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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하 Nov 21. 2017

바다 앞에서 작은 목표를 약속했다









5-1

바다 앞에서 작은 목표를 약속하였다.



처음 제주의 바다를 마주했을 때는 수줍게 넘실거리는 파도 밑으로 

맑은 마음을 아낌없이 보여주는 바다의 모습을 눈 앞에 두고 멍하니 서있었다.

그땐 정말 탄성도, 환호도, 기쁨의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맑았던 바다 앞에 서있으니 부끄러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든 것들에 마음을 맞춰주는 바다는 마치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 같았다.
그리고 나는 그제야 바다가 서해의 까만 갯벌까지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준 것이라고 알게 되었다. 
좁은 마음을 가진 나는 그런 바다의 모습을 볼 때마다 더 부끄러워지곤 했다.





이 여행의 마지막 날에는 넓은 바다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배우고 돌아가기를.
바다 앞에서 작은 목표를 약속했다








5-2

바다를 찾아서






제주도 자전거 일주를 시작하며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4박 5일이었다.
적어도 하루에 제주도를 4분의 1만큼 달려야 했다. 


처음 해보는 자전거 여행이기에 나는 어느 정도의 속도로 달려야 하는지
오전에는 얼마만큼 달려야 하는지
숙소에는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특히 하루에 정해진 거리를
해지기 전에 도착할 수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워

주변 관광지나 음식점도 마음대로 갈 수 없었다.







         

여행의 첫날에는 아무것도 가늠할 수 없는 일정들에

무조건 달리기만 했었다. 하지만 목적지에 도착하니

허탈함만 남아있었다. 열심히 달렸지만 기억나는 바다의 모습도 없었고,

일기에 적어둘 이야기도 없었다.


그래서 두 번째 날부터는 조금씩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비록 유명한 관광지나 맛집에 찾아가진 못했지만

나름의 여유를 즐기려고 노력했다.


잠시 자전거에서 내려 파도를 보며 해변에 앉아있기도 했고
길 위에 놓인 베이스캠프 같았던 카페에 들어가

지나가는 여행자들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여행이 아닌 일상에서는 할 수도 없고, 하려 하지도 않았을 시간들이었다.

목표만을 바라보며 달리기만 하던 때에는

몸이 상하고 마음이 상처투성이가 되어도 쉬지 않고 달리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목표지점에 도달하면 허탈하고 마음이 허전하곤 했다.

결국 나를 다독이고 돌봐주어야 하는 것은 나 자신이었다.


남들에게 뒤쳐지는 것이 지는 것이라는 생각에

목표지점까지 앞만보고 달려갔지만


잠시 옆을 보고, 잠시 쉬었다 가도 
결국 목표지점에서 만나게 될 텐데.

달리기만 하던 시간을 멈추고 잠시 고개를 돌릴 때,

그 작은 시간에 우리는 생각지도 못한 인연과 미소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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