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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하 Dec 05. 2017

지금 해보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아

단순한 나의 성격







전부 단순한 나의 성격 덕분이다.




나는 친구들에게 종종 ‘단순’하다는 소리를 듣곤 한다. (또는 ‘바보 같다.’라는 소리.) 

조금 전까지만 해도 화를 내고 짜증을 내다가도 좋아하는 음식이 눈 앞에 놓이거나 

좋아하는 풍경이 펼쳐지면 금세 웃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었다. 

비록 옆에 친구들은 없었지만, 제주도에서도 내 단순함은 어김없이 존재했다.


나의 단순함은 제주도 여행 두 번째 날 아침에 발동되었다. 

제주도 여행의 첫날을 마치고 침대에 누운 밤, 앞으로의 여행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특히나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여행이라는 점이 가장 매력적이면서도 힘든 부분이었다. 만약 내가 평소에 자전거를 즐겨 탔다면 이야기가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평소에 자전거와 그다지 친하지 않았을뿐더러 딱히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따로 운동을 열심히 하는 편도 아니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책상 앞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며 하루를 보내는 내가 자전거를 타며 길러질 근육들이 단련되어 있을 리가 없었다. 이런 내가 하루아침에 안 쓰던 근육을 쓰고, 무리해서 자전거를 타고 달리니 다리, 허리 엉덩이까지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여행의 첫날을 바쁘게 마치고 잠자리에 누웠을 때 온몸이 쑤시고 아파 잠이 오지 않았다.  '피곤하니까 금세 잠이 들 거야'라는 생각으로 계속 눈을 질끈 감고 어둠 속을 헤맸지만, 욱신거리는 근육들이 잠을 깨웠다. 결국 숙소 앞에 있는 편의점으로 나왔다. 내가 편의점에서 찾은 것은 ‘파스’.


가끔 엄마가 밤늦게 집에 들어오는 내게 ‘편의점에서 파스 하나만 사 와줘.’ 하며 부탁을 해서 편의점에 간 적이 있었다. 나는 파스를 사러 가며 편의점에서 파스 찾는 사람이 엄마 말고 얼마나 될까 생각했었고, 또한 '파스를 파는 편의점이 있단 말이야?'라는 생각도 했었다. 편의점에서 파스를 사본 적이 없었고, 사려고 한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 나에겐 파스가 너무 절실했다. 편의점으로 가는 내내 ‘제발 파스를 팔아주세요.’라고 마음속으로 외쳤다. 











편의점에서 파스를 사들고 숙소로 돌아와 침대 위에서 파스를 여러 조각으로 나누었다. 양쪽 종아리와 허벅지에 하나씩, 허리에 하나, 어깨에도 하나. 온몸에 파스를 덕지덕지 붙이며 찾아온 것은 또다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오전과 오후에 걸쳐 자전거를 타고 달리며 끊임없이 만났던 언덕 포기와는 덩치가 다른 포기였다. 스마트폰으로 ‘자전거 반납 방법’까지 찾아봤으니 말이다. 

'그냥 자전거를 반납하고, 이곳에서 쉬었다가 갈까? 매일 아침 바다를 보며 여유롭게 하루를 뒹굴거리는 것도 좋은 여행과 추억이 될 거야.' 

별별 생각으로 포기를 합리화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고민하던 중 잠이 들어버렸고, 아침이 밝았다. 










두 번째 날 아침, 숙소 거실 큰 창으로 보이는 바다와 떠오르는 태양을 본 순간 나는 지난밤의 고민을 모두 잊어버리고 다시 들뜨기 시작했다. 마치 맛있는 음식이 눈 앞에 놓인 순간처럼. 


눈 앞에 펼쳐진 제주 바다와 일출의 모습은 ‘으쌰! 자 다시 떠나볼까?’라는 생각만 만들어주었다. 어젯밤 고민은 잠을 잘 때 뒤척거리며 떨어진 파스들과 함께 떨어진 듯 가벼웠다. 포기를 생각하는 것도 쉽게 만들고, 다시 돌아서는 것도 쉽게 만들어 버리는 내 성격. 예전에는 이런 성격이 나스스로도 너무 단순하고 조금은 바보 같은 성격같이 느껴졌었지만, 오히려 오늘은 지난밤 침대에 누워 포기를 쉽게 생각했던 만큼 다시 일어나는 것도 어렵지 않게 '폴짝' 일어날 줄 아는 내 마음에게 고마웠다. 또한 포기 앞에서 잘 견뎌준 지난밤 나에게 칭찬을 보내고 싶었다. 거실에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지도를 펼쳤다. 


두 번째 날, 나는 ‘서귀포’까지 달려야 한다.











지금 해보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아서





숙소에서 조식으로 제공된 식빵 한 조각을 입에 물고 아침 바다를 보고 싶어서 밖으로 나왔다. 게스트하우스 바로 앞에 있는 해변으로 나와 신발을 벗고 바다에 발을 담갔다. 늦가을의 바다는 점점 차가워지고 있었다. 밤새 이불속에서 따뜻하게 쉬던 발에 차가운 바닷물이 닿으니 정신이 번쩍 들면서 새로운 하루의 시작이 몸으로 느껴졌다. 발이 차가움을 넘어서 조금 시려졌지만, 잔잔하게 물결치는 바다에서 나오고 싶지 않았다. 맑고 투명해서 내 발이 뚜렷하게 보이는 바다는 맑고 순수하게 미소 짓는 친구를 만난 기분이었다. 같이 있으면 덩달아 나도 행복해지는 그런 친구 말이다. 재밌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추억을 함께 만들고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저 곁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친구 같았다. 그래서 더욱이 발을 빼고 싶지 않았다. 

바다에 발을 담그고 있는 사진을 찍어 육지에 있는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답변이 빠르게 왔다. 출근을 하고 있다는 친구, 여전히 나만 빼고 모두 바쁜 하루를 살고 있구나 싶었지만 각자의 삶이 있는 거라고 스스로 위로를 했다.


친구는 내 사진을 보며 말했다.

춥지 않아? 발 시릴 것 같은데….

추워, 그런데 지금 해보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아서.


알잖아, 내가 좋아하는 말.

정답은 없지만 후회하지 말자.

이 친구를 만나지 못하고 떠나면 후회할 것 같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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