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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하 Dec 12. 2017

그건 열정이 아닌 고집이었다.

열심히 달릴게요!





열심히 달릴게요!





제주도 자전거 여행의 두 번째 날이 되었다. 나는 서귀포로 가기 위해 자전거에 올라탔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는 밤새 욱신거리던 근육들이 잠잠해졌다 생각했는데, 자전거에 올라타니 이내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특히 엉덩이 근육이 ‘더 이상 이렇게 딱딱한 의자로는 달릴 수 없어!’라며 소리를 지르는 것 같았다. 
'조금만 참자. 점심시간까지 달리다 보면 익숙해질 거야.' 
아파하는 엉덩이를 다독이며 페달을 밟았지만 딱딱한 안장에 앉아 달릴수록 엉덩이의 아픔은 더 심해졌다. 결국 차들이 빠르게 나를 지나치며 달리는 해안도로에서 잠시 멈추고 자전거에서 내렸다. 여행에 오기 전 조금만 알아봤다면 방석도 챙겨 왔을 텐데… 해결책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괜히 후회하며 어제의 나를 미워했다.  결국 목에 두르고 있던 목도리를 풀어 방석 모양으로 접어 의자에 올리고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히 올라탔다. ‘나쁘지 않은데?’ 자전거를 타면서 흘리는 땀 때문에 짐이라고만 여겨졌던 목도리가 고맙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안정을 찾은 엉덩이와 목도리에게 고마워하며 다시 서귀포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며 주위를 둘러보니 길가에 꽃이 참 많았다. 때론 꽃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해안도로에 사람도 없고, 건물도 얼마 없었으며, 나를 지나쳐가는 차도 많지 않아서 나와 단둘이 마주하는 꽃들이 더 많게 느껴졌다. 마치 마라톤을 하는 나를 응원해주러 나온 사람들 같았다.


아마 자동차를 타고 달렸다면 보지 못했겠지? 빠르게 목적지만을 생각하며 달리느라 

나를 응원해주는 꽃들에겐 눈길을 주지 않았겠지.


응원해주는 관중들에게 괜히 멋쩍은 인사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힘낼게요!










그건 열정이 아닌 고집이었다.


자전거 여행을 하다 보니 예상치 못한 위기를 마주할 때가 많았다. 타이어에 펑크가 난다든지, 체인이 빠진다든지 ( 평소 자전거를 안타는 사람에게는 체인이 빠지는 일은 정말 가슴이 철렁해지는 순간이다. 나 또한 자전거를 타고 제주 시내를 달리던 첫날부터 체인이 빠졌었는데, 자전거가 크게 고장 난 줄 알고 절망에 빠졌었다. ) 길을 잘못 들어서 헤맨다든지…. 정말 많은 위기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자주 나를 찾아오는 위기는 아마 ‘지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서귀포를 향해 달리는 오전 11시 볕 아래서 나는 지쳐가고 있었다. 그때 지난밤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나 저녁을 함께 먹으며 친해진 형의 말이 생각났다.

그 형은 몇 년 전에 나처럼 자전거로 제주도를 여행했었고, 이번에는 조금 더 여유롭게 제주도를 여행해보기 위해 다시 제주도를 찾은 여행객이었다. 형은 자전거 여행 첫날을 정신없이 보내며 너무 힘들었다는 불평을 내뱉는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힘들 때는 내려서 걸어요. 꼭 자전거를 타고 달리지 않아도 돼요.




형의 말처럼 나는 자전거에 내려서 걷기 시작했다. 파도소리도 들리지 않는 도로 위에서 자전거를 두 손으로 꼭 잡고 천천히 걸었다. 자전거 위에서 투덜거림이 가득했던 마음은 금세 파도와 함께 잔잔해졌다.  여행의 첫날에 나는 자전거에서 내리는 것과 걷는 것을 몰랐다. 내린다는 것은 오랫동안 쉼이 주어졌을 때나 목적지에 도달했을 때뿐이라고 생각했다. 힘들어도 무조건 달리기만 했다. 체력이 바닥을 보여가며 속도가 줄어도 달리고 있다는 것에 의미를 두면서 멈추거나 걷지 않았다.


하지만 자전거에 내려 걷기 시작했을 때 알게 되었다.

그때 그 마음,
그건 열정이 아닌 고집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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