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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하 Dec 26. 2017

나다운 여행

기분 좋은 짐






나다운 여행


서귀포를 향해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오늘 점심은 몇 안 되는 '제주도에서 먹어 보고 싶은 음식' 목록에 있는 문어라면이었다. 티비 프로그램에 소개되어서 더욱 유명해진 문어라면 가게가 내가 달리는 여행루트에 딱 맞게 껴 있어서 먹어보기로 계획을 잡았었다. 하지만 내가 너무 쉽게 생각했던 걸까. 문어라면집은 유명해져도 너무 유명해져 버렸고, 거기다가 점심시간까지 겹쳐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다. 결국 인산인해에 밀려 입구 앞도 못가보고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내가 계획 한 점심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기 때문에 줄을 서서까지 먹을 수 없었다. 자전거를 끌고 터벅터벅 걸어오면서 실망감이 들었다. 평소 여행을 떠날 때는 맛집 목록을 만들지도 않았었고, 여행지에서도 그저 눈에 보이는 음식점에 들어가 끼니를 때웠었는데 안 하던 짓을 해서 그런 걸까 싶기도 했다. 안 하던 짓을 해서 그랬다기보다는 안 해본 일이었기에 충분히 준비를 못했던 것이겠지? 정말 이번 제주도 여행은 도전의 연속이구나.




결국 문어라면을 먹지 못하고 돌아 나오다 길거리에 있는 파스타 집이 눈에 들어왔다. 제주도의 파스타라. 파스타나 샐러드를 좋아하는 나에겐 최고의 점심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제주도에 가서 파스타를 먹고 왔다고 하면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하겠지? '제주도까지 가서 왜 파스타를 먹었어..?' (실제로 이런 말을 들었다.) 나는 잠시 망설였지만, 파스타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여행을 떠날 때 먹는 것에 큰 비중을 두지 않는 나는, 여행지에서 평소에 먹던 음식을 먹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사는 곳에서 먹던 음식들이 떠나 온 여행지에서는 어떤 맛과 기분으로 다가올지가 더 궁금하고, 또한 집을 떠나와 낯선 곳에서 낯선 음식들을 만나는 것이 나에겐 너무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도전은 좋지만 마치 원래 그래 왔다는 듯이 습관과 모습을 바꿔버리는 것은 싫다. 





낯선 곳에서 나의 삶을 살아보는 것이 나에게는 나다운 여행이고, 

나다운 여행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시간이 되는 듯하다.










게스트하우스 고르기


제주도에는 정말 많은 게스트하우스들이 있다. 그중에는 조용하게 일행들과 혹은 혼자서만 지내다 갈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도 있고, 모르는 사람들과 어우러져 축제 같은 밤을 함께 보낼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도 있다. 나는 어떤 게스트하우스를 가야 할지 많이 고민을 했다. 게스트하우스의 경우, 내가 지나치다 맘에 들어 들어가는 음식점이나 카페처럼 갈 수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매일 바다 너머로 지고 있는 노을 앞에서 숙소의 청결함이나 가격, 방의 모습, 사용할 수 있는 공간 그리고 내 여행 경로와의 거리 등을 검색해보고, 리뷰들을 비교해보며 사금을 채취하듯 게스트하우스를 골라내어 예약을 했었다.


내가 세웠던 숙소의 기준은
첫 번째는 '거리'. 내 여행 경로와 너무 떨어진 숙소는 아무리 저렴하고 편해 보여도 이용할 수 없었다. 
두 번째는 '가격'. 큰 자금을 들고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가격비교는 필수였다.
세 번째는 '시설'. 이건 미리 다녀왔던 사람들의 리뷰를 보면서 참고를 많이 했었다. 숙소의 청결도라던지, 분위기 등이 내가 원하는 숙소의 이미지와 맞는지를 미리 알아보고 선택했다. 
이 세 가지만 해도 적은 기준이 아니었다. 아무리 게스트하우스가 많다 하더라도 세 가지를 정확하게 충족시키는 게스트하우스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현실적인 문제와 기준들로 고른 게스트하우스에서 숙박을 해봤지만 모두 성공적이진 않았다. 세 가지 기준에 들어맞는 게스트하우스라면 나에게 꼭 맞는 곳일 거라 생각했지만 결국 직접 찾아가 보고 겪어봐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거기서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어떤 시간을 보내느냐가 제일 큰 차이를 보였다. 나름의 기준을 세워 게스트하우스를 골랐지만, 여행 중 지친 하루의 끝에 집으로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숙소에서 가족처럼 느껴지는 사람들과 함께 밤을 보내는 숙소가 제일이었다.









제주 일기

기분 좋은 짐




나는 무언가를 받기 위해서 캘리그라피 선물을 하며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부러 식사나 음료를 다 마시고 나갈 때 캘리그라피 액자를 선물해드리며 나가곤 했다. 하지만 선물을 받으신 분들은 나가는 나를 뒤따라오셔서 여행에 짐이 되는 것은 아니냐면서 내 손에 무언가를 쥐어주셨다. 그것들은 모두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마치 제주도의 일부분같이 느껴졌다. 가방에서 나를 꺼내드리니 빈자리에 제주도가 채워지고 있는 것 같다.


기분 좋은 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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