아닌 집이라는 점을 잊고 고려하지 않았던 것. 

출발하는 시간이 일러서 집에서 첫차를 타고 가도 탈 수가 없었다. 또한 제주도에서 돌아오는 시간은 너무 늦어서 집으로 돌아오는 막차를 탈 수 있을지도 애매했다. 


주변사람들은 여행에 출발하는 날 아침 비행기와 

돌아오는 날 저녁 비행기를 예매하는 것이 가장 비싸고 어렵다면서 내가 끊은 비행기를 부러워했었고, 

나는 나름 우쭐한 기분에 더이상 항공권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는데 

여행을 앞두고 나태해진 나에게 뒤통수를 치며 정신차리라고 하는 것 같았다. 

결국 나는 서울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새벽부터 일어나 공항 가는 전철에 몸을 실었다. 



비몽사몽한 상태에서 티켓을 받아들고 검색대에 짐을 보내려 들어가는데 오른손에 서울에서 정신없이 출발하며 아침 대용으로 챙겼던 커피가 그대로 있었다.


"
커피는 버려주셔야 해요."

 나는 직원분의 말을 듣고 나서야 커피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지하철에서 열심히 조느라 얼마 마시지도 못한 커피를 버려달라고 부탁드리고 보안검색대를 통과하니 이번에는필통을 열어 달라는 것이다. '아.. 커터 칼..!' 필통에 볼펜들과 함께 칼과 풀도 들고 다니는 나는 차마 칼을 꺼낼 생각을 못하고 와버린 것이다. 결국 커피와 칼 모두 쓰레기통으로 보내고 나서야 검색대를통과할 수 있었다. 검색대만 통과했는데 벌써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듯 피곤이 밀려왔다.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며 의자에 앉아 한숨을 쉬며 잠시 눈을 붙였다.

이거 괜찮은 시작인걸까, 시작부터 만만치 않은 이 여행이 기대되면서도 두려웠다.


눈을 감은 채 창밖으로 이륙하는 비행기들의 소리를 듣고 있으니 마음이 놓이면서 

시작이 실감나기 시작하며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래, 그래도 시작은 언제나 두근거리는 법이니까.

지난밤부터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일과 실수들이 연속되었지만,

시작은 언제나 두근거리는 법이었다.


이 두근거림이 기대감인지, 두려움인지는 모르겠지만.









비행기를 정말 오랜만에 탔다. 고등학교에서 수학여행으로 떠난 여행 이후 처음으로 비행기를 탔으니 비행기를 탈 때는 신발을 벗고 타야한다는 짓궂은 장난조차 시원하게 웃으면서 넘길 수 없었다. 티켓을 받는 것부터 출국심사, 탑승장 번호 찾기 등의 정보를 미리 검색해보고 갔다. 그런데 자리는 티켓을 받으러 가면 정해준다니, 창가자리에 앉아서 꼭 비행하는 동안 하늘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랜덤배정이면 어떡하나 안절부절했다. 나는 비행기 창가자리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수학여행 당시에는 임의로 배정 된 자리에 앉아서 갔었는데, 내 자리는 창문이 보이지도 않던 비상출구 옆 좌석이었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는 꼭 창가쪽에 앉고 싶었고, 티켓과 자리를 배정해주시려고 나를 보시는 직원분 앞에서 큰소리로 '창가요! 창가자리 주세요!’라고 외치고 말았다. 나도 놀라고 직원분도 놀라서 같이멋쩍게 웃어 넘겼다. 너무 흥분한 티를 냈나. 조금 고민하고 말할껄. 쓸데없는 고민을 하며 비행기에 탑승했다.


짐을 정리하고 자리에 앉아 창밖을 보니 날씨가 좋지 않았다. 먹구름이 밀려오기 시작하더니 금방이라도 비를 쏟을 것만 같았다. 자전거 여행을 계획한 나에게는 좋지 않은 징조였다.
'나 혼자 떠나는 첫 여행이자, 첫 자전거 여행인데 날씨부터 따라주지 않네.'

나는 비행기가 이륙하자마자 갖가지 생각과 걱정에 빠지기 시작했다.


비가 내리면 우비를 쓰고 달려야 할까?
가방에도 우비를 따로 씌어야 하나?
신발을 괜히 이런 걸 신었어.


출발 전부터 이어지던 실수들을 따라 날씨까지 좋지 않으니, 몸에 힘이 쭉 빠지면서 한숨이 나왔다.
끊이지 않는 걱정들로 창밖은 보지도 않고 비행을 했다. 큰소리로 얻어낸 창가자리였는데...

삼십분 정도를 걱정으로 보냈을까. 의자에 몸을 파묻으며 눈을 감으려는 찰나, 비행기 창문 너머로 눈부신 반짝임이 내 얼굴을 비췄다.


먹구름을 뚫고 지나온 비행기 밑으로는 맑은 하늘의 제주도가 보이기 시작했다.


어서 오라고 인사를 건네는 듯, 제주도는 처음 만난 나에게 활짝 웃어주었다.


그건 위로였을까, 우연이었을까. 

그래도 밝게 웃어주는 제주가 고마웠고, 나도 밝게 웃으며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제주' 

















이전 01화 다시 제주를 꺼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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