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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하 Nov 07. 2017

조금 더 앉아 바다를 눈에 담기로 했다

혼자만의 여행이 아니야






3-1 혼자만의 여행이 아니야



제주도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자전거를 대여하는 일. 공항에서 나와 미리 알아 둔 자전거 대여소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제주시의 높은 언덕 위에 위치 한 자전거 대여소에 도착해 자전거를 둘러보았다. 그런데 뭘 확인해봐야 하는 걸까? 4박 5일 동안 나와 함께 할 자전거를 골라야 하는데 나는 아무 정보도 없이 자전거를 빌리러 온 것에 대해 조금 후회가 됐다. 그저 여행의 일정과 캘리그래피를 나눠 줄 준비만 했지, 어떤 자전거가 제주도 일주에 적합한지, 자전거를 빌리기 전에 무엇을 확인해 봐야 하는지 대해서는 찾아보지도 않았었다.

자전거 대여소의 주인아저씨는 망설이고 있는 나를 보시고는 다가오셔서 도움을 주셨다. 몇 박의 여정인지, 짐은 얼마나 되는지 등을 물어보시더니 검은색에 빨간 라인이 멋지게 그려진 자전거 하나를 골라주셨다. 



 반짝거리는 새 자전거를 원하는 마음과 특별한 내 여행을 더 특별하게 해줄 자전거를 원하는 마음이 더해져서 조금 낡아 보였던 그 자전거의 첫인상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자전거를 바라보고 있을수록 마음이 달라졌다. 자전거도, 제주도도 처음인 나에게는 낡아 보이는 자전거의 그런 모습이 마치 제주도 일주를 여러 번 해보며 경험을 쌓은 든든한 안내자처럼 느껴졌다.






자전거를 빌리고 빠르게 언덕을 따라 내려왔다. 가장 먼저 보고 싶었던 것은 역시 바다였다.
바다가 보이는 해안도로를 따라 일주를 계획했으니 바다를 찾는다면 바다를 옆에 두고 길을 따라 여행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페달을 밟아도 바다는 보이지 않았다. 조금만 나가면 바로 바다가 나온다며 그런 건 일도 아니란 식으로 얘기해주시던 자전거 가게 아저씨의 말에 조금 의심이 갔다. 

제주시라는 미로 안에 갇혀버린 것처럼 빙글빙글 돌다 결국 지나가는 아주머니께 길을 물어보았다. 아주머니는 앞으로만 달릴 생각을 하던 나에게 옆길을 알려주었다.

"이 길로 나가면 바로 바다가 나와요."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고 다시 페달을 밟았다. 

자전거를 빌려 타고 내려오며 너무 신난 나머지 나는 지도도 확인하지 않고 달리느라 길을 잘 찾지 못했었나 보다. 정신을 차리고 아주머니가 알려주신 길로 들어섰다.

곧 오밀조밀 모여있던 집들 사이로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고, 길도 알았겠다, 이젠 신나게 달리면 되겠다 싶어 페달을 힘차게 밟은 순간 자전거의 체인이 빠졌다. 

조급해진 마음에 자전거 기어 변속의 적절한 타이밍을 놓치고 만 것이다.



나는 바다를 코앞에 두고, 길바닥에 앉아 씩씩 거리며 체인을 끼우기 시작했다.
대여소 아저씨께서 제대로 된 자전거를 추천해준 게 아닌 걸까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조금씩 차분해지며 자전거에게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앞으로 이 자전거와 5일이나 함께 지낼 텐데,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던 것 같았다. 나는 아무런 정보도 없이 자전거를 만나러 갔었고, 그저 내 목표를 이루려고 힘을 주어 자전거를 억지로 끌고 가려던 것은 아닐까.




함께 달린다는 건 발을 맞춰야 하는 건데.
먼저 준비를 하고, 함께 출발하는 것일 텐데.

홀로 떠나는 여행이 꼭 혼자만의 여행은 아니라는 것을 첫 시작부터 느끼게 되었다.






3-2 조금  앉아 바다를 눈에 담기로 했다.



바다를 옆에 두고 한참을 달리다가 길가에 놓인 의자에 앉아 잠시 숨을 돌렸다. 적당한 구름과 파랗게 맑은 하늘, 눈앞에 놓인 바다가 마치 하나인 것처럼 보였다.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을 잊고 싶지 않아서 일기장을 펼쳤는데, 작년 이맘때쯤 적었던 일기가 눈에 들어왔다.


'꿈에서 나는 여행을 다녀왔어. 

네 옆에서 제주도에 가고 싶다 노래를 불렀더니 

꿈에서 제주도에 있더라니까.
네가 함께 있지는 않았어.
하지만 너무 행복하고 편안했어. 마치 돌아갈 집이 있어
행복한 여행을 하는 것처럼 말이야.'


작년에 나는 제주도를 꿈에서 다녀왔고, 일 년이 지나서야 꿈에서 벗어나 진짜 제주도로 왔구나. 


꿈이 아니라는 것만 빼고는 제주도에 혼자 있는 것은 일기와 똑같았다.
그래도 돌아갈 집이 있어 행복한 여행이라는 글에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순간이 더 소중하게 느껴졌고, 

집으로 돌아가 지금 내가 보고 있는, 하늘과 하나처럼 보이는 바다의 모습을 얘기해 줄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조금 더 앉아 바다를 눈에 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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