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운 여행

기분 좋은 짐

by 도하






나다운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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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를 향해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오늘 점심은 몇 안 되는 '제주도에서 먹어 보고 싶은 음식' 목록에 있는 문어라면이었다. 티비 프로그램에 소개되어서 더욱 유명해진 문어라면 가게가 내가 달리는 여행루트에 딱 맞게 껴 있어서 먹어보기로 계획을 잡았었다. 하지만 내가 너무 쉽게 생각했던 걸까. 문어라면집은 유명해져도 너무 유명해져 버렸고, 거기다가 점심시간까지 겹쳐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다. 결국 인산인해에 밀려 입구 앞도 못가보고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내가 계획 한 점심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기 때문에 줄을 서서까지 먹을 수 없었다. 자전거를 끌고 터벅터벅 걸어오면서 실망감이 들었다. 평소 여행을 떠날 때는 맛집 목록을 만들지도 않았었고, 여행지에서도 그저 눈에 보이는 음식점에 들어가 끼니를 때웠었는데 안 하던 짓을 해서 그런 걸까 싶기도 했다. 안 하던 짓을 해서 그랬다기보다는 안 해본 일이었기에 충분히 준비를 못했던 것이겠지? 정말 이번 제주도 여행은 도전의 연속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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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문어라면을 먹지 못하고 돌아 나오다 길거리에 있는 파스타 집이 눈에 들어왔다. 제주도의 파스타라. 파스타나 샐러드를 좋아하는 나에겐 최고의 점심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제주도에 가서 파스타를 먹고 왔다고 하면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하겠지? '제주도까지 가서 왜 파스타를 먹었어..?' (실제로 이런 말을 들었다.) 나는 잠시 망설였지만, 파스타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여행을 떠날 때 먹는 것에 큰 비중을 두지 않는 나는, 여행지에서 평소에 먹던 음식을 먹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사는 곳에서 먹던 음식들이 떠나 온 여행지에서는 어떤 맛과 기분으로 다가올지가 더 궁금하고, 또한 집을 떠나와 낯선 곳에서 낯선 음식들을 만나는 것이 나에겐 너무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도전은 좋지만 마치 원래 그래 왔다는 듯이 습관과 모습을 바꿔버리는 것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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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곳에서 나의 삶을 살아보는 것이 나에게는 나다운 여행이고,

나다운 여행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시간이 되는 듯하다.










게스트하우스 고르기


제주도에는 정말 많은 게스트하우스들이 있다. 그중에는 조용하게 일행들과 혹은 혼자서만 지내다 갈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도 있고, 모르는 사람들과 어우러져 축제 같은 밤을 함께 보낼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도 있다. 나는 어떤 게스트하우스를 가야 할지 많이 고민을 했다. 게스트하우스의 경우, 내가 지나치다 맘에 들어 들어가는 음식점이나 카페처럼 갈 수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매일 바다 너머로 지고 있는 노을 앞에서 숙소의 청결함이나 가격, 방의 모습, 사용할 수 있는 공간 그리고 내 여행 경로와의 거리 등을 검색해보고, 리뷰들을 비교해보며 사금을 채취하듯 게스트하우스를 골라내어 예약을 했었다.


내가 세웠던 숙소의 기준은
첫 번째는 '거리'. 내 여행 경로와 너무 떨어진 숙소는 아무리 저렴하고 편해 보여도 이용할 수 없었다.
두 번째는 '가격'. 큰 자금을 들고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가격비교는 필수였다.
세 번째는 '시설'. 이건 미리 다녀왔던 사람들의 리뷰를 보면서 참고를 많이 했었다. 숙소의 청결도라던지, 분위기 등이 내가 원하는 숙소의 이미지와 맞는지를 미리 알아보고 선택했다.
이 세 가지만 해도 적은 기준이 아니었다. 아무리 게스트하우스가 많다 하더라도 세 가지를 정확하게 충족시키는 게스트하우스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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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렇게 현실적인 문제와 기준들로 고른 게스트하우스에서 숙박을 해봤지만 모두 성공적이진 않았다. 세 가지 기준에 들어맞는 게스트하우스라면 나에게 꼭 맞는 곳일 거라 생각했지만 결국 직접 찾아가 보고 겪어봐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거기서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어떤 시간을 보내느냐가 제일 큰 차이를 보였다. 나름의 기준을 세워 게스트하우스를 골랐지만, 여행 중 지친 하루의 끝에 집으로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숙소에서 가족처럼 느껴지는 사람들과 함께 밤을 보내는 숙소가 제일이었다.









제주 일기

기분 좋은 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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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언가를 받기 위해서 캘리그라피 선물을 하며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부러 식사나 음료를 다 마시고 나갈 때 캘리그라피 액자를 선물해드리며 나가곤 했다. 하지만 선물을 받으신 분들은 나가는 나를 뒤따라오셔서 여행에 짐이 되는 것은 아니냐면서 내 손에 무언가를 쥐어주셨다. 그것들은 모두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마치 제주도의 일부분같이 느껴졌다. 가방에서 나를 꺼내드리니 빈자리에 제주도가 채워지고 있는 것 같다.


기분 좋은 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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